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GPU 줘도 못쓸 것"…AI 전력전쟁, 원전 축소 韓의 현실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대학들은 전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AI 연구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는 다른 연구소의 서버 가동을 중지하는 등의 사용 제한까지 할 정도다. 수도권 한 사립대에서 AI를 연구하는 한 교수는 “전기 먹는 하마인 AI 연구가 본격화되며 전력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엔비디아가 한국에 주기로 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학교에 주더라도 전력 문제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AI 전력 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엔비디아로부터 GPU 26만장을 공급받으며 AI의 두뇌 확보에 숨통에 트이면서다. 문제는 두뇌를 돌릴 에너지원인 전기이다. 이번에 한국이 받은 GPU 26만 장(GB200 기준)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경우, 냉각 설비 등을 포함해 약 600 메가와트(㎿)의 전력이 소모된다. 신형 대형원전인 APR1400급 원전 1기 발전용량(1400㎿)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이 AI 전력전쟁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각국이 원전 확보에 나서는 와중에 나홀로 감(減)원전 역주행을 하고 있는 데다 전력을 실어나를 송전망 등 인프라 구축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다.

AI 주도권을 잡으려는 미국은 가동을 중단했던 기존 원전을 재가동하고, 천연가스 발전소를 적극적으로 늘리며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고, 탈원전 정책을 폈던 독일도 원전 건설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저탄소 전력에 대한 수요 증가와 AI 개발용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한 것"이라고 짚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데이터센터 전력수요에 대해 미국은 천연가스, 중국은 석탄 발전 등으로 해결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솔루션스트레트지파트너스의 함완균 대표는 “미국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와 ESS는 보조 발전원으로, 주발전원은 천연가스 발전을 사용하는 등 에너지원을 적절히 섞고 있는 상황”이라며 “재생에너지 등 특정 에너지원만 집중하지 않고 소형모듈원자로(SMR), 탄소포집 등 다양한 기술에 세액 공제를 줘 기술에 편향없이 전력 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재생에너지에만 무게추가 쏠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데이터센터 등으로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은 재생에너지”라며 “원전을 지을 곳이 없고, 지금 지어도 실제 가동까지 1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2035 NDC(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르면 전력 부문은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기량을 2018년 대비 68.8~75.3% 줄여야 한다.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를 조기에 퇴출하고, 태양광ㆍ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환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정부는 현재 34GW인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2030년까지 100GW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목표는 78GW이다.

이미 11차 전력기본계획에 담긴 대형 원전 2기 도입도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주무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도 “신규 원전 건설은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나서며 2037년과 2038년 도입이 예정된 대형 원전은 해당 일정에 맞추려면 올해 안에 부지를 선정해야 하지만, 현재 관련 작업은 휴업 상태다. 특히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수명 연장(계속운전) 결정이 9·10월 두 차례에 걸쳐 유보되며 감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 전문가 집단이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끝낸 상황에서 행정적 절차를 이유로 재가동을 미루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조치”라며 “싸고 안정적인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 발전만 고집할 경우 데이터센터들은 값싼 전기를 찾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높은 발전단가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h당 98달러로 글로벌 평균 35달러의 2배가 넘었다. LCOE는 발전소의 건설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총 발전량으로 나눈 수치로, 발전원의 효율을 재는 지표다. 원전의 경우 LCOE가 ㎿h당 53.3달러 수준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원전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기에 단기적으로는 전기료 인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정부가 발전사에 할당하는 탄소 배출권 중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하는 ‘유상 할당 비율’도 늘어나 발전사들이 2030년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도 4조원까지 뛰는 것도 부담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가스 발전은 발전소 건설에 2~3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데다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 공급이 가능하고 출력조절도 자유롭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전력 수요는 가스 발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추후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생산을 위해 신규 원전 건설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AI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송전망 확충 문제도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에 따르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54건의 송ㆍ변전설비 건설사업 중 55%(30건)가 지연되고 있거나 지연 예상 사업으로 분류됐다. 동해안 지역의 원전과 화력 발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옮기는 동해안∼수도권 송전선은 당초 2019년 준공 목표였지만 2026년 말 이후에야 완공될 전망이다. 송전망 건설에 속도를 내기에는 주민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AI의 발전속도 등을 고려할 때는 2030년까지 AI 전쟁의 1차 판정 결과가 나오는 만큼 데이터센터 구축도 속도전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송전망이 확충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원하는 사업자는 호남으로, 원전과 화력 발전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원하는 데이터센터는 영남권으로 보내는 등 지역 분산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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