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병건의 시선] ‘원잠 한국’ 환호는 아직 이르다

채병건 2025. 11. 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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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편집국장대리

정부가 미국에게서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확보라는 약속을 얻어낸 건 외교적 성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단 환호하기엔 아직 이르다. ‘원잠 한국’은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원잠 확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동체와 원자로 같은 ‘껍데기’ 부분이다. 조선 강국인 한국은 이미 재래식 잠수함을 자체 건조하며 전통의 강자인 독일·프랑스를 뒤쫓고 있다. 이에 비해 원자로는 아직 완성품을 만든 경험이 없어 시간이 필요하다. 잠수함용 원자로는 기항지를 옮겨 다니니 지상에 고정된 원자로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그럼에도 오랜 원전 개발 정책을 통해 인프라와 연구 기반을 구축해온 만큼 전문가들은 원잠 건조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평가한다. 정부와 업계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이게 원잠용 원자로와 기술적으로 겹친다. 한국형 원잠에 필요한 출력은 약 70㎿라는데, 공교롭게도 정부가 추진 중인 SMR도 비슷한 수준이다.

「 원자로·연료 모두 미국이 관건
합의엔 없던 추가비용 가능성도
트럼프는 떠나면 그만, 갈 길 멀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이 지난 4일 국방부 청사에서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마치고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관건은 기술력보다 미국이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미국 정부가 한국이 100% 건조를 주도하도록 허용할지는 미지수”라며 “핵심 부품, 설계, 조립 등의 과정에서 미국 통제를 받도록 조건을 달 수 있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전략자산, 첨단무기의 국외 반출을 엄격히 통제해 왔다. 원잠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건조엔 추가 비용이 들 수도 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이 한국의 원잠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이면에선 미국 내 조선 인프라에 대한 후속 투자,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다른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잠의 둘째 부분은 연료다. 원잠을 만들어도 연료인 농축우라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사실 원자로보다 더 민감하다. 2015년 개정돼 2035년까지 유지되는 한·미원자력협정은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은 미국과 협의를 통해 농축할 수 있도록 했고, 20% 이상은 금지했다. 정부는 20% 미만 농축 우라늄을 미국에서 도입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원자력협정 13조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를 해결해야 한다. 미국과 협의해 문구를 수정하든지, 아니면 미국에게서 원잠 추진용 핵연료는 군사적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얻어내야 한다. 미 행정부와 얘기가 잘 돼도 미 의회를 넘어야 한다. 협정을 개정할 경우 미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연료 도입 과정 역시 당초엔 없던 추가 비용이 등장할 수 있다. 정부가 미국에서 받으려는 연료는 SMR에 쓰이는 HALEU(고순도저농축우라늄)일 가능성이 크다. 함형필 KIDA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한국이 안정적으로 연료를 공급받으려면 예컨대 미국의 HALEU 생산업체인 센트루스 에너지의 증설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가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실증로를 만들고 연료를 도입해 기술적 검증을 마친 뒤 원잠 전력화에 성공해도 미국이 돌연 추가 연료 공급이나 농축을 차단하면 원잠은 전시용에 그치고 만다. 물론 미국을 무시하고 독자 우라늄 농축을 강행하거나 러시아에서 핵연료를 사들이는 방법이 있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이처럼 원잠은 원자로 제작, 동체 건조, 연료 도입, 후속 운용에 이르기까지 안정적인 대미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한 전직 군 장교는 워싱턴 당국자들에게 원전 필요성을 설득하다가 거부당했던 경험을 전했다. “한국이 중국 해군을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왜 원잠이 필요한가. 그 돈이면 디젤 잠수함을 더 많이 만들어 북한을 견제하는 게 낫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지로 지목한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 김현동 기자

미국이 한국 원잠을 허용한다면 상식적으로 두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먼저 한국 원잠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 문장의 속뜻은 중국 견제를 위한 잦은 전략자산 전개에 피로를 느낀 미국이 한국 원잠의 등장으로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다. 중국 견제에 한미동맹이 더 밀착하는 걸 뜻한다. 둘째로 이 원잠은 앞으로도 반드시 미국의 동맹국 손안에 있어야 한다. 한반도에 자유 대한민국이 계속 건재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군은 이르면 2030년대 중후반 원잠 건조라는 장밋빛 시간표를 내놨다. 이와 관련,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초빙전문위원은 “트럼프 정부는 떠나면 그만이고, 10여 년이면 미국에서 정권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라며 “우리는 갈 길이 멀다”고 알렸다. 유지훈 연구위원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적 선언’을 얻어낸 것인 만큼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동감한다. 한·미 관계가 흔들리면 원잠은 언제든 멈춰선다.

채병건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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