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성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검토하라" 돌연 지시, 왜

윤성민 2025. 11. 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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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9회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하는 걸 검토하라”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있는 사실을 얘기한 거 가지고 명예훼손이라고….(하는 것 맞지 않는다.) 민사로 해결해야할 것 같다. 형사 처벌이 아니라”라고 했다. 특히 “독일이나 해외 입법례를 참고해서 시간 걸리지 말고 빨리 했으면 좋겠다”며 신속한 폐지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법 조항은 형법 307조 1항(‘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다.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이 조항은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했고, 이듬해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도 같은 입장을 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독일은 적시된 내용이 사실로 증명되면, 공익·사익 여부에 상관없이 형법 대상에서 제외한다. 국회에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폐지 법안을 냈다.

대통령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언급한 건 처음이다. 이 대통령도 과거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 배경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으로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우리나라의 형사처벌 과잉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형법이 아닌 민사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발언은 갑작스러운 건 아니라고 한다. 민정수석실은 지난 9월부터 형법 체계 개편을 추진하며, 그 과정 중 하나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검토했다고 한다. 또 다른 수석실에서도 ‘가짜뉴스 처벌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검토하면서 표현의 자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의 필요성도 함께 검토해왔다.

이 대통령은 혐오·차별에 대한 엄중 처벌 방침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인종, 출신, 국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차별, 혐오가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주한 외교사절 행사를 소화한 뒤 직원들에게 “얼굴이 새까만 사람들만 모였더라”고 말해 논란이 됐었다. 이 대통령은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장치를 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 현수막이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길바닥에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의 현수막이 달려도 정당이 게시한 것이어서 철거 못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며 “정당이라고 해서 지정된 곳이 아닌 아무 곳에나 현수막을 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악용이 심하면 법을 개정하든 없애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코스피가 33.15p(0.81%) 오른 4,106.39에 거래를 마친 11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딜러들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국내 주식 장기 투자 시 세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구윤철 경제부총리에게 지시했다. 현재 국내엔 장기 보유 공제 등 장기 투자 인센티브가 사실상 없다. 이런 세제가 단기 매매 중심의 시장을 만든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의 경우엔 주식 매입 후 1년 이상 지나 매각한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선 저율로 분리과세하는 제도가 있다.

이 대통령은 “장기 투자 인센티브 부여 제도에 대해 결국 대주주들이 혜택을 보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며 “부자 감세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일반 투자자에게 장기투자에 대한 혜택이 있을 수 있도록 방안을 세부적으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선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의결됐다.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은 일부 고통이 따르더라도 지속가능한 성장,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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