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쿠팡 수사외압' 진실공방…엄희준 "법리대로만 판단" 진술서 제출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으로 감찰을 받는 엄희준 광주고검 검사(당시 부천지청장)가 5일 대검에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술서에는 쿠팡 퇴직금 미지급 진정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게 된 경위와 문지석 광주지검 부장검사(당시 부천지청 부장검사)의 의견이 대검에 보고됐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은 상설특검 출범이 임박한 만큼 추가 수사 없이 사건을 이첩할 전망이다.
쿠팡 사건 외압 의혹은 문 부장이 지난달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이 조직을 상대로 이의제기하는 것에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꼈다”며 눈물을 보이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의혹과 관련된 엄 전 지청장과 이영상 전 쿠팡 법무 담당 부사장 등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만큼 여권의 공세가 날로 거세질 것으로 우려했다. 검사 출신인 이영상 전 부사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국제법무비서관과 법률비서관을 지냈다. 엄 전 지청장은 지난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장검사를 맡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본질보다는 엄 지청장과 이 부사장이 ‘친윤’이라는데만 이목이 쏠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퇴직금 미지급 쿠팡, 형사처벌 대상인가
사건은 쿠팡이 2023년 취업규칙을 바꾸며 ‘퇴직금 리셋 규정’을 도입한 데서 비롯됐다. 4주 평균 근로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이면 근속이 끊긴 것으로 간주해 1년 이상 근무한 일용직 노동자도 퇴직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자, 노동자들이 쿠팡을 고소하거나 진정을 제기했다. 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퇴직급여법) 위반으로 송치했지만,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무혐의’로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 문 부장은 상부 보고 없이 쿠팡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가 지난 5월 감찰을 받았다. 이후 문 부장이 엄 전 지청장이 수사 외압을 행사해 쿠팡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폭로하면서 진실공방이 시작됐다. 상설특검은 출범 후 쿠팡 무혐의 판단의 타당성과 외압 여부를 함께 살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쿠팡이 고용노동청 허가와 근로자 88%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바꾼 만큼, 이에 따른 퇴직금 미지급은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쿠팡의 일용직 노동자는 퇴직급여법상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일용직 노동자임에도 퇴직금 지급 대상이 되는 경우를 상용근로자성이 명확히 인정되는 경우로 보고 있다. 부천지청은 하루 단위로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하고 다른 기업에서 일해도 제약이 없는 쿠팡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 2월 수원지법 안양지원이 일용직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물류업체에게 무죄를 판결한 판례도 고려됐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쿠팡의 동일한 퇴직금 진정 101건 중 부천지청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송치되지 않았다. 다수의 사례에서 “상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 사유가 부정된 것이다.

반면 문 부장은 쿠팡의 일용직은 대법원 판례상 상근성과 계속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어 퇴직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쿠팡이 2023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설명을 1분 미만으로 형식적으로 했고, 근로자 간 의견 교환을 위한 장소 등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규칙 변경 자체가 무효라고 본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쿠팡 내부 자료에 ‘일용직 사원에게 퇴직금, 근로기간 단절의 개념을 별도 커뮤니케이션하지 말고 이의 제기 시 개별 대응하라’는 지시가 담긴 점도 그 근거로 들었다. 때문에 쿠팡이 기존 취업규칙에 따라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노동 사건 처리 경험이 많은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청의 허가를 거친 만큼 취업규칙 변경을 무효로 보기는 어렵다”며 “쿠팡이 법을 위반하려는 고의가 입증돼야 하는데, 정당하게 변경된 규칙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안을 형사처벌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압 있었다” vs “정상 지휘였다”…진실공방

또 문 부장은 김동희 당시 부천지청 차장이 “쿠팡 사건은 무혐의로 가야 한다”고 예단하고, 자신이 확보한 핵심 증거와 법리 의견이 대검 보고서에서 누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엄 전 지청장과 김 전 차장 측은 “문 부장이 작성한 보고서를 대검에 그대로 보냈고, 법리 판단 외 고려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당시 대검 공공수사부 관계자도 문 부장의 의견이 충분히 전달돼 고려됐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향후 상설특검은 부천지청 지휘부가 쿠팡 측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는지, 지휘가 적법했는지 등을 규명할 예정이다. 문 부장은 “김 전 차장이 쿠팡 측 검찰 출신 변호사와 가족 모임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김 전 차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석경민·김성진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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