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해저드 경계령 무시당한 시장 원리, 왜?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5. 11. 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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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가계빚 두고 “빚내라” “갚지 마라”
모럴해저드 권하는 정부 이래도 되나

부동산에 이어 이번엔 재정을 동원한 ‘금융 포퓰리즘’이 시장을 휩쓸 조짐이다. 앞서 이재명정부가 내놓은 10·15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지역으로 묶인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에서는 거래가 실종됐다. 수요·공급을 통한 시장의 가격 형성 원리를 무너뜨렸다. 전세 불안이나 풍선효과 등 부작용만 속출한다. 부동산 시장 다음 타깃은 금융권이다.

이재명정부가 저소득·저신용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정책대출 확대를 밀어붙이는 동시에, 사상 최대 규모 개인 빚 탕감을 추진하고 있다. 한쪽에선 금리를 낮춰 대출을 내주면서, 또 한쪽에선 탕감으로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정책을 펴는 것이다. ‘금리로 위험을 가격화하고 신용은 책임으로 보상받는다’는 금융 시장 원리가 뿌리부터 흔들린다는 지적이 거세다. 정책대출 확대는 통화 팽창, 빚 탕감은 재정 확대와 실질 효과가 유사하다. 두 정책이 동시에 작동하면 인플레이션 압력과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금융 공급은 시장 실패 보완을 위해 필요하지만, 민간 시장을 대체할 정도로 확대되면 ‘금융 포퓰리즘’이 돼 우리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재명정부가 저소득·저신용자 대상 저금리 정책대출 확대를 추진 중인 동시에, 역대 최대 규모 개인 빚 탕감에 속도를 낸다. 정책대출 확대로 빚을 늘리는 한편, 빚 탕감으로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동시에 내 시장 원리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재정을 동원해 이중으로 신용 확장에 나선 것이다. 취약계층에게 공적금융을 공급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민간 대비 과도한 정책대출 공급은 ‘금리차를 통해 신용 위험을 가격으로 매긴다’는 시장 원리를 교란할 수 있다. 사상 최대 규모 빚 탕감 역시 ‘상환 의무’라는 신용 대전제를 뒤흔든다.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 개인 빚 탕감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빚 안 갚고 버티면 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자 금융회사들이 골머리를 앓는다. 사진은 지난 10월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 (연합뉴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세계 2위로 ‘세계 최대 가계부채 국가’다(국제금융협회). 이런 가운데, 정부가 저금리 정책대출(유동성 확대)과 빚 탕감(부채 부담 제거) 정책을 동시에 펴 악성 부채 순환 고리를 고착화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빚을 탕감해주면 장부상으로는 일시적으로 순부채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채무자 상환 능력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한 시차를 두고 부채 부담이 되레 늘어날 수 있다. 상당수 빚 탕감 수혜자가 3~5년 내 재연체에 빠진다는 통계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생산성 개선이나 고용 창출이 동반되지 않은 ‘금융 포퓰리즘’으로는 가계 채무 상환 능력 개선이 요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배드뱅크(부실 자산을 인수해 정리하는 전문 기관) ‘새도약기금’을 통해 개인 113만명의 7년 이상·5000만원 이하 빚 총 16조4000억원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탕감한다. 또,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 조정을 위한 기존 ‘새출발기금’을 확대해 10만 소상공인 등 채무 6조2000억원을 조정한다. 이 같은 규모(약 22조6000억원)는 김대중정부 농가 부채 탕감(17조5500억원)을 훌쩍 웃돈다. 역대 개인 대상 빚 탕감 정책 가운데 최대 규모다.

이와 별개로, 이미 금융당국은 연간 10조원을 웃도는 정책서민금융을 공급 중이다. 이뿐 아니라, 최근 이 대통령은 고신용자 금리를 높여서라도 저신용자 정책대출 금리를 낮추라고 지시했다. 입법 과정을 밟아 민간 대비 낮은 정책금리 상품이 확대 공급될 전망이다.

이는 최근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시장 원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발언이 잇따라 나온 것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많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9일 국무회의에서 15.9% 금리가 적용되는 서민금융상품에 대해 “경제성장률 1% 시대에 이자율이 15% 넘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14일 서울 콘텐츠문화광장에서 열린 ‘디지털 토크 라이브 국민의 목소리, 정책이 되다’에서 연 10%가 넘는 저신용자 대출 금리를 두고 “금융이 너무 잔인하다”라며 “왜 가난한 사람들끼리 (금융권의) 손실을 다 감당하나”라고 재차 질타했다.

이 대통령이 연일 ‘서민금융’ 관련 발언 수위를 높이자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가 잇따른다. 대표적인 게 지난 9월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다. 이 법안 국회 통과를 전제로 최근 서민금융진흥원은 ‘서민금융안정기금’ 신설을 위한 기금 운용 체계 설계에 착수했다. 손실 발생 시 정부가 보전할 수 있는 조항과 기금채권 발행 근거 등도 포함됐다. 향후 구체화 과정에서 재정 부담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개인 빚, 나랏빚으로 상환

금융권 곳곳 부작용 ‘몸살’

그러나, ‘서민금융’ 수식어가 붙은 일련의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서민 생계 안정을 위해 금융이 공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는 백 번 타당하다. 특히 경기 둔화 국면에서는 시장 실패 보완을 위해 정부 개입이나 사회 안전망으로서 금융의 역할이 필요하다. 문제는 각론이다. 공적금융이 기존 질서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민간 시장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재정을 동원한 ‘금융 포퓰리즘’으로 변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정부·여당은 저소득·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저금리 정책대출을 확대하는 와중에 ▲배드뱅크(새도약기금)로 빚을 탕감하는 한편, 정책대출과 기능·역할이 중복되는 ▲서민금융안정기금 설치를 위한 속도전을 편다. 금융권에선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도 가시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법정 최고금리는 2002년 66%에서 2021년 20%까지 계속 낮아졌다.

이런 정책은 모두 시장 원리를 교란하거나 무력화해 우리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정책대출 확대·금리 인하는 사실상 통화 확대와, 빚 탕감은 재정지출과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 두 정책이 동시에 작동하면 이중 부양 효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지고 자산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이미 가계부채 총량이 한계 수위에 도달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GDP 대비 가계부채가 세계 2위에 달하는 거시경제 여건 아래서는, 정책금융 추가 공급이나 과도한 빚 탕감은 우리 경제 불안 요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국제결제은행(IMF·BIS) 등 분석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부채가 85%를 넘으면 성장기여도는 마이너스로 전환된다(BIS Working Paper No.352·2011). 배드뱅크를 바라보는 시선도 엇갈린다. 배드뱅크 설립으로 통계상 부채비율이 일시적으로 개선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보증·기금 등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부채 위험이 정부를 비롯 공공 부문으로 이전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달리 말해, 새로운 부채(저금리 정책대출) 공급이나 빚 탕감으로 채무 부담을 지워주는 게 더는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성장의 ‘역(逆)기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미 금융 시장 곳곳에서 부작용은 현실화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 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에서 저신용 차주가 오히려 더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 ‘금리역전’ 현상이 관측된다. 정책금융상품 취급이 늘어난 영향으로 금융권은 분석한다.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는 시장 질서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사상 최대 빚 탕감을 바라보는 금융권 속내도 심란하다.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 확산이 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인터넷에는 “역대급 채무 조정과 탕감받을 기회”라는 변호사와 법무사 광고가 봇물을 이루는가 하면, ‘배드뱅크 브로커’도 판을 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연간 10조원을 쏟아붓는 정책금융과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민간 신용 공급을 줄여 취약계층 대출 접근성이 더 낮아진다는 지적도 내놨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무 탕감은 그만큼의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과 같다. 채무 조정이 부채 상환 능력을 개선시켜줄 가능성도 낮다. 관치금융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3호 (2025.11.05~11.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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