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9% 넘은 '태풍상사', 시청자 붙든 '진정성'이란 매력
[김건의 기자]
|
|
| ▲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컷. |
| ⓒ tvN |
1막이 국가적 위기로부터 개인이 생존하기 위한 각개전투였다면, 이제는 동료들과의 연대를 손에 쥔 태풍상사의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초반부의 기상천외한 해결책과 장르적 쾌감은 여전하지만, 이제 드라마는 온몸으로 부딪히는 과정의 진정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래를 아는 시청자를 공모자로 만들던 전략은 유지하면서도, 실패와 좌절에 직면하는 초보 상사맨들의 분투가 더 큰 무게를 차지한다.
태풍상사의 '진짜 싸움', 쾌감과 진정성 모두 챙기기
IMF로 뿔뿔이 흩어졌던 태풍상사의 직원들이 하나둘씩 복귀한다. 영업과장 고마진(이창훈)을 필두로 물류부 대리 배송중(이상진)도 은근슬쩍 사무실에 출근하며 회사에 곁다리를 걸친다. 예전 동료들의 복귀는 회사의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비즈니스차 태국으로 가서 공무원에게 소정의 뇌물 50달러를 건네다가 유치장에 갇힌 고마진은 강태풍(이준호)과 오미선(김민하)에게 쪽지를 건네주며 이번 무역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부탁한다. 게다가 뇌물 문제를 해결하고 유치장에서 나오자 그는 줄곧 여성 상사맨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보였던 과오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오미선의 사수라고 표현한다. <태풍상사>는 사건사고를 통해 인물 간 유대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엮으며 단순 직장상사-부사수 관계에서 벗어나 진짜 팀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
|
| ▲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컷. |
| ⓒ tvN |
1990년대 후반 해외 진출을 시도했던 많은 중소기업들이 문화적 장벽과 글로벌 시스템의 복잡성 앞에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 위기는 그러한 과오의 압축판이다. 그리고 '정직한 비즈니스'에 대한 명확한 교훈 또한 제시한다. 영업 관행이라고 여겼던 행동은 결국 정도(正道)가 아니다. 대사관조차도 도움을 크게 주지 못한 상태에서 강태풍과 오미선은 결국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고마진을 유치장에서 꺼낼 수 있었다. 점심 한 끼 값이 1500만 원의 뇌물이 되는 순간, 초보 상사맨들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기본 원칙을 배운다.
<태풍상사>는 이러한 교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강점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태국 기업 니하캄 그룹과의 미팅 에피소드는 미래를 아는 시청자의 쾌감을 다시 한 번 발생시킨다. 니하캄 그룹이 제시하는 사업 아이템은 인터넷 관련 사업이다. 1998년 시점에서는 생소하고 위험해 보이는 제안을 2025년을 살고 있는 시청자들은 엄청난 미래사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50달러 뇌물 사건으로 정직한 비즈니스의 교훈을 주면서도 인터넷 사업을 언급하면서 "만약 그때 우리가 이걸 알았다면"이라는 가정법적 유희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시청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내기를 원할 것이다.
|
|
| ▲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컷. |
| ⓒ tvN |
여전히 드라마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오미선이다. 회사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 또한 오미선이었다. 그는 로맨스 서사에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 서사에 붙들리지는 않는다.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인물이다. 이는 1990년대 매체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흔히 부여되던 '사랑 vs. 일'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영민한 선택이다. 사랑과 일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은 회사를 살리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인 선택이면서 로맨스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갖고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오미선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매 에피소드마다 실질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자였다. 강태풍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실행은 오미선이 한다. 이러한 관계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이제 두 사람은 연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최고의 사업 파트너다. 강태풍이 묻는다. "사장의 기본은 뭘까요?" 오미선은 답한다. "회사"라고. 이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한다. 지금 먼저 지켜야 할 것은 회사다. 그리고 서로다.
시청자를 '동료의 자리'에 앉히는 영민함
태국에 판매할 헬멧이 폐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태풍상사 직원들은 시간과의 싸움을 벌인다. 고속도로가 공사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고마진은 오토바이를 빌려 오미선을 태우고 달린다. 하지만 오토바이가 멈춰버리고, 오미선은 직접 두 발로 달려가 온몸으로 헬멧을 실은 차를 막아선다. 뒤따라온 강태풍과 고마진도 도착해 간신히 서류를 전달하지만, 헬멧의 대부분은 폐기 과정에서 파손됐다.
지금까지 드라마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쾌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태국에서의 위기 해결은 다르다. 대사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직접 발로 뛰며 문제를 해결했다. 뇌물의 액수가 과장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현장 사진을 촬영했던 필름을 급하게 현상하고, 온몸으로 달려가 물품을 지킨다. 여기엔 기존에 제시했던 영리한 해법이 없다. 대신 온몸으로 부딪히는 초보 상사맨들의 분투가 자리한다.
드라마는 이제 시청자를 '미래를 아는 공모자'에서 '그들의 고생을 지켜보는 동료'로 초대한다. 우리는 더 이상 정답을 알고 있는 관찰자가 아니다. 태풍상사 팀이 헬멧을 지켜낼 수 있을지, 고마진을 구출할 수 있을지 함께 조마조마해하는 동료가 된다. 결국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들이 그들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제 해결해야 할 과업들은?
드라마는 후반부로 가며 복잡한 서사로 돌입할 준비를 마쳤다. 팀워크는 완성되었고 로맨스는 진전됐다. 글로벌 진출의 첫 관문도 통과했다. 드라마는 레트로와 장르적 재미의 균형을 맞추며 약속한 즐거움을 충실히 지키고자 노력중이다. 드라마가 계속해서 IMF를 장르적 쾌감의 배경으로만 다루지 않고, 주요 인물들의 가족들이 IMF의 위기를 실질적으로 겪는 에피소드를 조금씩 추가하며 당시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데에도 성공했다.
남은 물음표는 '태풍상사가 살아남는 것만으로 충분할까?'다. 아니면 그 이면의 아픔, 시대의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까지 직면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 선택이 <태풍상사>가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 시대극으로 기억될 수 있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퀴어영화제 지속가능할까... "한국이 연맹 주축 맡아주길"
- 부족할 것 없던 여성 CEO가 젊은 인턴에 빠진 후 깨달은 것
- 벌이 사라지는 이유가 외계인의 지구 침공 때문?
- 역대 가장 약하고 작은 프레데터, 영화의 중심에 세운 이유는?
- 드디어 막 올린 '놀면 뭐하니' 인사모... 전화위복 계기 마련했다
- "모두가 속았다"... 평창올림픽 이후 7년, 파괴된 가리왕산
- IMF 시절 '통곡의 방'에서 울던 우리, 다시 떠올릴 줄이야
- 북한 축구소녀들, U-17 월드컵 통산 최다 '네 번째 우승'
- 언니 파혼 뒤 산에 갔다가... 스님이 된 예비 형부를 만났다
- SBS '비서진' 시청률은 낮은데... 넷플릭스에선 이유 있는 '인기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