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선거 출마하지 마" 익명 문자... 그때 용기 내서 한 행동
[홍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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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무의 '걸즈온휠즈'에 참여한 참가자들. '학교에서 살아남기'주제로 휠체어 이용 MZ 여성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자립했는지를 말해주는 토크콘서트다. |
| ⓒ 사단법인무의 |
지난 2일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 오지영 복지사는 세 명의 휠체어를 탄 소녀들을 소개했다. 사단법인 무의가 개최한 3회 '걸즈온휠즈' 행사에 참여하러 온 이 소녀들처럼 각양각색의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쉴새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갔다.
휠체어를 탄 내 딸은 초중고등학교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유일한 학생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딸의 질문에 답이 막힐 때가 있었다. 비장애인인 내가 답해줄 수 없는, 하지만 아이에게는 너무나 궁금한 소소한 질문과 의문들.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학교에서 누군가 어떤 말을 뱉었는데 차별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여 대응하는지, 장애학생 입시는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런 딸을 생각하며 마련한 '걸즈온휠즈'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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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무의 '걸즈온휠즈' 연사인 윤여운님이 청중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 사단법인무의 |
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 휴학 중인 윤여운이다. 선천적관절구축증과 척수성근위축증을 갖고 있으며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지금은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장대넷)에서 부이사장 겸 대외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때 나는 내향적인 아이였다. 누가 내 장애를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웠다. 친구들은 '넌 언제 나아?' '너는 언제 걸을 수 있어?'란 질문을 했다. 아이들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내겐 다름을 계속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이걸 숨기기보다, 친구들에게 내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오해하는 게 싫었어요. 어느 날 용기 내서 말했다. "내 장애는 낫는 병이 아니야. 그냥 내가 가지고 태어난 특징이야. 네가 태어날 때부터 머리색이 검정이었던 것처럼."
이 말을 꺼내는 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말을 하고 나니까, 놀랍게도 친구들이 오히려 제 곁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 그랬구나. 우리가 너랑 같이할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해 볼게." 표현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이해하게 만드는 시작이라는 걸 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생 첫 큰 용기를 냈다. 한번 반장 선거를 나가보자! 주변에서 용기를 줘서 도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휴대폰으로 발신번호 표시제한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은 '네가 반장이 되면 아파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반 친구들이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까 반장 선거에 출마하지 마.'
처음 문자를 받고 너무 화가 나고 슬펐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전화국에 가서 누가 보낸 건지 확인을 해보니, 가장 친했던, 같이 반장 선거에 출마한 친구의 부모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저는 정말 많은 감정이 스쳤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는 슬픔, 어른이 자기 자식과 같은 나이의 아이한테 저렇게 할 수 있다니...
내 장애 때문에 진짜 반 친구들이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나는 앞으로 이런 시선 앞에서 계속 침묵하게 될지도 몰라.' 숨기지 않고 담임선생님께 찾아가 이야기했다.
혐오는 침묵 속에서 자라고, 표현하는 건 그 침묵을 깰 수 있는 첫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중고등학교가 드물어 같은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진 곳의 학교를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미 자기들끼리 친한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가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마이쮸 권법이었다. 마이쮸 하나를 짝꿍이나 앞뒤 친구들에게 주면서 '이거 먹을래?'라고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엔 친구들의 관심사를 공부했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돌, 드라마, 영화, 게임 등등을 찾아보고 그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다음 날 더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었다. "그 노래 진짜 좋더라." "그 드라마 나도 어제 봤는데 웃기던데?" 그렇게 조금씩 대화가 이어졌다.
이후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과 더 돈독하게 지낼 수 있었던 데엔 고3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은 단체사진을 찍는다거나 학교에서 외부로 나갈 때마다 무조건 나를 먼저 챙겼다. 친구들도 당연하게 단체활동을 할 때 내가 보이지 않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여운이가 가운데로 와!'라고 외쳐주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휠체어로 들어갈 수 없는 여러 세상에서 대학생활을 즐기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또다시 마음이 힘들어진 때가 있었다. 이때 만난 게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이하 장대넷)이다. 코로나 시절 시청각장애 학생들이 학습권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는데 발전하여 다양한 장애를 가진 대학생과 청년들이 모여서 장애 학생들, 청년들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단체다.
장대넷에서는 누가 더 대단한 사람인지, 누가 더 많이 아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요즘 우리 학교는 이런 게 불편했어", "이건 바뀌면 좋겠어" 같은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이 활동을 통해 혐오와 차별은 어떤 한 사람을 설득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이해하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는 이동권을, 누군가는 학교의 접근성 문제를, 또 누군가는 장애청년의 고용 문제를 이야기했다.
장대넷은 내게 혐오를 없애는 방법은 싸움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그 시간들이 혐오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되었다. 이제 누군가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힘들겠다"라고 말하더라도 예전처럼 바로 상처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 말에 맞설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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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무의 걸즈온휠즈 2025 연사인 유지혜님이 발언하고 있다 |
| ⓒ 사단법인무의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유지혜다. 선천적으로 이분척추증 지방척수수막류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이용한다.
대학 준비할 때의 일이다. 장애 학생은 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자'로 분류된다. 입시 때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학교에서도 잘 모르더라. 결국 혼자 입시를 준비했다. 장애 학생 전형 정보를 나누는 카페에 올라온 글을 토대로 입시 전략을 스스로 짰다. 혼자서 준비를 마친 후에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오히려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을 해 드린 셈이 됐다.
보통 수능 원서 접수는 재학 중인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처리를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학교에서 알아서 저를 특수교육대상자로 분류하여 처리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걸 알게 된 건 우리 학교에 강연을 온 굴러라구르님 김지우님이었다. 그날 충격을 받고 교육청에 전화를 했다.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닌 '기타 편의시설 지원 대상자'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하더라. '기타 편의시설 지원 대상자'로 수능 응시 학교를 배정받는다는 것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혹은 장애인화장실이 없는 학교에 제가 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화 너머에서는 "우리 지역에선 처음 있는 일이라 잘 모르겠다", "특수교육대상자는 수능을 안 보지 않느냐? 이례적이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교육청에 가서 직접 수능 신청을 했다. 서류를 잔뜩 준비해야 해서 담임선생님에게 말하고 결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무단결석으로 처리될 뻔했다. 나와 같은 경우를 어떤 결석으로 처리해야 할지 사례가 없다 보니 이 결석을 '인정결석'으로 처리하는 데 학교에서 회의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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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무의 걸즈온휠즈 참가자들이 '내가 꿈꾸는 모두의 학교는'이란 포스트잇을 써서 남겼다 |
| ⓒ 사단법인무의 |
한편으로 들뜨고 기대됐다. 이번 기회에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졌다. 당시 저는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내가 힘이 없고 의존적인 사람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입학 첫 주 화장실에서 씻다가 굴러떨어진 이후로 바뀌었다. 다행히 그 때 엄마가 기숙사에 계셨기에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일을 겪은 후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움을 의존으로 생각하지 않고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멍든 다리를 문지르며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이후 송도 지역 활동지원사를 구하고, 샤워하는 것은 도움을 받으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혼자 살아가는 경험을 해본 덕에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컵라면도 끓일 줄 몰랐던 저는 간단한 전자레인지 요리도 하고, 전기 포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스케줄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그 전에 워커로 실내 생활을 하다가 실내에서 휠체어 생활을 하니, 자연스레 트랜스퍼(옮겨 앉기)능력도 익힐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이뤄낸 것들이 너무 당연할 수 있겠지만, 일상생활을 저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송도가 신도시라는 건 내게 엄청난 자유를 선사했다. 모든 건물이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는 기본이고, 심지어 건물마다 장애인화장실이 있던 덕에 가고 싶은 곳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친구들과 밤새도록 보드게임, 농구, 노래방에서 놀고 난 후 송도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아침에 기숙사로 들어오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시도하면서 두려울 때도 많다. 그저 한 번, 두 번 시도해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할 수 있구나!'라는 대답으로 바뀐 그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이룬 것 같다. 여러분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구나'라는 대답으로 바꾸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대학에 와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건, 다른 사람들과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습관화되었다는 거다. 하지만 한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우리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또한 비장애인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친구와 대화하기 이전부터 '저 친구는 나를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거야'하고 단정 지으며 그 친구를 먼저 대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사실을 대학에 오고서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레짐작을 자주 하는 편이라 아직까지 완전히 고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함께 있는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의 모습에 집착하기보다, 당장 여러분 앞에 있는 친구들에게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는 뇌를 빼고 그 순간, 그 이야기에 집중해서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셨으면 좋겠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어도 좋으니,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대답으로 바꿔보았으면 한다. 그 순간이 쌓이면, 어느새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길을 향해 굴러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
진정한 '모두의 학교'
이날 참가자들이 포스트잇에 써서 붙인 '내가 원하는 모두의 학교'에는 이런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당연하게 존재하는 학교" "장애를 이유로 불이익이 없는 학교"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의 제한이 없는 학교" "설명과 사과보다 존중과 환대가 있는 모두의 학교" "혐오나 동정의 시선이 없는 학교" "사회의 책임을 학생 개인이 떠맡지 않아도 되는 학교"
학교에서 접하는 장애 차별은 노골적이라기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은 이래서 중요하다. 이날 홀을 꽉 메운 청소년과 청년들의 반짝이는 눈이 아직도 기억난다. 장애청소년, 청년들이 처음 접하는 사회인 학교에서 내 목소리를 자신 있게 내고, 그 목소리가 다시 학교 현장의 변화로 이어져야만 진정한 모두의 학교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단법인 무의는 '걸즈온휠즈'에 이어 접근가능한 모두의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 내 휠체어 접근성을 학생과 교사가 직접 수집할 수 있는 모모탐사대를 운영하고 있다. 검색에 '모모탐사대'를 입력하면 학교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자료와 조사 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다.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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