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한 중3 아들의 편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김효숙 기자]
(이전 기사 : 믿기 힘든 그날의 기록들, 11월에 되새겨봅니다)
11월의 첫 화요일. 찬 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우리들은 다시 구립 도서관 2층 문화 아지트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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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성한 그녀들의 탁자 여행 기념물 카카오 과자와 과일 그리고 허브를 수놓은 작품 |
| ⓒ 김효숙 |
시대의 어둠 속에서 양심을 지킨 사람들
우리들은 수다를 접고, 억울하게 사형 당한 여덟 분과 그 가족들이 진짜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 <다시, 봄은 왔으나>를 펼쳤다. 이날은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선생의 삶을 함께 읽고 나눴다. 세 사람의 삶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 결은 같았다.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고,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인간의 양심을 지키려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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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일 연작 소설집 푸른 혼 이룸출판사 인혁당재건위사건 희생자 여덟분의 삶을 다룬 연작 소설 |
| ⓒ 김효숙 |
송상진 선생의 둘째 아들 송철환씨가 무고한 아버지를 풀어달라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 편지가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썼을 중학교 3학년 아들의 마음이 자꾸 가슴께를 누른다.
각하, 저희 아버지는 결코 그러한 인물이 아닐 것입니다. 저희 가정에도 행복이 찾아올 수 있도록 각하께서 돌보아주신다면 저는 조국의 한 민주시민으로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각하께서 어버이의 은혜로 보살펴주십시오. 만국민이 모두 행복하게 웃으며 내일의 영광의 조국의 발전을 볼 수 있게 바쁜 시간이나마 저희들의 아픈 가슴을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974년 11월 13일 송철환
남편의 무죄를 외친 아내
우홍선 선생은 1930년 경남 언양 출신이다. 6.25전쟁 중 군에 입대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후 평화 통일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는 통일과 민주주의를 꿈꾸며 통일민주청년동맹(통민청)에서 활동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중앙정보부는 고문으로 사건을 만들었다.
부인 강순희 여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남편의 무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정보부에서는 남편들이 재판을 받는 중에 부인들도 끌고 갔다. 남편을 풀려나게 하고 싶으면 공산주의자라고 시인하라고 윽박지르는 요원들에게 여사는 도리어 남편의 무죄를 외쳤다. 한편,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으로 <동아일보>에 광고가 사라지자,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격려 광고를 보냈다. 강순희 여사도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광고에 동참했다.
여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그 어느 때와도 변함없이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들이 당한 인권유린과 억울함, 이 모든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겨나갑시다. 안정과 평안이 보장된 내일을 고대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오늘을 불만 없이 누리며 살아갑시다. -1975년 2월 8일 세칭 인혁당관계로 사형선고를 받은 우홍선 피고인의 아내 강순희 올림
하재완 선생은 창녕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하은호·하영규 선생의 후손이다. 청년 시절 그는 전두환과 함께 대구공업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대구공업중학교에서는 친일파를 타도하고 규탄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하재완 선생도 열심히 참여했다. 학창 시절 친구였던 두 사람은 그렇게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다.
하재완 선생은 4.19혁명 때 다친 학생을 돕기 위해 자신의 가구 살 돈을 내놓았다. 앞선 분들과 마찬가지로 통일과 민주 세상을 꿈꾸며 활동하다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고 고문 당했다. 그는 당시 '오적'으로 유명한 민중 시인 김지하와 교도관 몰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지하는 그들의 억울함을 깨닫고 감옥에서 나와 <동아일보>에 "고행… 1974"를 실어 조작된 사건을 온 세상에 폭로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부인 뿐 아니라 자녀들의 고통도 컸다. 그중에서도 하재완 선생 아이들의 고통은 읽는 이들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늘 함께 놀던 친구들이 '빨갱이 자식'이라며 소풍날 도시락에 개미를 넣기도 하고, 네 살 짜리 아이를 마을 당산나무에 묶어 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말리는 어른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더 답답한 현실이었다.
우리들은 책을 덮으며 하나같이 그동안 너무 몰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민주주의에 한 걸음 다가섰음을 이제야 알았다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리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자란 누군가는 어린 시절 "늘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라"하고 말하던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살아낸 모두가 겪어낸 공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고문의 흔적을 감추려고 송상진 선생의 시신을 빼돌리려는 경찰들과 그들을 막아선 이소선 여사와 정의구현사제단의 문정현 신부. 그들을 막아서다 문정현 신부는 크레인에 올랐다가 떨어져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아야 했다. 그 부분에서 그녀들은 또 한참을 먹먹하게 앉아 있었다.
"고문을 얘기하니 영화 <남영동 1985>가 생각나요."
"고통스러워하던 김근태 의원이 떠올라 가슴 아프네요."
"그분들의 고통과 희생으로 우리가 민주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자꾸 잊어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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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봄은 왔으나 이창훈 지음 인혁당재건위 사건 사형수 8인의 약전 |
| ⓒ 김효숙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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