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물고 물리는 AI 투자…호황 과시성 ‘금융 연극’일 수도

하현옥 2025. 11. 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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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론 부르는 AI 기업의 ‘순환적 거래’


하현옥 논설위원
“인공지능(AI)이 이끄는 강세장이 7회 말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9월 모건스탠리 글로벌투자위원회(GIC) 보고서에 등장한 표현이다. ‘AI 데이터 센터 생태계’ 기업의 막대한 설비투자가 주가 상승을이끌었지만 AI 투자 붐이 후반 국면에 진입했다는 경고다. S&P500 지수가 최근 3년간 90%가량 상승할 만큼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기대감은 주식 시장을 부양하는 강력한 동력 중 하나였다.

「 AI 기업 간 주고받기 투자 거래
“윈윈” 대 “거품 부풀리기” 맞서

신속한 인프라 구축 필요성에도
수익 모델 검증 없는 투자 우려

복잡한 투자·거래 구조로 인해
위기 발생 시 전이 취약성 커져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대규모 클라우드 제공업체(hyperscaler)의 잉여 현금 흐름이 둔화하고 시장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빨간불이 켜졌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나는 AI 기업 간의 투기적 거래다. 서로 얽히고설키며 몸집을 키워가는 거래가 인위적으로 AI 붐을 부양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닷컴 버블 시기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판매자 금융)’과 닮은꼴이란 지적도 나온다.

‘벤더 파이낸싱’ 닮은꼴, 순환 거래
벤더 파이낸싱은 물건을 파는 쪽(공급업체)이 물건을 사려는 고객사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고 고객사가 그 돈으로 공급업체의 제품을 사는 것이다. 닷컴 버블 시기 루슨트와 노텔 등 통신장비업체가 대출이나 은행 대출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통신사의 인터넷망 확장 등에 자금을 지원하고, 자금력이 부족했던 통신사는 이 돈을 받아 장비를 사들이며 설비 투자에 나섰다.

이런 ‘주고받기식 거래’로 장비업체의 매출은 급증하는 것처럼 보였고 기업 가치는 치솟았다. 문제는 그 뒤였다. 닷컴 버블이 끝나고 통신사가 투자를 줄이거나 도산하자 장비업체가 부실 채권을 떠안게 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루슨트는 벤더 파이낸싱으로 70억 달러(약 10조원)가 넘는 대출과 보증을 제공했지만 상당액이 회수 불능에 빠지면서 실적 악화와 주가 하락에 시달렸다. 노텔은 파산 절차를 밟았다.

김경진 기자

최근의 AI 기업 거래에서 벤더 파이낸싱의 그림자가 어른대는 건 ‘돌려막기식 거래’가 만연하면서다. AI 업계의 유행어가 된 ‘순환적 거래’다. AI 기업 사이의 자금 순환 구조가 물고 물리고 있는 것이다. 모건스탠리 보고서에서 따르면 오픈AI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AMD, 코어위브 등 6개 기업 사이의 자본 흐름이 ‘스파게티 접시’처럼 얽혀 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AI 기업 간 순환적 거래의 중심에는 오픈AI와 엔비디아가 있다.

지난 9월 엔비디아는 오픈AI에 1000억 달러(약 144조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오픈AI는 이 투자금으로 10기가와트(GW) 전력으로 운영되는 엔비디아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 엔비디아는 리스 형태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여해 오픈AI의 초기 자본 지출 부담을 줄여줄 계획이다. 오픈AI에 보조금을 주는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엔비디아와 오픈AI가 발표한 1000억 달러 규모의 협력은 실제 사업적인 필요성보다는 상징적인 성격이 강하다”며 “재무적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엔비디아와 오픈AI의 거래가 ‘금융 연극’처럼 보인다”며 “AI 호황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기획된 거래”라고 지적했다.

오픈AI는 AI 기업 순환 투자 구조의 핵심 고리다. 엔비디아의 경쟁자로 입지를 강화하려는 AMD는 오픈AI를 고객으로 잡기 위해 당근을 내걸었다. AMD 지분 10%를 저가에 매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워런트)을 발행했다. 오픈AI는 오라클에 향후 5년간 3000억 달러(약 431조원)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구매하는 계약을 맺으며 손을 잡았다.

오픈AI는 MS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MS는 오픈AI의 주요 투자자로, 오픈AI는 MS의 클라우드 Azure의 주요 고객으로 수익 공유계약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MS 의존도를 낮출 포석도 놨다. 오픈AI는 지난 3일 아마존과 380억 달러(약 55조원) 규모의 클라우딩 컴퓨터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데이터 센터를 즉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인프라 구축 경쟁에 상호 투자는 필수
AI 클라우드 인프라 업체인 코어위브를 둘러싼 AI 기업들의 거래는 그야말로 얽히고설켜 있다.

김경진 기자

코어위브 지분 5%를 소유한 엔비디아는 코어위브에 AI칩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2032년까지 코어위브의 미판매 클라우딩 컴퓨팅 장비에 대한 63억 달러 규모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코어위브에 지분 투자를 한 오픈AI도 코어위브 서비스 224억 달러(약 32조원)어치 구매 계약을 했다. 코어위브의 최대 고객인 마이크로소프트는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장기 서버 임대 계약을 맺었다.

AI 기업들 사이의 주고받기식 거래가 벤더 파이낸싱과는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비슷한 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AI 클라우드 스타트업인 람다와 엔비디아의 계약이 대표적이다.

람다가 엔비디아의 GPU 구매 계약을 한 뒤 GPU 담보 대출을 받아 이 돈으로 엔비디아의 GPU를 대량 구매하고, 엔비디아는 람다 클라우드 컴퓨팅 임대 계약으로 임대료를 지불했다. 엔비디아는 신용을 제공하고 람다의 구매로 엔비디아의 매출이 늘어나는 전형적인 벤더 파이낸싱의 구조를 따랐다.

AI 기업 사이의 순환 투자 구조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환 기술인 AI에서 오픈AI는 거대한 주체이고, 주요 기업이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하는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며 “오픈AI와 경쟁사들이 막대한 자본 지출을 정당화할 만큼 강력한 현금 흐름을 창출한다면 그들의 노력은 엄청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맞서는 회의론자의 입장도 만만치 않다. 이런 순환 거래가 AI 기업들이 서로 보조금을 주고 의존하지 않고서는 확장할 수 없는 상황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AI 산업 부풀리기’를 통해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김주원 기자

블룸버그는 “오픈AI가 엔비디아와 AMD, 오라클 등과 체결한 AI 컴퓨팅 계약이 1조 달러(약 1438조원)를 훌쩍 넘어선다”면서 “잠재력은 크지만, 수익 창출 수단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이처럼 많은 자금이 빠르게 투자된 적이 없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19조 매출 오픈AI, 1438조 인프라 투자
시장이 AI 기업 간 투자를 걱정스레 여기는 건 이 순환 거래의 핵심 고리인 오픈AI의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아서다. 몸값은 뛰지만 실속은 없는 상태다. 오픈AI의 기업가치는 5000억 달러(약 719조원)로 추정되지만 창사 이래 흑자를 낸 적이 없다.

FT에 따르면 오픈AI의 올해 추정 매출액은 약 130억 달러(약 19조원)로 아마존의 매출액 예상치(약 7000억 달러·약 1007조원)의 2%도 되지 않는다. 챗 GPT 이용자 8억명 중 유료 구독자는 5%에 불과하다고 보도됐다. 이런 회사가 1조 달러의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건 무리수로 비칠 수도 있다.

AI 기업 간 순환 투자 거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투자와 자금 조달 구조의 취약성에서도 비롯한다. 국제금융센터는 “클라우드 제공업체가 소수의 고객 및 GPU 공급 업체와 장기 매입 약정을 맺고 있는 탓에 AI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 이들 기업은 수익 없는 자본지출로 높은 재무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원 기자

자금 조달 구조도 불안을 키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달 초 기준 올해 AI 관련 기업의 누적 채권 발행 규모는 1410억 달러(약 203조원)로 지난해(1270억 달러·약 183조원)를 훌쩍 웃돈다. AI 기업의 자본 지출이 늘어난 영향이다. 이런 흐름 속 AI 기업의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한 부외 부채(대차대조표상 부채로 표시하지 않은 채무)와 상대적으로 정보 공개가 제한적인 사모 신용 활용도 늘었다.

투자 규모 늘며 장부에 없는 부채 증가
모건스탠리는 “최근 AI 기업 간 거래는 수익 모델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일 투자 규모가 크고 경제적 실체와 상호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투자와 거래 구조로 인해 취약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한 기업의 문제가 다른 기업 혹은 AI 산업, 더 나아가 금융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

WSJ은 “수익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AI 모델과 제품 개발에 그처럼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것에 투자자들이 지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며 “(그때가) AI 생태계가 벽에 부딪힐 수 있는 순간이며, 닷컴 버블 시기의 순환적 거래와 비슷하게 될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현기증 나는 AI 베팅에 대한 혼란스러운 심경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은 번스타인 리서치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의 내용대로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경제를 10년 동안 무너뜨릴 수도 있고 우리 모두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현재로써는 어떤 카드가 우리에게 다가올지 알 수 없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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