"무궁화호 사라지면 우리 마을이 통째로..." 어르신의 씁쓸한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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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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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X에 밀려 지금은 보기 드물게 된 무궁화호의 기관차 모습. 몸체 옆에 2008년에 제작되었다는 표식이 붙어있다. |
| ⓒ 서부원 |
무궁화호는 현재 운행 중인 기차 편 중 맨 아래 등급이다. KTX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새마을호 다음의 '고급' 기차였다. 지금은 이름조차 낯설어진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서민들의 발이었고,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를 탄다는 건 비싼 요금에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이었다.
무궁화호를 의도적으로 꺼린 건 아니다. 일단 편수가 너무 적다. 평일 광주송정역을 기준으로, 서울 가는 편수는 하루에 달랑 2편이다. 참고로, 바로 위 등급인 'ITX-마음(옛 새마을호)'은 9편이고, 나머지는 모두 대략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KTX와 SRT다.
평일이라 여유를 부렸더니, KTX와 SRT 표는 일주일 전부터 매진이었다. 기차표와 숙박을 예약할 때 금요일은 주중이 아닌 주말이라는 불문율을 깜빡했다. 요행을 바라며 종일 새로고침 단추를 눌렀지만 허사였다. 이러다 천 리 길을 직접 운전해서 가야 하나 싶어 조바심이 났다.
와중에도 무궁화호는 표가 남아 있었다. 오후 약속이라 비교적 시간이 넉넉해 별 고민 없이 예매하고 결제했다. 요금이 KTX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아 적이 놀랐다. KTX를 타고 서울 가는 게 보통이어서 KTX 요금을 '기본값'으로 여겼는데, 무궁화호 요금에 '현타'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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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용산)과 목포를 오가는 무궁화호 객차의 모습. 외관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허름해 보이지만, 객실 내부는 KTX 못지않게 깨끗하고 쾌적하다. |
| ⓒ 서부원 |
그 말인즉슨, KTX의 수요가 많다 보니 요금이 올라가고, 무궁화호는 이용하는 승객이 적어 요금이 싸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고 요금을 한없이 낮출 수도 없는 데다 적자가 누적되다 보니 결국 편수를 줄이게 됐다는 거다. 그는 운행 중인 2편도 조만간 중단될지 모른다고 했다.
객실은 만원이었다. 젊은 대학생과 휴가에서 복귀하는 군인들, 나들이를 떠나는 어르신들과 외국인 노동자들로 빈 좌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객실 밖에도 여행용 가방을 의자 삼은 입석 표 승객들이 여럿 보였다. 승객이 적어 무궁화호의 편수를 줄였다는 말이 의심될 정도였다.
"무궁화호가 다녀야 타죠. 울며 겨자 먹기로 KTX를 이용하는 거죠."
입석 표를 산 대학생이 무궁화호 편수가 늘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에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KTX 요금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했다. 또래 대학생들은 시간에 쫓길 일이 많지 않으니 굳이 비싼 돈 주고 KTX를 이용할 이유가 하등 없다고도 했다.
웬만한 직장인들에게도 KTX 요금은 부담스럽다. 얼추 왕복 10만 원에 기차역까지 오가는 비용과 커피값 정도만 보태도 15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혼자라면 당연히 KTX를 이용하지만, 동행자가 한 명만 더 있어도 차량을 직접 운전해 가는 게 합리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무궁화호는 요금이 반값인 대신 소요 시간은 정확히 두 배다. 광주에서 서울까지는 KTX로 2시간 거리인데, 무궁화호로는 4시간이 소요된다. 시간과 돈을 맞바꾼 셈이다. 시간이 금쪽같은 이들이라면 KTX를 타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들은 무궁화호를 이용하도록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 가지로 수렴됐다. '메뉴판'엔 무궁화호는 없고 KTX만 가득하다. 천천히 걷고 싶은 사람도 바삐 뛰어가는 이들에게 보조를 맞추라고 다그치는 식이다. 지금 승객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상 KTX와 SRT의 시간뿐이다. 물론, 경제적 부담은 승객 몫이다.
승객이 적어서라면 모를까, 무궁화호의 편수를 더 늘린다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인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경우, 무궁화호와 ITX-마음이 이용하는 일반 노선과 KTX의 고속 노선은 서로 다르다. 예전처럼 기차가 추월하고 교행하는 과정에서 연착되는 일이 드물다는 뜻이다.
승무원은 수요가 적어 편수를 줄였다고 하고, 승객은 편수가 줄어 수요가 적어졌다고 말한다. 흡사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 같다. 분명한 건, 승객들은 시나브로 KTX의 속도에 길들어졌고, 지금은 반값에도 무궁화호의 '느림'을 못 견뎌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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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일 낮 시간에도 객실은 만원이었다. 무궁화호는 KTX에 견줘 좌석의 간격이 넓고, 모두 순방향이어서 피로감이 훨씬 덜하다. |
| ⓒ 서부원 |
한때 물산 집산지였던 도시들의 역사(驛舍)가 시골 간이역처럼 초라하다. 장성과 함열 같은 군 단위는 말할 것도 없고, 김제나 논산 같은 시급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표를 사는 마당에 역무원이 필요할까 싶긴 하다. 지금 그들에게 남은 역할은 승하차 안전 지도다.
철길 위에 KTX만 남고 무궁화호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는 현실은 지방이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무궁화호는 지방의 소멸과 함께할 운명 공동체다. 머지않아 KTX가 다니는 서너 개의 대도시만 남고,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도시는 인적이 끊기게 될 듯하다.
"20여 년 전 통일호의 운행이 중단됐을 때 마을이 한 번 쪼그라들었는데, 무궁화호마저 사라지면 우리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지도 몰라."
수원에 사는 딸 집에 가는 길이라는 어르신은 기차가 마을의 생명줄이라는 투로 말했다. 신탄진 근처가 댁이라는 그분은 지금껏 KTX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고 했다. KTX를 타면 대전이나 오송까지 가야 하고, 광명에서 내려 다시 내려와야 해 시간이 더 걸린다는 거다.
이태 전 운전대도 손에서 놨다고 했다. 남들은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 살려면 운전은 필수라고 했지만, 뜸하긴 해도 버스가 다니고 근처에 기차역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단다. 우리나라 교통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기차 편은 없애면서 도로는 늘리는 게 과연 맞느냐는 거다.
그분은 가방에서 큼지막한 대봉감 하나를 꺼내 먹으라며 건네셨다. 손사래를 쳤지만, 딸에게 줄 게 많다며 비닐봉지에 넣어 챙겨주셨다. 예전엔 객실을 돌아다니며 주전부리를 파는 '홍익회 판매원'이 있었는데, KTX의 등장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추억담도 덤 삼아 들려주셨다.
근무 교대하는 승무원과 옆자리의 대학생,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루할 틈 없이 네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곧 종착역인 용산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가성비'를 따져볼 때, 무궁화호가 KTX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광주와 서울을 오갈 일이 많을 텐데, 시간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무조건 무궁화호를 이용할 작정이다.
'고급' 정보 하나. 무궁화호 객실의 좌석은 KTX의 그것보다 넓고 편하다. 기지개 켜듯 다리를 쭉 뻗어도 앞자리 승객에 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다. 특히 모든 좌석이 순방향이어서 피로감도 훨씬 덜하다. KTX의 경우, 좌석의 절반이 역방향이어서, 예매할 때 '복불복'을 각오해야 한다.
다만, 좌석에 충전용 전원 콘센트나 단자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게 옥에 티다. 의자 등받이에 달린 접이식 테이블도 없어 책이나 스마트폰, 태블릿을 놓아둘 곳도 마땅찮다. 가는 내내 동영상 등을 시청할 요량이라면, 당장 휴대용 배터리가 필요하다.
무궁화호의 전원 콘센트는 각 객실의 맨 앞자리와 뒷자리의 양쪽에 각각 2개씩 설치되어 있다(열차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벽에 부착된 작은 테이블도 갖춰져 있어, 문서 작업 등은 힘들어도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을 급히 충전할 수는 있다. 물론, 분실 위험도 있고 충전기는 따로 챙겨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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