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안 틀었다고 무섭게 화낸 엄마, 왜 그런가 했더니
'갱년기 여성'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열을 내고 있는 여성일까요. 정말 그 모습 뿐일까요. 여성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폐경에 대해 우리는 사실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20대 딸 4명이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에게 폐경을 물었습니다. 여성들의, 우리 엄마의,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우리의 이야기가 될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질문으로 남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안성연 기자]
"엄마, 엄마는 나한테 갱년기 왔다고 왜 말 안 했어?"
"했어."
"....응?"
엄마의 갱년기는 2013년, 내가 14살 때 시작됐다고 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엄마가 갱년기임(였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오빠는 17살, 둘 다 사춘기였고 기러기 생활을 하던 아빠는 집에 오래 있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 서로를 원망하며 피했던 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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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목한 가족 |
| ⓒ GPT 생성 이미지 |
"엄마는 갱년기 때 뭐가 제일 힘들었어?"
"몸 아픈 거. 몸이 너무 아팠어. 그리고 경제적인 거."
예상 외의 답변이었다. 심적으로 힘들었던 점, 우리가 무심했던 점을 말할 줄 알았는데, 경제적인 거라니. 엄마는 하루도 몸이 괜찮은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출근해야 했고, 쉴 수 없었다. 한 번은 생리를 한 달 반이나 계속하는데 양이 너무 많아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남자 사장님은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며 눈치를 줬고, 엄마는 갱년기를 이해 받을 수 없는 분위기여서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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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에서 생리양이 많아 곤란했다는 엄마. |
| ⓒ GPT 생성 이미지 |
"내가 몰라준 게 서운하지 않았어?"
"너희가 어렸을 때니까. 너희한텐 별로 바라지 않았어. 근데 보일러 안 틀어주고 그런 건 그렇게 서러웠어."
갱년기 엄마가 가장 서러웠던 건
기억을 떠올려보면 엄마는 자주 추워했다. 추우면 몸이 더 아파서 오빠와 나에게 보일러 틀어 놓으라고 종종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도 깜빡 잊고 틀어 놓지 않으니, 엄마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 화부터 냈다. 온화한 성격이었던 엄마가 변했다고 느꼈던 때도 이때쯤부터였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아서'와 같이 조금만 더 신경 써주었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것들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대화했더라면,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12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그때의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었다. 나의 무심이, 무지가 뼈저리게 아파왔다. 사라지지 못한 채 남아있던 묵은 감정들이 이제야 서로를 비추게 했다.
엄마의 갱년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tvN '어쩌다 어른' 10주년 특집에 나온 산부인과 전문의 김지연 원장은 "갱년기는 끝이 있는 게 아니라, 완경을 기점으로 여생 동안 계속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2025년 8월 12일에 방영)이라 말했다.
12년간 엄마 혼자서 외로이 감내했을 고통, 남은 갱년기는 이제 같이 이겨내려 한다. 가족이란, 그렇게 함께 나누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서로를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 아픈 마음을 이제는 함께 치유해 나가려 한다. 그 시작이 질문이었다.
새로운 시작, '나'를 위해서
처음 기사를 시작하게 했던 궁금증, '엄마는 왜 갱년기를 비밀로 했을까?'에 대한 답은 '비밀이 아니었다'였다. 6년 전 쯤, 지나가듯 얘기를 하셨었다고 했다. 언제인지 엄마도 기억을 못하고, 들은 나 역시 기억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 대화였다.
이제야 제대로 물었다. 지난 5일, 완경 이후 변화를 물어봤다. 엄마는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누군가의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왔기에 항상 자신은 보지 못했던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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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의 카톡 대화 내용 |
| ⓒ 안성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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