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의 시시각각] 만취한 대통령

12·3 비상계엄 사태 1년을 앞두고 놀라운 증언이 쏟아진다. 지난 7월 두 번째로 구속된 이후 특검 소환도, 재판 출석도 거부하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나와 말문을 열기 시작하면서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내란특검 조사에 출석한 데 이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재판에도 나왔다.
윤 전 대통령의 행동 변화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구치소 공무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남동 관저에서 경호처 직원들을 내세워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고,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은 민중기 특검팀이 구치소를 찾아가도 교도관에게 완강히 저항한 이력을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감 기간이 길어지면서 독거실에서 지내는 일상이 괴로워 잠시라도 구치소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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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앉자마자 폭탄주 막 돌려”
군 장성과 벌인 술판 법정서 공개
대통령 만취 때 북한 도발했다면
」

가장 그럴싸한 추정은 조은석 내란특검팀의 작전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특검팀은 법원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놓고서도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체포영장 집행을 사전에 예고한 다른 특검팀이 윤 전 대통령의 기발한 저항에 막힌 선례를 탐구한 듯하다. 이른 아침 수의 차림으로 기습적인 체포영장 집행에 맞닥뜨린 윤 전 대통령이 더 초라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특검팀 양해를 얻어 제 발로 걸어 나가야 하는 외통수에 걸렸다는 얘기다.
윤 전 대통령의 재등장 이후는 충격의 연속이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공개한 “한동훈을 잡아 와라.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는 발언은 섬뜩하다. 특검 측이 “당시 영부인이던 김건희가”라고 표현하자 윤 전 대통령은 “김건희가 뭡니까. 여사를 붙이든지”라고 항의했다. 며칠 뒤 김 여사는 샤넬 백 2개를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를 알았을까. 윤 전 대통령 발언 중 압권은 폭음 자백이다.
“보통 나하고 술을 여러 번 먹었잖아요. 많이 먹죠. 내가 한 번 (폭탄주를) 제조하고 돌아가면서 제조하죠.”
윤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곽 전 사령관에게 질문하면서 꺼낸 얘기다. 윤 전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술 마신 기억을 되살리면서 “(돌아가면서 폭탄주를 제조한 게) 두 번도 넘었어요. 술 많이 먹었네, 그렇죠?”라고 말했다. 곽 전 사령관은 “술은 항상 (폭탄주) 10잔에서 20잔 정도를 들었다”고 답했다.
윤 전 대통령은 술자리에서 ‘비상 대권’ 얘기가 나왔다는 증언을 반박하기 위해 과음을 강조한 듯하다. 군 통수권자와 국방부 장관이 최정예 부대 지휘관들과 수시로 통음했다는 증언이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시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그 시간 우리 안보는 누가 책임졌는가.
윤 전 대통령의 음주 행태는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도 지난 5월 헌법재판소에서 “(윤 전 대통령이) 굉장히 빨리 마셔 취했고, 김용현 전 장관이 부축해 나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만약 윤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임기 내내 이런 술자리가 이어졌을 터.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국군의날 회식을 설명하면서 “(오후) 8시 넘어서 와서 앉자마자 그냥 소주·맥주 폭탄주로 막 돌리기 시작하지 않았느냐”고 곽 전 사령관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내 기억에 술 아주 굉장히 많은 잔이 돌아간 것 같은데, 앉자마자”라고 말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은 시각이 오후 9시22분이다. 만약 윤 전 대통령이 “8시에 앉자마자 폭탄주를 막 돌리기 시작”하고 “아주 굉장히 많은 잔이 돌아간” 날에 북한이 비슷한 도발을 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이런 끔찍한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전직 대통령이 실토했다. 작은 현안에도 법 개정을 마다치 않는 더불어민주당에 국민의 안전을 위해 ‘대통령 금주법(禁酒法)’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읍소하고 싶다. 그러지 않고선 국민이 단잠을 이루기 힘든 나라가 돼버렸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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