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한달살기로 여기도 괜찮겠네

김성례 2025. 11. 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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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수도라 불리는 보르도와 잊지 못할 호스트 이야기

프랑스 한달 여행 중 지난 10월 13일~15일까지 머물렀던 보르도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김성례 기자]

나는 여행할 때 항상 이전 여행지의 추억을 모두 그곳에 비우고 떠났다. 툴루즈와 다정했던 서바스 가족과의 작별은 아쉬웠지만, 보르도로 향하는 길에는 다시 설렘이 가득했다. 그리 멀지 않은 두 도시인데도 여태껏 보르도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이 또한 인연이 닿아야 하는 여행의 섭리려니 생각하였다.
▲ 보르도 생 안드레 대성당과 고풍스런 시내풍경
ⓒ 김성례
사실 보르도 호스트를 구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보통은 몇 주 전부터 연락해야 하는데, 툴루즈에 머무르던 중 이삼일 전에 급하게 지인의 소개로 보르도의 샹탈이 2박 3일 동안 호스트를 해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그리고 샹탈과 통화 후 픽업 장소까지 문자로 안내받았을 때, 어마어마한 짐 가방을 들고 다니던 우리에게는 그것 또한 감동이었다.

샹탈은 "Kim, 기차역에서 트램 C 선을 타고 뮈사르에서 내리세요. 그곳이 제가 주차하기 편한 곳이니 미리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말해줬고, 약속 장소에 내리니 그녀는 1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떠나올 때는 다시 역까지 우릴 태워주었다.

예기치 못했던 호스트, 샹탈의 이야기

샹탈은 59년생인데 사회복지사 일을 마치고 은퇴하였다. 가까이 사는 딸이 자주 방문을 하고 나중에 말한 바로는 남편과는 일찍 별거하였다. 싱글인 샹탈과 나는 유난히 대화가 잘 통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웃었다. 내가 왜 이렇게 대화가 편할까 궁금해 하자, 샹탈은 "서로에게 열려 있고 신뢰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본가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18살에 보르도로 와서 공부한 뒤,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20년 전 환자에게서 연락이 와서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전 환자는 손자가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녀의 도움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데 샹탈은 자신이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기억해준 것이 오히려 더 고마웠다고 했다.

샹탈의 집은 보르도 근교의 크지 않은 단독주택으로, 작은 마당이 있고 들어서면 왼편이 거실이고 그 다음이 작은 주방이다. 그리고 오른편에 그녀의 침실과 딸이 오면 쓰는 방, 그리고 서재가 있었다. 우리는 좁은 방보다도 넓은 거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큰 짐가방을 펼쳐놓기 좋고 피아노도 있는 거실 겸 식당이었는데 식탁이 가운데 있었다. 거실용 소파는 펼치면 침대가 되기에 그걸 사용했다.

불편하리라 생각했던 소파 침대에서도 잠을 잘 잤다. 무엇보다 공간이 넓어 큰 여행용 가방과 나머지 가방들을 펼쳐놓기 편하였다. 남편과 나는 이번 여행에서 '짐 싸기 실패'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꼭 필요한 얇은 내의나 외투 대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과 불필요한 전자 제품, 남편의 카메라 가방까지 더해져 짐이 무거웠고 부피가 컸다. 그래서 매번 여러 교통 수단을 갈아타며 이동하느라 고생했던 만큼, 다음 여행부터는 꼭 수정해야 할 중요한 피드백을 얻은 셈이었다.

잊지 못할 저녁 식사와 유쾌한 티키타카
▲ 샹탈 호스트집과 라클레트요리
ⓒ 김성례
샹탈은 우리가 도착한 날 점심부터 미리 준비해 둔 치킨 요리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그래서 저녁은 내가 한국 요리를 해주겠다며 같이 시장을 본 뒤 제육볶음을 해주었다. 샹탈이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 날이라 그녀의 피아노 선생님인 친구도 함께 먹었는데 처음 맛본 매콤한 오이무침과 쌈 싸 먹는 제육볶음을 모두 좋아했다. 샹탈은 내가 떠나온 뒤 남은 음식을 친구와 함께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며 레시피를 달라고 하였기에 나는 곧바로 왓츠앱으로 보내주었다.

다음 날 저녁, 남편과 내가 보르도 시내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샹탈이 미리 저녁 식사를 준비해두었다. 번거로운 특별 요리 도구와 치즈까지 준비해 1년에 두어 번 정도만 한다는 '라클레트' 요리를 해주었다. 샹탈은 감자도 예쁜 걸 사려고 일부러 근처 시장에 다녀왔다며 웃었다. 우리가 치즈를 녹여 먹는 라클레트를 재밌게 해 먹고 있으니 피곤해서 자고 있던 딸 조에가 나와서 합류하였다. 딸이 이 요리를 정말 좋아한다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식사 후 남편이 디종 행사에서 불렀던 동요 두 곡을 조에와 하모니카로 합주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조에는 "20년 만이에요!" 하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샹탈은 딸이 오랜만에 피아노 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영상으로 찍었고, 동요 노래가 너무 서정적이라며 좋아했다.

샹탈과 티키타카가 재밌었던 내용 중 하나를 소개한다. 내가 프랑스에는 365가지가 넘는 치즈가 있어 매일 바꿔 먹어도 될 정도라고 하자, 샹탈은 자기 아버지도 우유가 남아돌아 버리다가 나중에 치즈를 만들었다며, 프랑스 치즈는 시중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있을 거라고 말해 함께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대대로 보르도 근교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프랑스에는 대혁명 이전에는 기록된 가계도인 족보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들은 소작농의 삶을 이어갔는데, 자신이 자랄 때만 해도 지주에게 소출의 50% 이상을 바쳤다는 이야기에 나는 기가 막혔다. "아니, 대혁명의 나라에서 그건 너무 심하지 않나?" 하며 믿기지 않는다고 하자, 샹탈은 웃으며 "왜? 빅토르 위고의 나라? <레미제라블> 생각나?"라고 반응하였다.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그녀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 바로 이심전심일까? 아무튼, 그런 식으로 그녀와 나는 코드가 잘 맞았다.

와인의 수도, 보르도를 거닐다
▲ 보르도 시내 풍경 넓은 거리와 거리의 악사
ⓒ 김성례
보르도는 내가 살았던 툴루즈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세계 와인의 수도'답게 시원하게 뻗은 큰 도로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도심까지 연결된 트램 교통망은 뭔가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실제로 교통수단과 교역은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보르도의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었다. 곳곳에 부의 향기가 느껴지는 부티크와 숍이 많았다.
▲ 보르도 Place de la Bourse 물의 거울(Miroir d'eau)
ⓒ 김성례
▲ 보르도 와인의 수도, 와인 박물관, Muse'e du Vin
ⓒ 김성례
보르도 와인 박물관을 가서 와인과 교역의 역사도 훑어보았다. 깊이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자세하고 방대한 내용들에 놀랐다. 여행하면서 혹시 나중에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은 곳을 미리 그려보기도 하는데, 강변을 따라 넓고 시원하게 재 정비된 도시 풍경이 머물기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보르도 가론 강변 피크닉하는사람들과 산책길
ⓒ 김성례

덧붙이는 글 | 기사 채택 후 다른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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