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에 '여자와 결혼한다' 발표한 딸... 상상과 달랐던 반응
정의를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주는 세상이라고 아직 믿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순진하다고들 하지만, 순진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법은 기득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겉으로는 약자를 위한다고 표방하는 것이 또한 법이기에 부조리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법으로써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상의 모습을 이곳에 전한다. <기자말>
[김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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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은, 예정민 커플의 웨딩사진 |
| ⓒ 윤재은, 예정민 |
지난 1일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린 윤재은, 예정민 커플을 결혼식 이틀 전에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 중 나의 동료인 재은은 지난 5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할 정도로 공익인권 활동에 진심인 변호사다. 현재는 손솔(진보당) 국회의원실에서 선임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그와 결혼하는 정민은 광고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모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동성혼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오히려 더 결혼해야"
두 사람은 대학 시절 퀴어 인권 동아리에서 만났다. 둘 다 연애하고 싶어 작정하고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재은: "대학에서 학생회 생활만 열심히 하다가 연애를 해보고 싶어서 작정하고 퀴어 인권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동아리 모임하는 날 나가봤는데 너무 예쁜 사람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력했어요. 계속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선물 주고, 맛있는 거 사다 주고, 연락하고. 그렇게 노력해서 만났어요."
정민: "저도 대학에서 벽장으로(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같은 성 소수자도 잘 만나지 않고 숨어 지냈다는 의미-필자 주) 학부 생활만 열심히 하다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작정하고 들어가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대학 축제 날 가진 동아리 첫 모임에서 자리가 즐거워 술이 많이 취해 있었는데, 조금 뒤늦게 도착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복도의 빛이 함께 들면서 후광과 함께 강렬하게 등장했어요. 술 취한 와중에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뚝섬에서 데이트할 때 썸타면서 지지부진하게 끌지 않도록 하려고 제가 고백을 했습니다. 사귀자고. 그래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만난 지 10년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쭉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는 재은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레 정민과의 결혼을 생각하게 됐다. 반면 정민은 처음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이미 같이 살고 생활을 공유하고 있었던 만큼 굳이 결혼식이 필요한지 의문이었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배제하는 결혼 제도에 비판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은: "저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축하 받을 기회가 살면서 몇 번이나 있겠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쭉 하고 싶었는데, 실제로 친구들도 점점 하나, 둘 결혼을 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나도 할 수 있고,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민이한테 하자고 졸랐어요."
정민: "이미 저희 관계가 사실혼이어서 거기에 만족을 하고 있었고, 식을 하는 것에 대해 어릴 적부터 회의적인 입장이었거든요. 결혼제도라는 것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묵살시키고 식도 허례허식이 많다는 인상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재은이가 하고 싶다고 하기 전까지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정민이 마음을 바꿔 결혼하게 된 데에는 재은이 그의 삶으로 보여준 신뢰 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살아온 재은과 달리, 정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살아왔는데, 재은을 믿고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됐다. 또,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도 자신을 보고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민: "재은이를 만나 안정감을 찾으면서부터 관심사가 '연대, 표출, 표현' 같은 것이라서 같은 맥락에서 저를 숨길 게 아니라 드러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생각이 느리고 많은 편이라서 이런 결심을 해도 막상 실행에 옮기는 데까지는 또 다른 결단과 시간이 필요한데, 늘 그렇듯 재은이가 그런 결정을 더 빨리 할 수 있게 해줬어요.
재은이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하고 그걸 따랐을 때 제게 좋지 않았던 적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어요. 또 여러 이유들이 있는데, 저도 누군가가 남겨놓은 발자취를 보고 용기를 가져왔으니까 다른 누군가도 저희의 결혼식이나 존재를 통해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여태 나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기를 많이 해왔으니까 주변에 남는 기록이 없어 후회하는 것도 싫증이 나서, 제 삶에 솔직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현재는 동성혼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 결혼식을 해도 두 사람의 관계에 법적 효과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은 그 자체로의 의미가 있다.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는 미루는 커플들이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어쩌면 법률효과로써 제도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혼인신고'라는 법적 절차보다 당사자들간 영속적 결합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결혼식'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들 커플도 비록 현행법상 법적 효과는 없더라도 결혼식은 세상을 향해 자신들이 약속을 알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이다. 이들은 이에 더해 동성혼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동성커플들이 더 결혼식을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재은: "결혼'식'이라는 게 내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앞으로는 이 사람과 가족이 될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자리잖아요. 법률혼만 아닐 뿐 선언의 의미는 이성혼이나 동성혼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실질은 가족, 부부로 살고 있는데 왜 감추고 살아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식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일 큰 의미는 주변의 응원과 지지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잘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민: "현행법상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고 있으니까 더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느 이성 커플들과 같은 사랑을 하고 같은 결혼(식)을 올리지만 제도나 법적으로 이성 커플들과는 전혀 다르게 차별 받고 있고, 그게 분명 느껴질 거거든요. 저는 이런 부당함과 고민은 이제 개개인의 퀴어들이 억눌리고 억누른 채로 두는 게 아니라, 사회가 함께 느끼고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많이 가시화되었으면 싶고, 다들 동등하게 사회에 기여하는 구성원인 만큼 동등한 자유로움과 안정감, 법적 인정과 혜택들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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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사람에게 결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
| ⓒ 연합=OGQ |
정민: "저는 계속 벽장으로 살아왔잖아요. 그래서 온전히 나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있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거든요. 그러다가 재은의 소개로 마포에 있는 '성미산 알루'라는 술집을 가게 되었어요. 퀴어 프렌들리, 반려동물 프렌들리한 공간이거든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나로서 환대받는 느낌을 받았고,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꼈었어요. 이번 결혼도 제게는 이런 의미인 것 같아요. 성미산 알루에 이어, 또 하나 발견한 자유. 내가 누리지 못했던,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자유."
주변에 알리지 않고 이미 커밍아웃한 사람들만 모아 결혼식을 올리는 퀴어 커플도 있는데, 정민과 재은은 결혼식을 계기로 오픈리(openly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필자 주)로 살기로 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과 결혼식을 열어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런 점에서 재은·정민 커플이 결혼식을 하기로 한 결정은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벽장으로 살아온 정민은 물론이고, 비교적 주변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며 살아온 재은에게도 결혼식을 연다는 것은 또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결국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역시 주변의 따뜻한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다.
재은: "(결혼식을 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가족에게 말하는 용기가요. 저는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 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정체성을 밝혀 왔어요. 그래서 주변을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로 채워 왔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그렇게까지 큰 부담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가족에게 말하는 게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도 잘 받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 사회적으로 정체성을 밝히니 조금 두렵기는 해요. 앞으로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정체성을 알고 그걸 이유로 못되게 굴거나 티 안 나게 배제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요.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든든하게 지지해 주고,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사람이 나쁜 거지 절대 제 잘못이 아니란 것을 아니까 당당하게 다니려고요."
정민: "아무래도 용기가 정말 많이 필요한 일이 맞아요. 제가 벽장으로 산 기간도 길고 오래된 친구나 지인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사람이라서, 처음에 결혼식 하자고 동의는 했는데 초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공동지인들을 빼면 겨우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상태였어요.
용기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주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재은이. 늘 용기 있게 앞서나가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으니까 거기에 저도 자극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자주 만나는 주변 이웃, 친구들. 프렌들리한 공간을 열어주시기도 하고, 저희의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주시기도 하고, 부당함이나 차별이 나쁘다고 말하는 친구들과 같은 사정 같은 고민을 나눌 퀴어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제 인생에 그분들만 함께 해주신다면 일이 틀어져도 잘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벽장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로움과 사회적인 연결감이나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것 같아요.
단계별로 구성원별로 용기가 필요해요. 처음엔 친구들에게 밝힐 때 두려웠고, 그 다음엔 다니는 직장에 밝힐 때 두려웠고, 또 그 다음엔 혈육 가족들한테 밝힐 때 정말 많이 떨었는데, 다들 기뻐해 주시고, 다정한 지지와 응원을 많이 보내줬어요. 가족들한테 밝히는 것은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으니, 끝의 끝까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가장 늦게 말한 것 같아요. 근데 한 번, 두 번 용기 내서 말하다보니까 나중에 친구들과 직장에 밝힐 때는 어느 정도 기계적으로 밝히게 되더라고요. 떨리긴 하지만, 일단 입을 열거나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누르다 보면 '저 결혼해요, 아내가 여성이에요'하고 툭."
걱정과 달리 정민과 재은의 가족들 모두 자녀의 성정체성과 결혼이라는 결정을 잘 받아주었다. 양측 어머니는 결혼식에서 함께 화촉을 밝혔는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재은: "저희 어머니는 제가 정민이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고 계셨다고 했어요. 결혼식을 다 결정해 놓고 너무 갑작스레 통보하는 것 아니냐 아쉬운 말씀도 하셨죠. 그렇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말문을 열기가 참 힘들었어요. 어머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지만, 과거 고등학생 때 어머니께 성정체성을 이야기했다가 어머니가 화를 내신 적이 있거든요. 다행히 이번에는 별말 없이 받아들이셨습니다."
정민: "이번 추석 연휴 끝물인 10월 9일이 아버지 생신이셨어요. 말씀드리게 되면 연휴 전에, 한 사람씩 따로따로 만나서 말하고 싶었는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그만 생신날까지 와버린 거예요. 근데 그즈음엔 이번에 말하지 못하면 향후 몇십 년은 또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은이에게는 나는 혈육들한테 말 안 할 거라고 했지만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발간한 도서도 두 권, 청첩장도 머릿수 맞춰 세 장씩 준비한 상태로 갔었어요.
아버지 생신날에 말하기엔 선물이 될지 뭐가 될지 가늠이 안 되니까 밤 12시까지 명절과 생신을 즐기고, 자정을 갓 넘긴 시간에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고 식탁에 불러 모아 책과 함께 청첩장을 전달드리며 말했는데 잘 받아주셨습니다. 저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거든요. 내쫓기고 가족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고성이 오가고. 근데 너무 다 잘 받아주셨어요. 당당하고 기쁘게 소식 전하고 싶은데 막상 말을 시작하니까 저만 막 울고 횡설수설하고 상상했던대로 잘 안되더라고요. 의식을 잘 못하고 있었는데 손이 너무 벌벌 떨리니까 손도 잡아주시고, 뭐 잘못했냐고, 울지 말고 둘이 선택한 대로 당당하게 살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심지어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채고 계셨다고 해서 놀랐어요."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런 어려움을 견디면서 부모님께도 꼭 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실제로 이들은 실제 부모는 아니지만 부모나 다름없을 만큼 애정하는 지인에게 결혼식에서 부모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해 두기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부모님께 밝히자고 결심한 이유가 있었다.
정민: "왜냐하면 뭔가 어떤 순간에 결정을 하는 순간에 좀 저도 어떤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재은이가 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재은이랑 이제 또 향후 몇십 년 동안 재은이랑 제 관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가 만약에 제가 뭔가 잘못되는 일이 있었을 때 이제 재은이가 저 제 가족으로서 부인으로서 인정을 못 받을까 봐, 그냥 외딴섬에 있는 것처럼 될까봐 걱정이 됐어요. 이건 결코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니까, 가족들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직장에서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고, 경조사 휴가도 무리 없이 받았다. 재은의 경우, 보좌하는 손솔 국회의원은 혼인평등 실현의 필요성을 공감하기에 직장에 알리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정민의 경우 보통의 회사에 재직 중이었기에 다소 걱정했는데, 회사 대표도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를 전할 만큼 응원을 받았고, 대놓고 냉대나 차별적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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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은, 예정민 커플과 그들의 반려견 감귤이의 웨딩사진. |
| ⓒ 윤재은, 예정민 |
정민: "준비하는 시작부터 끝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일단 필요한 업체마다 저희를 드러내야 하니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상태로 저희의 신상을 먼저 알려야 하는 부분이 많은 부담이 되었죠. 업체들도 퀴어프렌들리한 곳들이 있지만 선택폭이 넓지 않다는 것도 아쉽기도 했고. 동성 커플에 관한 참고자료가 별로 없다 보니 이성 커플을 많이 참고해야 했다는 부분도 있고, 모바일 청첩장 같은 것들은 애초에 제작업체에서 올려둔 템플릿이 다 남과 여로 이루어져 있어서 개발업체에 따로 문의를 더 해야 했어요. 여튼 옵션 자체가 없었어요.
이건 예식 준비와 별개로 겪은 것인데,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상조회를 운영해요. 근로계약과 동시에 자동으로 가입이 되어 매달 월급에서 상조회비가 빠져요. 저는 6년 차에 접어든 상조회원인데, 상부상조의 기능이 퀴어인 나에게도 적용이 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이미 주변 친한 동료들에게는 커밍아웃과 결혼 소식을 함께 알린 상태였고, 든든한 지지와 응원도 많이 받은 상태였지만, 늘 그렇듯 국가든 회사든 법과 제도, 규칙과 같은 부분에서는 한없이 거절당할 걱정부터 앞서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특별히 거부당하는 일은 없었어요."
그래서 이들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욱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동성커플에 수용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는데, 오직 제도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행 혼인제도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특히 재은은 직업이 법을 다루는 변호사이자,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보좌진으로 일하고 있기에 향후 입법적 변화의 흐름에 대한 의견도 궁금했다.
재은: "혼인이란 두 사람의 결합이죠. 두 사람이 서로를 가족으로 삼아 부양하고 아끼며 살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선언이 나의 성별 혹은 배우자의 성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출산 이야기들 많이 하시던데 그러면 아이를 갖지 않는 이성 부부는 부부가 아니고, 각각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여성 동성 커플은 두 배로 부부다운 건가요? 전혀 아니잖아요. 혼인의 목적은 출산이 아니니까요. 서로 아끼고 살아가며 살겠다는 두 사람의 약속과 선언을 성별을 이유로 달리 취급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 혼인 제도는 빨리 바뀌어야죠.
21대 국회에서 장혜영(정의당) 의원님 대표발의로 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이 발의되었었죠. 22대 국회에서도 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님께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셨습니다. 얼마 전 국회에서 혼인 평등을 주제로 한 국제 컨퍼런스도 크게 개최가 되었고요. 제가 있는 의원실에서도 동성혼 법제화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차별금지법 발의와 제정을 위해 차별금지법 공론화위원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계속 누군가 이야기하려고는 해요. 그런데 언제나 주변부에 머물고, 중심으로 가려 하면 특정 종교 믿으시는 분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하지요. 이걸 이겨내고 발의를 넘어 제정을 한 번 해보고자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보려 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동성 커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재은: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는 게 백배 낫다고 생각합니다. 문의 주시면 모든 팁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축하 받을 수 있는 기회 흔치 않아요. 추천합니다. 결혼 하세요!! (그런데 하기 싫으면 안 하셔도 됨)"
정민: "결혼을 고민하고 계시나요. 저도 이래저래 걱정과 고민이 많이 있었어서 무척이나 공감이 되고 응원조차 조심스럽습니다. 의외로 하고 있는 많은 걱정들 중 대부분이 무색한 것일 수도 있어요. 고민을 해결하려면 일단 뭐든 시작해 봐야 한다는 것을 떠올려주세요. 결혼이나 커밍아웃을 해서 떠날 사람들은 원래도 떠날 사람들이었던 것이고, 새로 맞이할 연들은 더 뜻깊고 의미 있게 다가올 거예요. 안전을 도모하는 것도 중요하니 너무 두렵다면 두려운 대로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계속해서 마음의 문을 두드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결혼이든 커밍아웃이든 간에요. 궁금하신 내용이 있다면 편히 물어봐 주세요.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동성커플의 결혼식이 낯선 분들에게도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재은: "다른 결혼식이랑 똑같으니 낯설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결혼식이에요. 너무 기쁘고 행복한 신부가 둘인. 과거의 저처럼 결혼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냥 결혼하나보다 하시면 되고, 뭔가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여느 커플의 결혼을 응원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북돋아주시면 감사합니다."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냐는 물음에, 재은은 "행복한 성소수자로 잘 살아남아서 세상에 나를 전시하는 것도 하나의 활동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결혼식장에서 본 두 사람의 모습은 더없이 행복한 모습이었다. 함께 한 하객들 역시 따뜻한 축하와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뜨거운 축복은 비단 이 커플을 향한 것만이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의 앞날뿐 아니라 곳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퀴어 커플들에게 따뜻한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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