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밀양 박씨랬는데"…'인천 박씨 시조' 된 中동포, 왜
" 인천 박씨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인천에 사는 박씨 아주머니인 줄 압니다. "
지난해 8월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성이 ‘밀양 박씨’에서 ‘인천 박씨’로 바뀐 박연희(64)씨의 말이다. 귀화신청서를 내며 ‘우리 아버지가 물려주신 성이 밀양 박씨고, 이 성을 쓰고 싶다’고 요구했지만 법원은 ‘족보를 제출하거나 한국 내 종친회의 증빙서류를 받아오라’고 했다. 가능할 리가 없었고, 남아 있는 직계존속도 없는 박씨는 결국 포기하고 ‘인천 박씨’를 쓰기로 했다. 박씨는 “우리 언니도 귀화하려고 하는데, 언니에게 ‘대구에 살고 있어 대구 박씨가 될 것 같다’고 하니 언니가 ‘뭐 그런 경우가 있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며 웃었다.

코로나 시기 줄었던 귀화자 수가 다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며 새로운 성씨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다. 한국식 이름을 새로 지으려면 성씨도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양 오씨 시조인 마라톤 국가대표 오주한(케냐 이름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씨나 영도 하씨 시조인 방송인 하일(미국 이름 ‘로버트 할리’)씨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적취득자의 성과 본의 창설 허가’ 제도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96조 제1항(‘외국의 성을 쓰는 국적취득자가 그 성을 쓰지 아니하고 새로이 성(姓)·본(本)을 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등록기준지·주소지 또는 등록기준지로 하고자 하는 곳을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고 그 등본을 받은 날부터 1개월 이내에 그 성과 본을 신고하여야 한다’)에 규정돼 있다. 한국식 이름을 쓰고 싶은 외국인은 성과 본을 새로 만든 뒤 관할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본래 ‘창성창본(創姓創本) 허가’로 불리다가 지난 2018년 개정됐다.

문제는 중국 조선족이나 러시아 고려인 등 외국 국적 동포가 귀화할 때 발생한다. 해당 규정이 이미 한국 성을 가진 해외 거주 동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 출신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사용해왔지만, 정작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그 성을 쓸 수 없게 된다. 대신 새로 본(本)을 만들어, 원치도 않았던 ‘시조’가 되어야 한다.
박씨 역시 이 과정에서 ‘인천 박씨’가 됐다. 그는 “대림(동) 김씨나 구로 김씨 등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영등포 김씨라는 김광수(60)씨는 “내가 여러 명의 영등포 김씨 시조 가운데 한 명”이라며 “원래 선산 김씨인데, 인정해주지 않아 결국 바꿨다”고 했다. 이어 “누가 물어보면 원래 성본을 알려주긴 하지만, 아이도 불편해하고 또 조상의 성본을 물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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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하는 외국 국적 동포들, 원래 본(本) 인정해줘야"
이처럼 원하는 본을 갖지 못한 귀화 동포들 사이에선 관련 법을 개정해 달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김정룡 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 대표는 “한민족의 후손인 동포들에게 창성창본을 강제하는 건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의 역사를 대물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가문의 뿌리인 본을 인정받지 못하고 역사적으로 있는 적도 없는 본을 만들어 시조가 되라고 하니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외국 국적 동포들은 외국인과 다르게 원래 쓰던 본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윤영환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대표)는 “원래 성을 쓰지 못하게 하는 건 당사자들에게 불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이나 혐오 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동성동본 혼인 금지 제도가 폐지되는 등 본이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사문화되고 있는 만큼 본을 어떻게 인정해도 큰 상관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요구하는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고, 성본에 특별한 사회적·법적 기능이 없다면 당사자의 진술과 의사에 따라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창용 기자 kim.chang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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