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성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검토하라" 돌연 지시, 왜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하는 걸 검토하라”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있는 사실을 얘기한 거 가지고 명예훼손이라고….(하는 것 맞지 않는다.) 민사로 해결해야할 것 같다. 형사 처벌이 아니라”라고 했다. 특히 “독일이나 해외 입법례를 참고해서 시간 걸리지 말고 빨리 했으면 좋겠다”며 신속한 폐지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법 조항은 형법 307조 1항(‘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다.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이 조항은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했고, 이듬해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도 같은 입장을 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독일은 적시된 내용이 사실로 증명되면, 공익·사익 여부에 상관없이 형법 대상에서 제외한다. 국회에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폐지 법안을 냈다.
대통령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언급한 건 처음이다. 이 대통령도 과거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 배경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으로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우리나라의 형사처벌 과잉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형법이 아닌 민사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발언은 갑작스러운 건 아니라고 한다. 민정수석실은 지난 9월부터 형법 체계 개편을 추진하며, 그 과정 중 하나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검토했다고 한다. 또 다른 수석실에서도 ‘가짜뉴스 처벌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검토하면서 표현의 자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의 필요성도 함께 검토해왔다.
이 대통령은 혐오·차별에 대한 엄중 처벌 방침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인종, 출신, 국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차별, 혐오가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주한 외교사절 행사를 소화한 뒤 직원들에게 “얼굴이 새까만 사람들만 모였더라”고 말해 논란이 됐었다. 이 대통령은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장치를 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 현수막이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길바닥에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의 현수막이 달려도 정당이 게시한 것이어서 철거 못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며 “정당이라고 해서 지정된 곳이 아닌 아무 곳에나 현수막을 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악용이 심하면 법을 개정하든 없애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국내 주식 장기 투자 시 세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구윤철 경제부총리에게 지시했다. 현재 국내엔 장기 보유 공제 등 장기 투자 인센티브가 사실상 없다. 이런 세제가 단기 매매 중심의 시장을 만든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의 경우엔 주식 매입 후 1년 이상 지나 매각한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선 저율로 분리과세하는 제도가 있다.
이 대통령은 “장기 투자 인센티브 부여 제도에 대해 결국 대주주들이 혜택을 보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며 “부자 감세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일반 투자자에게 장기투자에 대한 혜택이 있을 수 있도록 방안을 세부적으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선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의결됐다.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은 일부 고통이 따르더라도 지속가능한 성장,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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