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어보고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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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예전 시어머님 살아 계실 적이면 비 오면 비 온다고, 눈 오면 눈 온다고, 바람 불면 바람 분다고 말리는 통에 친정 나들이를 자주 하지 못했다. 회사가 바쁠 적에는 엄마 디스크 수술하는 날에도 이웃 어르신께 부탁 드리고 수술실 앞을 지키지 못했다. 고작 150km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나는 지난 삼십여 년을 자잘한 벽들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였다.
코로나 때문에 자주 뵙지 못했던 엄마를 이번엔 내 병치레 때문에 장장 몇 년을 보지 못하였다. 지난 2021년 6월 암 수술을 후 머리카락을 전부 없앤 채로 엄마 앞에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았다. 통증이 좀 가시고 움직일 수 있으면 가야지,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이 좀 오르면 가야지, 퉁퉁 부은 붓기가 조금이라도 빠지면 가야지, 조금 더 조금 더 사람다워지면 가야지, 멀쩡해지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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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집 앞 강 엄마와 산책하고 혼자 걷고 바람쐬기 좋은 엄마 집앞 강가이다. |
| ⓒ 김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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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를 위한 김밥 재료들 색다른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김밥재료 |
| ⓒ 김민정 |
엄마 전화가 오면 바쁘다는 핑계로 서둘러 끊어버리고 명절과 엄마 생신과 어버이날 엄마와 마주 앉았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 재촉했었던 나. 단 하룻밤도 엄마 곁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지 않았던 나. 이제 와서 내가 엄마를 찾는 건 지독한 뻔뻔함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삶의 길 위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번번이 나를 배제하였다. 나는 늘 똑같은 자리에서 엄마를 기다렸는데 엄마는 늘 내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였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서러움으로 변해가면서 나 또한 엄마를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 시간이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올해 2월 세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병마와 싸우면서 볼품없는 몸체로 흐느적 흐느적 움직이면서도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전화가 기다려지고, 어렸을 적 엄마가 만들어준 볶음밥이 떠올랐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한참 고생을 하던 즈음에는 엄마가 해준 밥과 반찬이 생각나 마음이 아주 어지러웠다.
엄마 밥 한 숟가락만 먹으면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내가 급급하니 과거의 서운하고 서러운 시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지난 삼십년 동안 내가 먼저 엄마를 불러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게 뭐 대수인가 싶은 일들이 더 많아졌다.
엄마를 볼 수만 있으면 되었다 싶다. 첫 발병 이후 세 번의 암 수술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죽음을 앞두면 겸손해진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걸 알게 해주고 깨닫게 해 준 것이 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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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밥, 유부초밥, 찜닭, 쇠고기 불고기 1팩 김밥과 유부초밥을 싸고 찜닭을 만들고 쇠고기 불고기를 샀다. |
| ⓒ 김민정 |
너무 오래 먼 길을 돌아 이제야 겨우 지금에 다다랐다. 내게 남겨진 시간에 비해 잃어버린 시간들이 너무 오래다. 후회하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 부디 엄마를 오래 오래 뵈었으면 좋겠다.
"아가! 엄마한테서 좀 지내다 가면 안 되겠나? 여기 공기 좋은 데서 산책하고 엄마가 된장찌개 맛있게 끓여줄게."
맛있다며 김밥을 잔뜩 드신 엄마가 나의 몰골을 보다 말씀하신다. 엄마 옆에서 엄마 밥 먹으며 좀 쉬어가라고.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함께 걷고, 목욕도 하고, 차도 마시고 그렇게 있다 가라며 늙은 엄마가 나의 손을 잡는다.
엄마의 손이 따뜻하다. 주저앉아 엉엉 목 놓아 울고 싶을 만큼. 병원에 가야 하는 나는 엄마랑 며칠 더 있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다짐했다. 늙은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어보고 죽어야겠다고. 엄마의 따뜻한 손을 더 오래 더 많이 잡아보고 죽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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