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경진대회에서 배운 건 기술이 아니었다
필자는 서울로봇고등학교 교장으로, SSRC 프로젝트에 두 팀의 학생을 출전시켰다. 지난 11월 7일 열린 포럼 현장을 직접 취재하고, 이 프로젝트의 의미와 과제를 짚어본다. <기자말>
[오성훈 기자]
지난 1일 토요일, 서울로봇고등학교 메이커랩실. 서울 직업계고 학생 대상 로봇 경진대회(Seoul Student Robotics Competition, SSRC)에 출전 중인 우리 학교 학생들과 일신여자상업고 학생들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한 학생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 로봇 그립퍼가 자꾸 물건을 떨어뜨려요. 3주째 같은 문제예요."
서울로봇고 2학년 안준형 학생의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일신여상 1학년 정다혜 학생이 한마디 던졌다.
"디자인이 좀 그래요. 좀 더 사용자 친화적으로 바꾸고, 모양도 바꾸면 해결될 것 같아요."
공업계와 상업계 학생이 한 팀이 되어 로봇을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이었다. 처음엔 서운했지만, 팀은 결국 설계를 바꿨고 문제를 해결했다.
학생들은 지난 7일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에서 열린 '2025 서울 로봇 융합 인재 육성 포럼'에서 당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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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서울 로봇 융합 인재 육성 포럼 '2025 서울 로봇 융합 인재 육성 포럼'에서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
| ⓒ 오성훈 |
미국의 세계적 청소년 로봇 대회인 FRC(FIRST Robotics Competition)를 모델로 삼아, 15개 학교 170명의 학생이 8개 팀으로 나뉘어 8월 16일부터 12주간 로봇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펀딩을 위한 마케팅까지 수행한다.
특이한 점은 공업계 학생만이 아니라 상업계 학생까지 참여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하나의 팀이 됐다. 포럼을 기획한 김주현 장학사는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협업능력, 의사소통능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은 실제 경험을 통해서만 길러진다"고 강조했다.
일신여상 이정아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로봇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팀원들과 함께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과정이 훨씬 흥미로웠어요. 공업계 친구들은 기술을 알고, 우리는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잖아요.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더 좋은 로봇이 나왔어요."
유한공고 진정국 교사는 "학생이 자료를 찾아보고 실패를 반복하며 달라지는 모습을 봤다"며 "기능 숙달에서 융합 문제 해결로 교육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나온 우려들
200여 명이 참여한 포럼 현장의 분위기는 대체로 밝았다. 남서울대 김성애 교수는 "프로젝트형 학습은 학생이 핵심 역량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고, 용산철도고 강승훈 교사는 "SSRC는 직업계고 교육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의 절박한 고민도 솔직하게 터져 나왔다. SSRC에 참여했던 서울로봇고 신상우(1학년) 학생은 프로젝트의 솔직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여러 학교 선배 및 친구들과 함께한 건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로봇을 만들고, 3개월 내내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과정은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어요. 특히 다른 생각들을 조율하며 소통하는 것이 좋은 경험인 건 분명하지만, 여기서 상을 탄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의 말에는 배움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현실적 고민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이 담겨 있었다.
산업계 관계자의 현실적 우려도 이어졌다. 최종복 직스테크놀로지 의장은 급변하는 로봇·AI 기술을 언급하며, 학교 교육만으로는 현장 투입이 어렵다며 실질적인 산학 협력 시스템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어 고재홍 인바디(Inbody) 상무는 고졸자 채용의 기업 측 리스크를 직설적으로 말했다. "고졸 채용해서 1~2년 가르치면, 입대합니다. 회사에서 투자만 한 꼴이죠.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주셔야 합니다."
글로벌 컨설팅사 롤랜드 버거(Roland Berger) 유영현 팀장은 더 날카로운 우려를 내놨다.
"학생이 대회 수상에만 몰두하면 또다시 경쟁 교육이 되는 거 아닌가요? 교육의 목표가 '성장 경험'이 아니라 '수상 실적'이 되면 본질을 잃는 겁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
이처럼 현장의 어려움이 제기되지만, 그럼에도 SSRC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AI 시대의 직무 변화가 그 배경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계고 졸업생이 주로 진출하는 제조업은 AI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단순 반복 조립은 AI 대체 위험이 78%에 달하지만, 로봇 관리나 유지보수는 35% 수준이다. 결국 단순 기능 숙달이 아닌 '로봇과 협력하는 능력'이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다.
즉, 단순 기능 숙달이 아니라 로봇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AI가 단순 직무를 대체하는 반면, 문제 해결형 직무는 협력의 영역으로 남기 때문이다.
현재 SSRC에 참여한 학교는 15개교다. 서울에만 68개의 직업계고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소수의 실험이다. 내년부터는 일반계고의 참여도 예정되어 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수업을 해보고 싶다고 지원하는 학생과 교사가 많았다는 점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학생과 교사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이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포럼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모두가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협력은 구호가 아니라 신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제도적,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지속과 확산을 위한 세 가지 제안
첫째, 교사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직업계고 교원들이 단순 기능 숙달 교육에서 벗어나 협업과 문제 해결 중심의 융합형 프로젝트 수업을 도입할 수 있도록, 교원 연수 프로그램과 교과 운영 컨설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특히 교사의 수업 시간을 확보하고, 연수 후 실제 수업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행정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산학 협력의 실질화다. 산업체 경력자를 교원으로 채용하는 특례를 확대하고, 교사들의 장기 현장 연수(3개월~6개월)를 지원해 현장과 교육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산업 현장과의 경계를 허물어야만 교육이 '실제'가 된다.
셋째, 일학습 병행 체계 구축이다. 고졸자가 일과 학습을 병행해 학위를 취득하는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를 로봇 융합 분야에 집중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 지역에는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를 두고 있는 4년제 대학이 없다. 이 분야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학생들의 미래를 여는 길이다.
다만 이러한 제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예산 확보와 실행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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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서울 로봇 융합 인재 육성 포럼 '2025 서울 로봇 융합 인재 육성 포럼'에서 "기술 습득을 넘어 사람과 로봇이 협력하는 융합형 직업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
| ⓒ 오성훈 |
포럼이 끝나고 복도에서 한 학생이 다가왔다. 바로 그립퍼 문제로 고민하던 그 학생이었다.
"교장 선생님, 저 로봇 공부 계속하고 싶어요. 그런데 대학 가야 할까요, 취업해야 할까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
"둘 다 가능한 길을 만들고 있어. 일학습병행이나 조기취업형 계약학과 같은 선취업 후학습 제도를 확대하고 있어. 다만 그 길이 아직 충분히 많지는 않아. 오늘 이 포럼을 통해 그 길을 확대하기 위해 교육청, 대학, 기업이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했어."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 망설임 속에 우리 교육이 풀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협력의 길은 길고 느리지만, 그 길 위에서 학생과 교사, 기업이 함께 배우고 자랄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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