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의 롱런? 이젠 ‘더마’에게 물어봐
뷰티 패러다임이 ‘감성’에서 ‘효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소비자는 브랜드 이미지보다 제품의 실제 효과를 먼저 따져 묻는다. 이제는 예뻐 보이는 화장품보다 피부를 건강하게 바꾸는 화장품이 경쟁력을 갖게 된 시대다.
패러다임 전환 중심에는 ‘더마코스메틱(Dermacosmetic, 이후 더마)’이 있다. 피부과학(Dermatology)과 화장품(Cosmetic) 합성어로, 피부과나 의료 시술 논리를 도입해 의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성분을 중심으로 만든 화장품을 뜻한다. 원래는 시술 후 진정·재생용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일상 스킨케어로 확대됐다.
더마 시장이 커지면서 여러 기업이 뛰어들었다. 뷰티 기업은 물론 연구 측면에선 한발 앞서 있는 제약 업계 역시 뷰티 시장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더마코스메틱 투자 여부가 좌우
미용과 감성에서 건강과 효능으로.
최근 뷰티 패러다임 전환을 잘 보여주는 구도는 ‘글로벌 뷰티 빅2’로 평가받는 에스티로더와 로레알 사이 상반된 분위기이다. 명품 화장품 상징이던 에스티로더는 2021년 매출이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반면, 로레알은 같은 기간 매출이 10%씩 성장했다.
차이는 더마가 강세를 보이는 기초화장품 실적으로 갈렸다. 에스티로더는 기초화장품 매출액이 연평균 9.4% 떨어졌다.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외면이 결정적이었다. 반면 로레알 더마 화장품 매출은 같은 기간 연평균 21.4% 성장하며 전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국내 더마 기업인 고운세상코스메틱(닥터지)을 편입하는 등 꾸준히 더마 투자를 늘려온 결과다.
오린아 LS증권 애널리스트는 “로레알은 세라비 인수 이후 더마 카테고리에 집중한 M&A를 계속해왔다. 반면 에스티로더는 글램글로우, 르라보, 투페이스드 등 럭셔리 스킨케어와 색조에 치중한 인수를 단행했다”며 “요즘 뷰티 기업은 더마 위주 스킨케어 포트폴리오 여부가 실적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에스트라·네오팜·닥터지 ‘선전’
국내 더마 시장은 뷰티 기업 체질 개선 무대가 되고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더마 브랜드는 ‘에스트라’다. 태평양제약으로 출발한 기업으로, 40년 넘게 더마 연구를 해왔다. 2021년 아모레퍼시픽 흡수합병 이후 모기업 임상·피부과 연구 인프라를 활용해 의약품 수준 효능을 강조한다.
출발은 국내 병원 전용 화장품이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올해 2월 세계 최대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와 독점 파트너십을 맺고 오프라인 매장 400여개에 입점했다. 주력 제품인 ‘아토베리어 365’ 라인을 앞세워 중국 현지 플랫폼과 일본·캐나다·호주 등지에 진출했다.
국내 뷰티 시총 1위에 등극한 에이피알은 뷰티 디바이스와 앰플을 결합한 ‘메디큐브 AGE-R’로 홈케어 더마 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체 생산공장 ‘에이피알팩토리’를 통해 개발부터 양산까지 내재화했다. 지금껏 누적 판매량 500만대, 해외 매출 비중 50% 이상을 기록, ‘테크 더마’ 분야 상징이 됐다.
2000년 설립한 ‘네오팜’ 역시 더마 열풍 최고 수혜주 중 하나로 꼽힌다. 아토피·민감성 피부 전문 브랜드 ‘리얼베리어’ ‘아토팜’ 등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그동안 의사 처방을 통해 소비자 접점을 확대해온 덕분에 ‘의료 전문가가 인정한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에스트라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수출 비중이 2019년 7%에서 지난해 14.5%까지 두 배 커졌다. 2023년 97억원이었던 매출을 올해 135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한다.
이 밖에도 기초 스킨케어를 주력으로 하는 수많은 브랜드에서 더마 라인업을 늘려가는 중이다. 구다이글로벌이 피부과 전문의 19인 자문단을 구성해 올해 4월 론칭한 ‘닥터나인틴’을 비롯해 아이패밀리에스씨 ‘롬앤’, 브이티지엠피 ‘브이티코스메틱’ 등 신흥 브랜드도 효능 중심 스킨케어로 사업축을 옮기고 있다.

마데카솔 성분으로 화장품 만들어
국내 더마 산업의 또 다른 축은 제약사다. 과거에는 화장품 위탁생산(OEM) 시 원료만 공급하던 기업이, 지금은 직접 브랜드를 만들거나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간 축적한 의약 기술과 신뢰가 제약 업계 가장 큰 무기다. 의약품 원료를 자체 개발·생산하기 때문에 원료 조달 면에서도 효율적이다.
동국제약은 상처 치료제 마데카솔 원료(센텔라아시아티카)를 화장품에 적용한 ‘센텔리안24’로 더마 시장을 열었다. 최근 미국·동남아 수출을 확대하며 2025년 글로벌 매출 1000억원 달성을 눈앞에 뒀다.
파마리서치는 ‘리쥬란 코스메틱’으로 스킨부스터와 화장품을 연결했다. 핵심 원료 PDRN·PN을 주사제에서 화장품으로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휴메딕스는 줄기세포 핵심 성분인 엑소좀 기반 화장품 ‘엘라비에 리투오’로 유통망을 확보했다. 한미약품은 피부 장벽 회복용 펩타이드 특허를 등록했고, JW중외제약은 항염 단백질 기반 더마 소재를 개발 중이다. 이외에도 휴온스글로벌, 대웅제약, 코오롱생명과학, 이니바이오 등이 ECM(세포외기질)·콜라겐·바이오 소재 연구에 뛰어들었다.
제약사라고 모두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박현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더마도 결국 화장품이다. 제약사가 뷰티 기업보다 더 잘 만든다는 보장이 없고 마케팅이나 유통 문법도 다르다”며 “오히려 뷰티와 제약사 양쪽 수요를 모두 아우르는 코스맥스·한국콜마 등 제조사가 더마 열풍 최대 수혜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 역시 “현재 제약 업계는 더마 사업을 신약 개발 리스크를 줄이는 ‘수익 보완 사업’ 정도로 활용한다고 보면 된다”며 “승부를 가르는 요소는 원료 아이디어·개발 역량·제조사와 협상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마코스메틱, 더 커진다
시술 대중화가 오히려 ‘호재’
글로벌 더마코스메틱 시장은 2022년 440억달러 규모에서 2032년 900억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7% 이상으로, 전체 화장품 시장 성장률 두 배에 달한다.
필러·보톡스·리프팅 등 시술 단가가 떨어지고 있는 현상이 오히려 더마 시장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오린아 애널리스트는 “빨리 닳아 없어지는 품목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고가 화장품이 팔릴 수 있던 건 더 좋은 효능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최근 리프팅 같은 시술 비용이 하락하고 대중화되며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화장품에 ‘진짜 효과 있는가’를 더 따지게 되고 뚜렷한 효능을 가진 더마 시장이 상대적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K-더마 미래 성장 잠재성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글로벌 브랜드보다 품질은 뛰어나다는 점에서다. 인지도를 높이면 시장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 박종대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더마 제품 품질은 세계 수준이다. 검증된 화장품 제조 기술력과 제약사 원료 기술이 결합된 구조 덕분”이라며 “유럽 시장 마케팅 투자를 강화하면 인지도가 오르고 실적도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4호 (2025.11.12~11.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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