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영웅 아버지의 가정폭력 그린 영화, 감독이 애드리브 강조한 이유
[이선필 기자]
화재현장에서 시민들을 구하고 산화하며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던 아버지가 가정폭력 가해자라면? 영화 <맨홀>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동력 삼아 한 청소년의 선택과 타락, 그리고 회복 가능성을 다룬다. 고 박지리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한국영화계 촉망받는 신예 감독이 재해석한 결과물은 절망만이 아닌 희망을 엿보게 한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배급사 사무실에서 7일 오전에 만난 한지수 감독은 <맨홀>을 두고 복합적인 아이러니가 작동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감정을 품어 온 선오(김준호)는 엄마와 누나의 걱정에도 탈선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 무리에서 희주(민서)를 알게 되고 곧 사귀게 되지만, 이주민 노동자 폭행에 가담하며 순식간에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
|
| ▲ 영화 <맨홀>을 연출한 한지수 감독. |
| ⓒ 마노엔터테인먼트 |
"친구들 무리와 어울릴 때 특히 애드리브를 많이 허용했다. 애초에 정답을 정해놓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하면 거기에 배우들이 의견을 내는 식이다. 단편 작업 때도 느꼈는데 제가 말한다고 해도 그대로 전해지진 않더라. 연기는 결국 배우가 표현하는 거니까. 과하면 힘을 좀 빼게 하거나 부족하면 더 힘을 주라는 조율 정도를 했다.
캐스팅 단계서부터 일단 신선한 얼굴과 하고 싶었다. 그 당시 20대 후반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미지로도 김준호 배우가 마음에 들었다. 호감형인데 어딘가 날카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은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를 궁금해하는데 준호 배우는 캐릭터에 대해서만 계속 묻더라. 누나 역의 권소현 배우야 워낙 무대 연기도 좋고, 제가 믿는 구석이 있었고, 희주 역의 민서 배우가 처음 상상과 다르게 캐스팅한 경우였다. 본래 작고 동정심이 드는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막상 민서 배우를 만나니 실제 희주일 법한 면이 있더라."
제목이자 영화에서 선오의 도피처가 되는 맨홀 공간도 중요했다. 두 사람 남짓 누울 수 있는 그 맨홀 아래 공간은 과거 아빠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후에 선오와 친구들이 살해한 이주노동자의 시체를 은닉하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즉, 맨홀은 한 인간이 품고 있는 어두운 내면을 상징하면서 희망과 죄책감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장소였던 것.
"선오의 누나는 같은 트라우마가 있지만, 연극을 통해 상처를 덮어간 경우였고, 선오는 극복하지 못한 경우였다. 사실 누구나 마음속에 어두운 구멍이 있잖나. 그걸 덮어두는 여러 수단이 있는 거지. 누군가에겐 그게 연기, 누군가에겐 음악일 수 있다. 사실 선호도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셈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여건상 세트를 짓기보단 로케이션으로 찾았어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막상 가보면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태더라. 그래서 세트를 짓게 됐고, 최대한 아늑한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
|
| ▲ 영화 <맨홀>의 한 장면. |
| ⓒ (주)영화사레드피터 |
"선오 친구 무리들이 너무 일진처럼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게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유치한 장난도 서로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통제하지 못해 엇나가기도 하는데 일진이라 애초에 다른 학생들에게 시비 걸고 사고 치는 게 아닌, 어떤 상황이나 요인에 의해 그렇게 되는 거라고 묘사했다. 시나리오를 보신 분들이 반대 의견도 냈었는데 일진으로 묘사해버리면 너무 장르 영화처럼 될 것 같았다.
|
|
| ▲ 영화 <맨홀>의 한 장면. |
| ⓒ (주)영화사레드피터 |
하지만 한지수 감독은 결말 부분에 일말의 희망을 남겼다. "하고 싶은 말이 그럼 모든 걸 망쳐버린 선오의 선택이었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며 한지수 감독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엔 결국 연대가 필요한데, 선호에게도 그 믿음을 주고 싶었다"고 품고 있던 속생각을 밝혔다.
단편 <그건 알아주셔야 됩니다>(2015), <캠핑>(2019)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 최우수상을 받았던 한지수 감독은 오는 12월 19일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의 공동 집필가이기도 하다. 떠오르는 신예 창작자였지만, 유독 지난 5년 영화 산업 침체기에 그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캠핑>의 장편영화 버전을 준비 중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뉴욕시민 사로잡은 영상… 한국 해법 여기에 담겼다
- 울먹인 남욱의 폭로 "검사가 배 가르겠다고 했다"
- 고3 딸 둔 아빠인데요, 미안하고 불편해 죽겠습니다
- '쓰러져도 끝까지...' 주한미군 성범죄에 맞선 117명 피해자들
- 새로 생긴 남산 숲길, 여기서 꼭 한 번 뒤돌아보세요
- 이 대통령, 긍정 63%..."APEC 국익 도움 됐다" 74%
- 끝나지 않은 '조용필 앓이'... 매일 유튜브 보다 저지른 일
- [단독] 경북의회 교육위원장 "일도 안 하면서 무슨 갑질신고냐?"
- 내란특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구속영장 청구
- "'휠체어석 맨 뒷열로 옮기라'는 진해아트홀 관장, 사퇴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