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 놀이’에서 아기가 배우는 것 [의사소통의 심리학]

두 집단의 가장 큰 차이는 ‘순서 바꾸기’에 있습니다. 도올 김용옥만 ‘잉?’ ‘응?’ 하며 순서 바꾸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상대방과 소통의 순서를 주고받습니다. 쉬지 않고 표정과 몸짓, 그리고 억양으로 상대방에게 순서 바꾸기 신호를 보냅니다. 아줌마들은 이 신호를 기가 막히게 낚아챕니다. 아기를 키워본 엄마들은 ‘순서 바꾸기’의 도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송국 토크쇼의 방청객은 죄다 ‘아줌마’들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가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 ‘순서 바꾸기’입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희한하게도, 다들 똑같이 물어봅니다. “어유, 누가 그랬어? 누가 그랬어?” 도대체 무엇을, 누가, ‘그랬냐고’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끊임없이 물어봅니다. 심지어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Who did that?” “Did you do that?(영어)” “Qui a fait ca ?(프랑스어)” “Wer hat das gemacht?(독일어)” “だれがやったの(일본어)” 등.
‘누가?’라고 물어보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아기를 엄마와 상호작용하는 ‘행위의 주체’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스턴(Daniel Stern)과 콜윈 트레바든(Colwyn Trevarthen)에 따르면, 갓 태어난 아기는 억양과 리듬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누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억양만으로도 ‘지금 이 리듬에 네가 응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신호로 작동합니다. 아기가 미소를 짓거나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 반응은 ‘엄마의 신호에 대한 응답’이 되며, ‘나’라는 존재가 최초로 상호작용의 주체로 등장하는 겁니다.
“누가 그랬어?”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기의 감정 표현을 이끌어내는 질문입니다. 질문에 아기의 반응이 없으면, 엄마의 행동은 아주 다양해집니다. 아기를 들었다 내리기도 하고, 발바닥을 간질이기도 합니다. 이 요란스러운 질문은 아기의 사소한 반응이 나타날 때까지 지속됩니다. 아직 언어 습득을 하지 못한 아기의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기와의 ‘정서 조율’을 통해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지요. 아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하는 순간, 엄마의 질문은 긍정적 웃음을 동반하며 더욱 다양해집니다. ‘순서 바꾸기’라는 의사소통의 근본적인 원칙은 이렇게 습득됩니다.
‘정서 조율’과 ‘순서 바꾸기’는 초기 상호주관성의 내용과 형식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동일한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지요. ‘정서 조율’이 상호작용의 내용, 즉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공명하는 내적 흐름을 설명한다면, ‘순서 바꾸기’는 그 감정이 ‘형식(form)’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리듬을 보여줍니다. 한쪽은 ‘무엇이 공유되는가’를, 다른 한쪽은 ‘어떻게 공유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엄마의 “누가 그랬어?”라는 반복된 질문은 이 두 층위를 동시에 작동시킵니다. 언어 습득 이전의 아기-엄마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감정의 파장을 교차편집하며 소통의 기본 문법을 세워나가는 창조적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러나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아기의 의지와 엄마의 의도가 충돌하는 순간 ‘누가 그랬어?’라는 이 사랑스러운 놀이는 책임을 추궁하는 아주 ‘살벌한’ 단어가 됩니다. 두 아들이 청년이 된 우리 집에서는 아직도 아내의 ‘누가 그랬어?’는 공포입니다. 어디선가 ‘누가 그랬어?’ 하는 아내의 고함이 들리면 우리 집 세 남자는 공포에 질려 후다닥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아내를 화나게 한 사건의 ‘용의자’만 현장에 부들부들 떨며 남고, 나머지 둘은 안도하며 그 공간을 후다닥 탈출합니다. ‘누가 그랬어?’의 변증법입니다.

전 세계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행동이 또 하나 있습니다. ‘까꿍’입니다. 엄마가 아기 앞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없다!’고 합니다. 아기는 느닷없이 사라진 엄마를 찾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아기가 불안해하는 순간, 엄마는 두 손을 치우며 ‘까꿍’합니다.
영어권에서 이 놀이는 ‘피카부(Peek-a-boo)’라 불립니다. ‘피카부’는 ‘엿보다(peek)’와 ‘놀래다(boo)’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놀이를 ‘이나이이나이-바아(いないいない-ばあ)’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없다, 없다-짠!’입니다. 독일에서는 이 놀이를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흉내내 ‘쿠쿠크(Kuckuck)’라고 부릅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놀이는 아기의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까꿍 놀이는 아기에게 ‘보이지 않아도 엄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감각을 심어주며, 엄마와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음을 몸으로 배우게 합니다. 까꿍 놀이는 애착과 신뢰의 정서적 기반을 형성하는 훈련입니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아기는 세상을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며, 이러한 믿음이 사회적 관계 형성의 토대가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놀이를 주로 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대상연속성(object permanence)’ 개념과 연관시켜 설명했습니다. ‘대상연속성’이란 어떤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보이는 것 = 존재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세계만 있습니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없어졌다’고 느끼고, 다시 보이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까꿍 놀이’를 즐기는 겁니다.
대상연속성은 피아제가 그의 세 자녀(자끄, 뤼크, 로랑)와 놀아주면서 발견한 것을 개념화한 것입니다. 아기와 장난감을 주고받다가 장난감을 이불 밑이나 손 뒤로 숨기면, 아기는 장난감을 더 이상 찾지 않았습니다. 마치 장난감이 ‘사라진 듯’ 행동했지요. ‘보이면 존재, 가리면 소멸’이라는 초기의 인지 스키마(schema)는 생후 약 8개월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대상을 숨긴 수건이나 덮개를 뒤집어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려져 안 보이지만 물건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인식, 즉 ‘대상연속성’의 출현입니다.
‘까꿍 놀이’를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이 아닌 상호작용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인물은, 미국의 문화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입니다. 브루너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심리학계에서는 최초로 비고츠키 이론을 흡수하면서 사회적 구성주의, 특히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연구를 많이 발표했습니다. ‘까꿍 놀이(피카부)’와 관련해서도 기존 피아제식 설명(대상연속성 획득의 지표)에서 벗어나, 엄마-아기 간 상호작용의 맥락, 즉 ‘순서 바꾸기’의 사회문화적 기능 측면에서 새롭게 접근했습니다. 한마디로 까꿍 놀이를 개인의 인지발달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주의로 설명한 것이지요.
1976년 논문에서 브루너와 그의 동료 셔우드는 ‘까꿍 놀이’를 인간이 사회적 규칙을 배우는 최초의 교과서로 설명합니다. 브루너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언어 이전의 세계, 즉 말이 아니라 ‘리듬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 세계에서 아기는 ‘숨기기-기다리기-드러내기-웃기’라는 구조를 반복하며,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자신의 차례를 예감합니다. ‘까꿍 놀이’는 바로 그런 리듬의 문법을 배우는 장면입니다.
피아제가 말한 대상연속성이 ‘세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존재의 법칙을 배우는 과정이라면, 브루너가 본 ‘까꿍 놀이’는 ‘모든 관계에는 순서가 있다’는 사회적 법칙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얼굴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에서, ‘이제 내 차례야’라는 감각을 익힙니다. 아울러 내 차례가 되면 무조건 반응해야 한다는 책임도 익힙니다. 브루너는 이 단순한 놀이 속에서 언어의 원형, 즉 ‘대화의 차례(turn)’를 읽었습니다. 아기는 이 리듬 속에서 상대의 신호를 예측하고, 규칙을 내면화합니다.

나는 ‘과묵한 인간’이 참 싫습니다. 물론 말 많은 사람도 피곤하지만, 과묵한 사람보다는 견딜 만합니다. 과묵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뭔가 잔뜩 엉켜 있는 기분입니다. 상대방이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만 이야기하게 됩니다. 다양한 주제를 진지하게 혹은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지만, 돌아오는 건 단답형의 대답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뿐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대화는 두 사람 모두의 책임입니다. 과묵한 사람은 자신의 순서가 와도 전혀 책임지지 않습니다. 아주 이기적입니다.
‘순서 바꾸기’는 의사소통의 가장 근본 형식입니다. 언어 습득 이전에 순서 바꾸기를 익혀야 합니다. 내 순서를 책임지지 않으면 그 상호작용은 시들해집니다. 재미없어진다는 겁니다. 순서 바꾸기는 개인 간 의사소통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성취해낸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는 제도 또한 ‘순서 바꾸기’와 똑같은 원리에 기초합니다. 민주주의를 주로 ‘공간적 대표성(spatial representation)’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행위는 ‘누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는 공간적 대표성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고라(Agora)와 같은 ‘광장민주주의’는 사회의 각 집단을 대표하는 이들이 ‘같은 장소에 존재해 발언할 수 있는 권리’에 기초합니다. ‘평등(equality)’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극히 공간적입니다. 평등의 어원인 라틴어 ‘aequalis’는 ‘같은 높이(equal height)’를 뜻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이렇게 공간적으로만 이해하면 아주 교묘한 독재를 허용하는 모순을 범합니다.
공간적 대표성만으로는 평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공간적 대표성과 더불어 ‘시간적 대표성(temporal representation)’이 갖춰져야 합니다. 정치철학을 전공하는 데니스 톰슨(Dennis F. Thompson)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를 단순한 ‘자리의 배분’이 아니라 ‘시간의 배분’으로 재해석합니다. 민주주의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나누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톰슨에 따르면 시간적 대표성은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첫째, 아직 오지 않은 세대를 위해 시간을 배분해야 하는 ‘세대 간 대표성’, 둘째, 선거 이후에도 끊임없이 시민과 소통해야 하는 ‘지속적 대표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언의 순서를 서로 바꿔가며 진지하게 상대방의 발언에 귀 기울이는 ‘시간적 순서 바꾸기’가 시간적 민주주의의 세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또한 ‘의사소통 행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시간적 교대’를 꼽습니다. ‘이상적 소통’은 모두가 차례를 얻을 수 있고, 이에 대한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세상을 뜻합니다. ‘담론윤리’는 서로의 발언이 겹치지 않도록 기다리고, 응답할 줄 아는 ‘시간의 윤리’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란 공간의 평등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에게 ‘차례(turn)’를 내주는 ‘순서 바꾸기’의 기술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상호작용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이 근본적 규칙이 무너져내리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꼼짝없이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4호 (2025.11.12~11.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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