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국내 첫 개봉... 빛나는 타이페이·공허한 청춘
[김형욱 기자]
에드워드 양은 언제나 도시를 해부하는 감독이었다. <타이페이 스토리>에서 변화에 휩쓸린 인간의 정체성 위기를, <하나 그리고 둘>에선 가족과 세대의 단절을 그렸다. 그리고 1996년 작 <마작>은 생생하고 잔혹하게 '도시의 병리학'을 해부한 작품이다.
1990년대의 대만, 세계화와 버블경제의 파도가 몰려오며 수도 타이페이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빛의 반대편에는 공허와 불안, 도덕의 붕괴가 도사리고 있었다. <마작>은 바로 그 순간의 타이페이를 카메라에 포착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돈과 허세에 취해 있고, 집 안의 청춘들은 목적 없는 음모와 유혹의 게임을 벌인다. 겉으로는 번영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빈 껍데기'다. 에드워드 양은 이 도시를 그저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타이페이는 하나의 거대한 인물이자 청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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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마작>의 한 장면. |
| ⓒ 에이썸픽쳐스 |
홍어는 사기꾼 아버지의 아들이며, 복수와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는 "사람은 절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한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공허를 덮기 위한 주문에 가깝다. 룬룬은 영어를 통역하며 유일하게 '진심'을 품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 진심은 세상의 잔혹함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다.
프랑스에서 온 젊은 여성 마르트가 등장하면서 네 사람의 세계는 균열을 맞는다. 그녀는 외지인이지만 동시에 이 도시의 탐욕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녀를 향한 욕망과 동정, 착취와 연민이 얽히며 네 사람의 관계는 마치 마작의 패처럼 엇갈리고 뒤섞인다.
영화에서 마작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은유다. 네 명의 청춘은 마치 한 판의 마작을 두는 플레이어들처럼 서로를 읽고 속이고 내친다. 승자도 패자도 없고, 남는 것은 공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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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마작>의 한 장면. |
| ⓒ 에이썸픽쳐스 |
1990년대 대만은 첨단 산업과 수출 호황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부와 성공을 좇는 열기에 가려, 사람들은 서로를 '수단'으로만 보기 시작했다. 홍어와 친구들은 바로 그 시대가 길러낸 아이들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꿈꿔라'고 말했지만, 동시에 "너희는 무엇이든 팔아야 산다"라고 속삭였다.
하여 그들의 방황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한 세대 전체의 초상이다. 빛나는 도시의 네온 아래, 정처 없이 떠도는 별처럼 흩어진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그들이 겪는 파멸은 오히려 하나의 시작이다. 나락으로 떨어져야 비로소 두 발로 서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에드워드 양이 바라본 청춘의 숙명이다.
<마작>은 그런 점에서 절망의 영화가 아니다. 타락의 끝에서조차 인간의 가능성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양은 이들을 구원하지 않고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눈을 돌려 외면했던 진실, 허세와 공허로 가득한 도시의 얼굴,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사랑과 의미를 갈망하는 인간의 눈빛을.
빛의 도시, 그림자의 인간
30여 년 만에 국내 첫 개봉을 맞이한 <마작>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지금의 서울 역시 1990년대 타이페이처럼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만큼 빠르고 피곤하고 외롭다. 사람들은 여전히 관계 속에서 이용당하고, 진심보다 이미지를 소비한다.
에드워드 양은 오래전에 이미 이런 세상을 예견했다. 그의 카메라는 청춘의 파멸을 통해, 도시의 욕망을 넘어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마작>은 그래서 단순히 30여 년 전 과거의 타이페이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의 영화는 늘 차갑지만, 그 안에는 이상할 만큼 따뜻한 온기가 있다. 절망을 응시하면서도, 언젠가 그 절망을 딛고 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여전히 살아 있는 에드워드 양의 유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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