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대체 얼마나 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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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기자]
계절은 무심하게 툭 다가와 마음에 물결을 일으켰다가 무심하게 툭 지나간다. 가을 하늘이 너무 파랗고 예뻐서 몇 번을 감탄하며 올려다보는 요즘이었다. 운전을 하고 있던 화창한 어느 날, 노란 은행나무 잎과 불타는 단풍이 시야에 들어와 알짱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이 계절을 무덤덤하게 흘려보낼 거야? 우리가 이렇게 노랗고 붉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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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167호 반계리 은행나무는 울타리로 보호되어 있었다. 은행나무를 구경하러 온 인파들은 은행나무 둘레를 빙빙 돌면서 각도마다 햇빛을 달리 받아서 다양한 노란빛을 뿜어내는 자태를 감상하고,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
| ⓒ 이수연 |
'대체 은행나무가 얼마나 크기에.'
멀리서 보이는 은행나무는 기대보다 크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점차 가까이 다가가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웅장한 은행나무가 신비로운 기운을 뿜으며 사람들을 360도로 포옹하고 있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가 쳐져 있고, 은행나무 둘레 가득 저마다 인증샷을 찍느라 빈틈 찾기도 힘든 정도였다.
우리도 그 일행에 합류해 은행나무를 돌면서 연신 사진을 남겼다. '눈과 마음에 담는 게 더 중요한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멋진 광경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여러 컷을 남겼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원주시 문막읍에 위치하며 높이는 32m, 둘레가 16.27m에 달한다고 한다. 무려 1000년을 넘게 살아온 천연기념물로,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무 전체가 웅장한 모습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눈앞에서 올려다본 반계리 은행나무는 매우 건강한 상태로 가지와 줄기가 균형 있게 퍼져 있어 그 아름다움이 입체적이었다.
우리 집 앞에서 흔하게 보이는 은행나무의 나뭇잎이 한두 빛깔 노란색이라면, 반계리 은행나무는 너무나 웅장해서 노란색, 연두색 물감이 그라데이션 된 듯 수십 가지 노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은행나무 둘레를 걸으니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빛깔이 나서 다채로웠다. 은행나무 잎이 사방팔방으로 뻗은 가지에서 노란빛, 황금빛 기운을 뻗어 내고 있는 모습에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은행잎 하나하나가 모여 세월을 버티고 웅장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듯이, 나처럼 이름 없는 소시민도 은행잎 하나처럼 귀하고 빛날 수도 있겠다. 가까이 있는 같은 방향의 나뭇잎들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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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연기념물 167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하여 원주시 문막읍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167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고 왔습니다. 1000년이 넘는 인고의 세월을 견딘 나무답게, 웅장한 규모와 멋진 위용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
| ⓒ 이수연 |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1000년의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보존되어 생물학적 가치가 높다. 여러 전설을 가지고 있기에 민속 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 되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했던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사람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며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모처럼 남편과 둘이 고속도로를 달려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해 둔 차까지 가기 위해 걸어 나오는 길에 텃밭에서 갓 뽑은 배추와 쪽파, 무 등을 손수레에 실어 팔고 있었다. 근처 텃밭들에는 김장을 기다리는 가을 배추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속이 노란 배추 한 포기와 쪽파 한 단을 각각 2000원, 5000원에 샀다.
"직접 골라 가시겠어요? 아니면 골라 드릴까요?"
"골라 주세요."
나는 웬만하면 주는 대로 받는다. 내 선택보다는 타인의 선택을 더 신뢰한달까? 아가씨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다 똑같아 보이는 배추더미와 쪽파더미에서 요리조리 들었다 놓으며 신중하게 고르기에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거 골라 주시려나 봐요."
"아이고. 당연하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배추 반포기를 어슷 썰어 소금에 절이지도 않고 겉절이를 했다. 배추에 액젓과 고춧가루, 마늘, 요리당, 깨만 넣고 휘리릭 무쳤다. 배추의 단맛과 아삭함 덕인지 양념은 거들 뿐이었다. 분명 겉절이인데, 나는 침샘을 자극하는 칼칼한 배추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작정하고 가을을 만끽하러 나서서 구경한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도, 돌아오는 길에 사 온 배추 반 포기로 만든 겉절이도 뚜렷한 감각으로 남았다. 무심히 툭 지나갈 뻔한 가을을 잠시 품에 안으니,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과 겉절이의 시원한 맛이 소소한 행복으로 남은 하루가 되었다.
아이들의 보호자로서가 아닌, 둘만의 홀가분한 당일치기 나들이 덕에 잠시나마 옛날로 돌아가는 설레는 기분도 느꼈다. 가을이 가을가을한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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