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도시락, '맛없없' 조합이면 술술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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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정 기자]
아는 지인의 딸이 올해 수능을 본다며 도시락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영양사 일을 오래 해온 내 의견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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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도시락 수능도시락 완성 |
| ⓒ 송미정 |
몇몇 엄마들은 수능 도시락 예행 연습까지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베란다에 도시락을 내놓고 얼마나 식는지 확인해 보고,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직접 싸보며 연습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지인의 아이 학교에서는 수능 한 달 전부터 실제 시험처럼 도시락을 준비해 먹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단다. 그 아이는 며칠간 김치볶음밥, 죽, 갈비탕 등 여러 메뉴를 먹어 본 끝에 '갈비탕이 가장 속이 편했다'며 수능날 도시락으로 갈비탕을 선택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높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니, 수능 도시락 메뉴가 중요하겠다 싶었다. 아이 소풍 도시락도 신경 쓰이는데, 1년에 단 한 번뿐인 시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도시락이니 예행 연습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너무 든든하게 먹으면 졸리고, 적게 먹으면 배고파 집중이 흐트러지니 메뉴 선택이 쉬울 리 없다.
지인은 "애는 그냥 유부초밥을 싸달라는데 괜찮을까?"라고 물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시험 날 만큼은 간단하게 먹고 싶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부초밥은 금방 차가워지고, 차가운 밥은 소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평소처럼 따뜻한 음식을 싸가는 것이 좋다고 했고, 꼭 유부초밥을 원한다면 후레이크 대신 잘게 다진 생야채와 볶은 소고기를 넣어 보온 도시락 밥통에 넣어주는 방법도 있다고 조심스레 조언했다.
'내 아이의 수능 도시락이라면?' 하고 상상을 해봤다. 김밥은 식으면 소화가 안 될 수 있으니 제외, 죽은 금방 배가 고파질 수 있으니 이것도 제외. 대신 잡곡밥에 소고기뭇국, 계란말이, 입맛을 살리는 김치볶음, 스팸구이 같은 메뉴가 떠올랐다. 영양가보다 입맛 없을 때도 술술 넘어가는 '맛없없' 조합을 우선했다.
쉬는 시간에 잠깐 에너지를 줄 초콜릿과 비타민음료도 챙기고 말이다. 스팸 대신 옛날 소시지를 넣어도 좋고, 계란말이에 스팸을 다져 넣어도 괜찮겠다. 너무 특별하지 않은, 그래서 더 편안한 구성이다.
특별한 하루보다 담담한 하루로
예전에 봤던 '서울대생들은 수능날 어떤 도시락을 먹었을까?'라는 인터뷰가 떠올랐다. 대부분 아침은 챙겨 먹고 갔으며, 도시락 반찬도 평소 먹던 것의 연장선이었다. 심지어 미끄러진다며 기피하는 미역국도 거리낌 없이 먹고 간 학생들이 많았다. 서울대 가는 학생들에게는 미역국이 징크스가 되지 않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던 기억이다. 그들의 도시락은 계란장조림, 계란말이, 소불고기, 소고기무국, 미역국, 시금치무침 등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혹시 특별한 도시락이 있을까?' 싶었지만, 결론은 정반대였다. 수능 도시락의 핵심은 '특별하면 안 된다'는 것. 지극히 평범한, 아이가 좋아하고 늘 먹던 맛. 엄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 그게 가장 좋은 도시락이다.
수능날을 '특별한 하루'로 만들기보다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처럼 담담히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 아닐까. '수능 대박', '행운은 너의 편' 같은 말들은 오히려 부담을 주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 본인을 믿는 마음, 그리고 부모가 그 마음을 믿어주는 것이다.
배구여제 김연경 선수도 경기마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할 때보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으로 뛰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수능도 결국 기세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 아이들이 컨디션을 잘 조절해 수능날 최고의 몸과 마음으로 시험을 '기세로 눌러버리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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