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의존" 교수는 "축출"…AI 활용 두고 혼란스러운 대학가
연세대에 이어 고려대에서도 AI(인공지능)를 이용해 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드러나며 ‘AI 부정 사용’을 둘러싼 논란이 대학가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이미 시험·과제·연구 등 모든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게 일상화된 학생들과 이를 걸러내고 막으려는 교수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공방전’도 벌어지고 있다.

11일 학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실시된 고려대 교양과목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들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답안을 주고받은 정황이 적발됐다. 해당 수업은 약 1400명이 수강하는 온라인 강의로, 시험 또한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임시 저장 방지, 본인 인증 강화 등 기본적인 절차는 있었으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영상 촬영본 제출 등의 규정은 없었다고 한다. 답안을 공유한 일부 학생은 학교 자체 조사에서 “AI 도구를 활용했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측은 지난달 27일 공지를 통해 “부정행위를 묵과할 수 없으므로 중간고사 전면 무효화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고려대는 기말고사 운영 방식과 부정행위 방지 대책을 논의 중이다.
앞서 지난달 15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는 ‘자연어 처리(NLP)와 챗GPT’ 과목 중간고사에서 AI를 활용해 문제를 푼 일부 학생들이 적발됐다.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 수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내 투표에 참여한 353명 중 190명이 ‘커닝했다’고 응답했다. 지난 8월 서울 동국대 한 프로그래밍 수업에서도 학생들이 AI를 활용한 정황이 드러나 담당 교수들이 “AI를 사용할 경우 F학점을 부여하겠다”고 공지한 바 있다.

대학생 71%, "AI 서비스 이용한다"
대학에서 과제나 논문 등에서 AI를 활용하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됐다. 지난 2월 에브리타임 운영사 비누랩스가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2%가 “현재 AI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학교 2학년 조모(21)씨는 “리포트 쓸 때 기본적인 틀은 AI한테 맡기고 있다. 조별과제 할 때도 자료조사부터 발표 대본까지 전부 AI를 이용해 만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AI 활용을 넘어 ‘의존’ 단계에 이른 사람들도 다수라고 전했다. 대학생 박모(25)씨는 “온라인 강의 위주로 수강 신청을 하고 과제를 할 때도, 시험을 볼 때도 챗GPT를 쓴다”며 “AI 없이 학교에 다니는 건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에브리타임 서울대 게시판에는 “챗GPT만 믿고 과제 미루고 있다가 갑자기 챗GPT가 안 돼서 숙제를 못 했는데 교수님이 참작해주실지 모르겠다. 컴퓨터가 갑자기 망가져서 과제 제출 못 한 거랑 동급 같다”는 내용의 글도 올라왔다. 연세대 게시판에는 한 학생이 “시험 점수는 사실상 누가 AI를 잘 쓰는지 대결”이라는 수강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AI로 과제와 시험공부를 편하게 처리하려는 학생들과 이를 막으려는 교수들 사이에 치열한 공방도 펼쳐지고 있다. AI가 쓴 글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생성형 AI 탐지 서비스 ‘GPT킬러’ ‘GPT제로’ 등을 사용하면, 학생들은 다시 AI 판독기를 피하기 위해 프롬프트에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학습시키는 우회 전략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과제 작성을 AI에 맡긴다는 대학생 정모(22)씨는 “챗GPT에 리포트를 내 말투로 자연스럽게 만들어 달라고 한 다음, 다시 ‘GPT 판독기에 안 걸리게 만들어줘’ 명령한다”며 “한 번도 걸려본 적 없다”고 말했다.

대학들, AI 사용 가이드라인 못 만들어
이처럼 논란이 뜨겁지만, 상당수 대학은 아직 AI에 대한 사용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대학 131곳 중 101곳(77.1%)은 생성형 AI에 대한 공식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실이 지난달 각 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한 논문 작성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둔 곳은 전국 국공립대·국립대병원 55곳 중 3곳(국립한밭대·충남대·한국체육대)에 불과했다. 서울대는 AI 윤리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TF를 운영 중이나 아직 가이드라인은 수립하진 못했다고 답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변화된 사회에서 AI 사용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AI만 쓰다 보면 사고력이 떨어지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며 “그동안 암기해왔던 것들은 AI의 도움을 받되, 축적된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AI 대신 창의적인 영역에서는 학생 고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식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출처를 어디까지 표기하고, 어느 정도까지 활용할지 등 가이드라인도 사회에서 합의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율 기자 jun.yul@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사? 자격증? 이 기술이 최고” 前경찰서장이 찾은 알짜 직업 | 중앙일보
- 공부 잘하는 아이, 이게 달랐다…회복탄력성 전문가의 조언 | 중앙일보
- "니가 뭔데! 내가 대통령이야!" 윤 폭언, 공동정부 끝장냈다 | 중앙일보
- 대낮 카페서 성관계까지…울산 '불륜 커플' 낯 뜨거운 80분 | 중앙일보
- 한밤 산속 수상한 펜션…중장년 수십명, 전국 돌며 벌인 짓 | 중앙일보
- "이혼 했어요?" 묻자 "왜 물어" 쾅…일하러 갔다 또 욕먹었다 | 중앙일보
- "얼굴 피범벅, 죽는구나 싶었다" 납치됐던 100만 유튜버 심경 고백 | 중앙일보
- "외로움은 팔지 않는다"…'혼밥' 손님 거부한 식당 안내문 논란 | 중앙일보
- 하루 종일 '자택 칩거' 노만석 포착 됐다…고뇌하는 모습 담겨 | 중앙일보
- 트럼프 치즈 버거, 초호화 시진핑 파전…APEC 밥상, 얼마면 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