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경제성장률 1%도 힘에 부친다, 왜?
만성적인 저성장 국면 돌파 해법 있나
‘시계제로’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현재의 한국 경제를 진단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인 듯싶다. 한국 경제는 올해 내내 G2(미국·중국)의 파워에 휘청거렸다. 지난 10월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나 극적으로 대미투자펀드 구성 방식을 정하고,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주요 품목 관세를 높일 수 있는 만큼 한국 경제는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공급 과잉 여파로 석유화학, 철강 등 한국 주요 산업도 ‘풍전등화’ 처지에 놓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50% 관세 폭탄에 중국의 저가 제품 공세로 철강사들은 극심한 생존 경쟁에 내몰렸다. 주요 석유화학 업체 구조조정이 지연되며 상당수 기업이 문 닫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 여파로 2026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칠 것이란 불안감이 팽배하다.
매경이코노미는 2026년 새해 경제를 관통할 키워드로 ‘RECALIBRATE(재조정하다)’를 꼽았다. 성장의 방향과 불균형을 바로잡는 ‘미세 조정’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뿐 아니라 증시, 부동산, 가상화폐 등 투자 포트폴리오 재조정 전략까지 다각도로 점검해본다.

그나마 한미 양국 수장이 최근 자동차 관세 인하와 3500억달러 대미투자펀드 구성 방식 등 관세 협상 세부 내용에 합의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핵심 쟁점이던 3500억달러 대미투자펀드의 경우 2000억달러는 현금 직접 투자, 나머지 1500억달러는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로 했다. 직접 지분투자가 이뤄지는 2000억달러는 연간 한도 200억달러를 넘지 않는 선에서 나눠 투자한다.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 타결 최대 걸림돌이던 대미펀드 쟁점에 합의하면서 한국 자동차, 부품에 부과되던 관세 25%는 15%로 낮아진다.
그럼에도 안심할 때는 아니다. 15% 관세에 안도하지만 한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 거의 무관세로 수출해왔다. 그동안 없던 15% 관세가 새로 생긴 셈이다. 한국 제조업 매출 대비 평균 이익률이 5~10% 안팎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특히 수출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릴 경우 국내 투자 여력이 축소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미국발 관세 전쟁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한국 제조업 공동화(Industrial Hollow-Out)’ 우려도 커졌다. 생산 → 소득 → 소비 → 투자로 이어지는 경제 선순환 고리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주요 산업 전망이 어둡다 보니 올해 경제성장률부터 불안하다. 2025년 경제성장률이 0%대 후반에서 1% 수준에 그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팽배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9%로 전망했다. 전 세계(3.2%)는 물론 선진국(1.6%) 성장률 전망치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또 다른 경제 연구기관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 아시아개발은행(ADB) 0.8%, 한국은행 0.9%, 한국개발연구원(KDI) 0.8%, 현대경제연구원은 1%를 전망했다.
내년 한국 경제 전망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주요 연구기관, IB들은 2026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 이하로 전망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2026년 한국 경제가 1.6%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고 IMF(1.8%), 씨티은행(1.6%) 전망치도 2%에 한참 못 미쳤다. 한국은행 역시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고, 현대경제연구원 전망치도 1.9%에 그쳤다.
이재명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35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고, 역대 최대인 728조원 규모의 내년 본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경기 부양책만으로는 성장 잠재력 하락을 막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2026년 적극적인 확장 재정이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통화 정책이 재정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이 핵심 경제 변수인 ‘성장과 물가’보다 부차적 변수인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를 더 중요시해 경기 대응에 소극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원 실장은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통상 압박 정책이 전개되고, 수출 경기가 예상보다 더 침체할 경우 국내 주력 산업의 투자 절벽이 지속될 수 있다”고 짚었다.

‘RECALIBRATE(재조정하다)’
공급망 재편에 일자리 쇼크
만성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매경이코노미는 2026년 한국 경제를 관통할 키워드로 ‘RECALIBRATE(재조정하다)’를 꼽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는 끊임없이 재편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으로 글로벌 교역이 활력을 잃고 지정학 갈등은 공급망을 흔들었다. 자산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고, 인공지능(AI)은 노동을 본격적으로 대체해 기업 생존 전략도 달라졌다.
이 모든 변화의 공통점은 ‘균형의 상실’이다. 기업은 기술 발전 속도와 인간 가치 사이에서, 국가는 성장과 불평등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 때문에 새해엔 성장의 방향과 불균형을 바로잡는 파인튜닝(Fine-tuning) 즉 ‘미세 조정’이 중요해졌다.
2026년 산업 전반을 뒤흔들 첫 번째 키워드는 ‘공급망 재편(Re-allocate Supply Chain)’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자국 내 생산을 압박하면서 글로벌 제조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미국이 설계하고 대만이 생산, 한국이 메모리를 공급하는 구조였지만 이제 주요 기업이 미국 현지 공장 확보에 나섰다. 대만 TSMC는 애리조나 제2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고, 삼성전자도 텍사스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공급망은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안보·기술 패권이 얽힌 전략 자산으로 탈바꿈해, 새해 산업계는 ‘재배치(Re-allocation)’를 둘러싼 새로운 경쟁에 들어설 전망이다.
둘째 AI 시대 도래로 기업 일자리가 ‘재조정’되는 시대가 올 전망이다. 일명 ‘Layoff Shock’다.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지며, 예상 밖으로 개발자들이 해고 1순위에 올랐다. 한때 디지털 전환의 중심이었던 이들이 오히려 기술의 발전 때문에 대체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다는 의미다. 2025년 한 해에만 알파벳(구글)·메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테크에서 13만명 넘는 테크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 기업들은 ‘AI가 더 잘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이 집중해야 할 일’을 구분하며 업무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해에도 이 흐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각국 정부는 노동 전환 정책을 검토 중이며, 기업들은 인력의 ‘고정성’보다 ‘업데이트 가능성’을 우선순위로 둔다. 노동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이제 ‘안정성’이 아니라 ‘생존력’이라는 의미다.


자산 양극화 더욱 심화될 듯
일상화된 고물가에 적응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점도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은 구조적으로 고착됐다.
원자재·인건비 부담이 커지며 기업은 수익성 압박을 받는다. 소비자는 절약형 소비와 프리미엄 소비로 양분되고, 기업은 비용 절감과 기술 혁신으로 대응하고 있다. 고물가가 일상이 된 만큼, 2026년은 고물가에 적응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체감물가를 낮추기 위해 정부가 농·축·수산물 공급망 안정, 주거 안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는 국면에서 고용 시장이 불안한 만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 선순환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2026년에는 자산 격차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Economic Polarization). 부동산·주식 등 실물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인플레이션 수혜를 누리지만, 자산이 없는 사람은 가만히만 있어도 상대적 빈곤에 빠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상위 10% 가구가 전체 순자산의 44.4%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는 10%에도 못 미쳤다.
가장 큰 격차는 부동산에서 드러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서울 5분위(상위 20%) 아파트 평균 가격은 33억4409만원이었다. 이에 비해 하위 20%인 1분위 아파트 평균 가격은 4억9536만원에 그쳤다. 고가-저가 아파트 간 가격 격차가 확대되면서 서울 아파트 5분위 배율(상위 20%를 하위 20%로 나눈 값)은 6.8을 기록했다.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지방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커진다.
정부는 최근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규제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고가주택 대출을 묶었지만, 자산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산 양극화 완화는 2026년 한국 경제의 난제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4호 (2025.11.12~11.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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