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감수하며 만든다”… 희귀질환 환아용 ‘특수 분유’ 제조사 이야기
아기의 생명을 지탱하는 한 컵의 분유는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절실한 '희망'입니다. 일반 분유와 달리 특별한 제조 과정을 거치는 특수 분유는 사실상 환아의 유일한 버팀목이 됩니다. [한 컵의 희망: 특수 분유] 시리즈를 통해 특수 분유를 만드는 기업과, 그 분유로 생명을 이어가는 환자 가족의 이야기를 두 편의 시리즈로 전합니다. 1편에서는 유업 회사 관계자의 이야기를, 2편에서는 특수 분유를 섭취하는 환자 보호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선천성 대사이상·뇌전증 환아 등 섭취
특수 분유의 정식 명칭은 '특수 조제 분유'로, 특정 질환이나 대사 이상, 알레르기 등의 문제로 일반 분유를 섭취할 수 없는 영유아를 위해 제조된 분유를 말한다. 가령 페닐케톤뇨증·프로피온산혈증 등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환아들은 특정 아미노산을 소화하지 못하며, 케톤생성 식이요법을 시도해야 하는 뇌전증 환아들은 탄수화물을 최대한 줄이고 지방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이들을 위해 특정 영양소의 비중을 조절해 개발한 분유가 바로 특수 분유다.
국내에서는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일부 유업 회사에서 제한적으로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1999년 매일유업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CSR)의 일환으로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들을 위한 특수 분유를 만들기 시작했고, 3년 후 남양유업이 뇌전증 환아들을 위한 특수 분유 '케토니아'의 제조에 착수했다. 현재 매일유업은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용 분유 8종 12개 제품을 생산 중이고, 남양유업은 케토니아와 XO알레기(유단백 알레르기 환아용)·XO이른둥이(조산아용) 등 제품을 만들고 있다.
◇생산 방식 서로 달라… 일반 분유 생산 멈추기도
생산 과정은 기업마다 다르다. 매일유업은 기존에 가동하던 일반 분유 생산 라인을 중단한 후 특수 분유를 만든다. 일반 분유와 섞이지 않고 제조할 수 있는 깨끗한 환경이 필요해 16~24시간가량 CIP 세척(설비를 분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를 세척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라인 충전과 클리닝 작업을 진행한 후 특수 분유를 만든다. 12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제품별로 세척·충전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약 일주일~열흘의 시간이 소요된다. 남양유업의 경우 별도의 특수 분유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시설을 주기적으로 가동한다.
일반 분유와 달리 포장 단계에서 수작업이 필요해 인력도 매우 중요하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특수 분유도 일반 분유처럼 소비 기한이 있어, 1년에 2~3번 기존 생산 라인을 멈추고 종류별로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며 "석판 인쇄 포장 패키지가 있는 일반 분유와 달리, 특수 분유는 제품에 라벨을 붙이는 단계에서 수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수 분유는 환자 수가 적어 생산량이 적고 제조 공정이 까다로워 적자 사업으로 분류된다. 선천성 대사이상 환자 수는 국내 신생아 5만명 당 한 명꼴로 발생할 만큼 희귀하며, 매일유업 앱솔루트를 주기적으로 섭취하는 환아의 수도 약 400명 수준이다.
유업 회사들은 이익을 포기하거나, 적자를 감수하며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일반 분유를 만들지 못함으로 인해 정확한 수치로 표현하기 어려운 규모의 손실이 생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지금은 생산 경험이 충분히 쌓였기 때문에 수치상 적자는 아니다"면서도 "특수 분유를 만드는 기간에는 다른 제품을 생산할 수 없고,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실제로는 이익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아들이 특수 분유 외에는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은 만큼, 특수 분유는 환아 보호자들 사이에서 수요가 크다. 국내 유업 회사들이 특수 분유 생산을 멈출 경우, 환자 보호자들은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해외 분유를 직접 수입해 사용해야 한다. 이마저도 지난 2022년 5월 이후 어려워진 상태다. 미국 애보트가 생산한 분유에 박테리아 감염 의혹이 제기되면서 생산이 끊겼던 것이 계기다.
이에 유업 회사들은 특수 분유 생산을 중단할 일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내부 연구소뿐만 아니라 세브란스 어린이병원과도 협력해 공동 연구를 추진해 오고 있다"며 "수익성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환아를 위해서 생산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의견은 분유 외에도 국내 환아가 더 맛있게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환아들이 특수 분유 외에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식품은 CJ제일제당의 '저단백 햇반'이 전부다. 이 때문에 간혹 환자 보호자 중에서는 일본에 방문해 희귀질환 환아용 빵·국수 등을 구매해 들여오는 사례도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해외에는 빵·과자·소스 등 희귀질환 환아들이 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식료품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저단백 밥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무하다"며 "국내 기업들이 더 다양한 제품을 제조·공급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이 도입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업 회사의 특수 분유 제조를 ESG 활동으로 인정해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특수의료용도식품 생산은 ESG 경영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ESG 평가 항목에 반영되는 사항은 아니다"며 "평가를 위해 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평가 항목 추가 또는 가산점이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리 보기>
국내에서 희귀질환 환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식단의 선택지는 아직 부족하지만, 특수 분유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 분유를 먹는 환아들은 여전히 겪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 컵의 희망: 특수 분유] ②편에서는 실제로 특수 분유를 지원받거나 직접 구매해 먹는 환자 보호자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특수 분유가 환자 가족의 삶에 미친 영향과, 국가에 바라는 점에 대해서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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