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어른 행세] 아이들은 얼마나 웃으며 살고 있을까?
서울, 부산, 경기도 가평, 제주, 미국에 흩어져 사는 6인이 쩨쩨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편집자말>
[임은희 기자]
차별이 익숙한 어린이
"피낭시에 두 개랑..."
직원이 주문하던 아이를 세워두고 내게 말했다.
"손님, 여기 노키즈존이세요."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와 청계청 인근의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겪었던 일이다. 2년 전 제주 여행에서 난생처음으로 노키즈존이라며 계산을 거절당하고 슬퍼했던 아이는 이제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나중에 아기 안 낳을래."
아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이제 만 12세인 아이가 겪은 차별은 그만큼 크고 강했다. 학교에서는 공동체의 삶이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길에 뿌려진 담뱃재에 얼굴을 맞고, 키가 큰 안내판에 부딪치고, 버스에서는 자리 양보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서서라도 안전하게 갈 수 있으면 좋은데 커다란 가방을 등으로 멘 사람들이 많은 버스에서는 가방에 두드려 맞는다.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아이는 온갖 차별을 경험하며 익혔다.
청계천의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는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린이 자전거를 가지고 왜 자전거 전용 도로를 이용하느냐, 속도가 느리니 내려서 비켜라,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놀이터나 키즈카페를 가라 등 온갖 잔소리를 다 들은 아이는 이제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악의는 없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그런 일들이 어린이들에게는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아이의 주장이었다. 점점 냉소적으로 바뀌어가는 아이를 보며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지난 1일, 광화문광장과 정동일대에서 의미 있는 행사들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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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서울 유아차 런 지난 11월 1일 오전 9시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한 유아차 행렬이 여의도공원으로 가기 위해 서대문을 지나고 있다. |
| ⓒ 임은희 |
유아차에서 두리번거리며 세상을 구경하는 아기들, 부모의 손을 잡고 신나서 깡충거리는 어린이들로 인해 칙칙한 도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토끼반(유아차 달리기), 거북이반(유아차 걷기), 졸업반 (유아차 없는 초등생 이하 걷기)로 나뉘어 참여한 참가자들은 가족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하게 도로를 점령한 유아차들을 보고 행인들은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안전한 행사를 위해 길목마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은 웃는 얼굴로 어린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평소보다 느린 행렬이었는데도 지나가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행복한 풍경이었다. 오전 9시 20분경 서대문역 인근에서 아주 어린 아기와 함께 달리고 있는 참가자를 발견했다. 미국에서 왔다는 백모세 씨 부부는 한국에서 둘째를 출산하고 출국하기 전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우리 둘째가 가장 어린 아기가 아닐까 싶어요(웃음). 첫째는 여섯 살, 둘째는 이제 100일입니다. 비록 아마추어 달리기 대회지만 우리 가족에겐 작은 축제거든요. 속도보다는 함께 달리는 것에 의의를 두고 참가했습니다."
백모세 씨 가족이 지나간 후에도 행렬은 이어졌다. 수많은 유아차들의 느려도 괜찮은 달리기를 본 아이가 문득 말했다.
"자전거 다시 타볼까?"
청소년들의 웃음으로 가득 찬 축제
무표정한 얼굴로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학원차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거의 매일 저녁마다 산책길에서 만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인처럼 고뇌를 짊어진 표정이라서 한창 예쁠 나이에 '점수는 다다익선'을 외치며 학원으로 향하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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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 2025 청소년 축제 '야호' 지난 11월 1일 토요일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덕수궁길과 정동 일대에서 열렸다. '꿈의 틀을 잡다’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축제에는 청소년, 학부모, 교사, 청소년단체, 기업, 지역주민 등이 참가했다. 33개의 체험부스를 통해 진로체험의 기회도 제공했다. |
| ⓒ 임은희 |
농장 체험에서는 시간 안에 많은 감자를 캐고 감자과자와 감자장난감을 선물로 받았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에 반한 아이와 진학 예정인 중학교도 구경하고 하고 싶은 일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존대를 하며 게임 규칙을 상세히 설명하던 역시 초등학생인 부스 운영자, 한 봉지에 천 원인 팝콘을 팔아 무려 이만 원이나 벌었다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중학생들, 능숙하게 교육을 진행하고 선물을 건네는 고등학생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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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 2025 청소년 축제 '야호'의 금융 사기 예방 부스 '야호'에 참가해 청소년 금융 사기 예방 캠페인을 진행 중인 현대캐피탈은 중구에 본사를 둔 기업이다. 보이스피싱 관련 퀴즈를 풀면 추첨을 통해 다양한 선물을 증정했다. |
| ⓒ 임은희 |
이날 오후엔 잠시 비가 내렸고 무지개가 떴다. 모든 아이들의 삶, 인생의 모든 시기에 예쁜 무지개가 뜨길 기도했다. 아이들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평가하기에 앞서 작은 성취에도 칭찬하고 응원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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