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은 남군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많은 사람들은 애당초 남군에게 전혀 승산이 없었던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북부는 많은 공장들이 엄청난 양의 무기를 생산한 반면, 남부는 노예를 이용한 농업 위주였기에 북부가 유리했다. 인구 측면에서도 북부는 2200만명을 보유했지만 남부는 노예를 제외하면 600만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처음부터 불리한 전쟁이었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있다.
하지만 남부에게 유리한 요소들이 있었다. 남부가 원했던 것은 북부로부터 독립이었다. 남군은 북부 지역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영토만 방어하면 된다는 말이다. 반면 북군은 반드시 남부로 진격해서 남부의 모든 땅을 점령해야만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미국을 건국한 조지 워싱턴 장군도 사실 세계 최강의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에서 승리한 적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영국군에 패배하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전술을 통해 영국민들이 기나긴 전쟁에 지쳐 포기하게 했던 것이 미국 독립의 비결이었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에서는 이런 상황을 소모적 지구전(war of attrition)이라고 한다. 단판에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 아니라 한쪽이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 버티는 게임을 말한다. 소모적 지구전에서는 한두 번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보다 1초라도 더 버티는 쪽이 승리한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을 이끈 로버트 리 장군도 조지 워싱턴과 똑같은 전략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군은 전략적으로 실패했고 바로 그 전략적 실패가 남군의 항복으로 이어지게 됐다. 남군이 실패한 두 가지 전략은 시간과 지리이다.
첫째, 남군은 전쟁의 개시 시점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 적대적인 상대방과 협상을 벌일 때 중요한 요소가 시점이다. 예를 들어 이미 기말 시험을 모두 끝낸 내가 내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친구와 협상을 벌인다면, 그 협상에서 내가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험을 앞둔 친구는 빨리 협상을 끝내고 시험 공부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이라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북전쟁이 일어난 시점은 링컨이 막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취임식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새로 대통령이 된 링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4년 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던 셈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다음 선거이다. 전투에서 연속해서 패배하고 사상자 숫자가 늘어나면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기 쉬워진다. 특히 남북전쟁에서는 예상을 초과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한 군인의 숫자만 70만명이 넘었다.
남북전쟁 초기에는 링컨 북군이 승리하지 못하면서 링컨 대통령의 인기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링컨에게는 다음 선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고, 3년째였던 1863년 게티스버그와 빅스버그라는 두 곳의 중요한 전투에서 북군이 모두 승리하며 링컨의 정치 생명은 되살아났다. 덕분에 1864년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은 다시 당선된다. 하지만 1864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링컨이 얻었던 표가 55%였던 반면, 민주당의 맥클렐런 후보가 남부의 독립에 동의하고 바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을 걸고 얻은 표가 44%였으니, 남북전쟁에서 거의 승기를 잡았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링컨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만일 남부가 링컨 취임 시기에 전쟁을 시작하지 않고 2년쯤 후에 시작해 전쟁의 사상자가 엄청나게 나오고 북군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링컨이 다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했다면, 전쟁의 즉시 종결과 남부의 독립을 약속한 반대편 후보가 링컨을 이겨 남부가 독립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모적 지구전에서 상대방인 링컨이 4년간 견딜 수 있는 시점에서 전쟁을 시작한 남부의 전략적 실패였다.
둘째, 남군이 버지니아주 출신의 로버트 리 장군을 총사령관에 임명한 것이 문제였다. 당시 미국 최고의 지휘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은 남군의 사령관이 되기 전에 링컨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다. 링컨 대통령은 로버트 리 장군에게 북군 사령관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로버트 리 장군이 남부에 속했던 버지니아주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리 장군은 링컨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하며 “저는 미국인이기 이전에 버지니아 주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인 버지니아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싸울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리 장군의 유별난 고향 사랑은 소모적 지구전의 전략 측면에서 보면 큰 문제가 있었다.
불행은 버지니아주의 지리적 위치에서 시작된다. 남부의 핵심인 버지니아 주는 남부에서는 가장 북쪽에 자리 잡았다. 당시 링컨 대통령이 거주했던 북부 수도 워싱턴에서 포토맥강 하나만 건너면 버지니아인 것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을 방문한 독자라면 알겠지만 백악관에서 4㎞ 거리에 위치한 알링턴 국립묘지가 바로 버지니아다. 따라서 남북전쟁 기간 내내 로버트 리 장군은 이 버지니아 북쪽 국경을 사수하면서 성공적으로 방어를 했고, 북군은 전쟁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이 방어선을 뚫고 버지니아로 진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전쟁 막바지에 결국 버지니아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의 일이다. 로버트 리 장군의 참모들 중에는 버지니아를 포기하고 후퇴하여 게릴라 전투를 시작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 리 장군은 이런 참모들의 게릴라 전투 건의를 단번에 거절하고 버지니아 방어선이 무너지자마자 바로 북군에게 항복했다.
감히 개인적으로 추측해본다면, 로버트 리 장군은 미국인이기 이전에 버지니아인이었을뿐 아니라 남부인이기 이전에 버지니아인이었던 것 같다. 남부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버지니아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한 뒤 테네시, 플로리다, 아칸소, 미시시피 같은 지역에서 게릴라 전술을 지속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지역들은 자신의 고향인 버지니아가 아니었기에 싸울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이미 버지니아가 북부의 손에 넘어간 마당에 다른 지역을 지키면서 승리하여 독립하더라도 버지니아주가 포함되지 않은 채 남부가 독립한다면 로버트 리 장군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을지 모른다.
로버트 리 장군의 이런 심리는 남북전쟁 중반에도 관찰됐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미시시피강을 방어하는 빅스버그라는 군사적 요충지가 북군의 공격을 받아서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어쩐 일인지 로버트 리 장군은 버지니아에 주둔하고 있는 자신의 군대를 빅스버그로 보내지 않았다. 전쟁물자를 미시시피강을 통해 운반할 수 있는 쪽이 전쟁에서 엄청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기에, 빅스버그 전투가 남북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라고 군사 전문가들이 평한다. 그런데도 아무리 수도 리치먼드의 방어가 중요하다지만 버지니아의 군대를 빅스버그로 보내지 않았던 리 장군의 실수는 결국 빅스버그가 버지니아에 속한 지역이 아니라는 고향 사랑의 편협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전쟁의 시작 시기를 2년만 늦추고 남군 총사령관을 가장 남쪽에 위치한 플로리다나 미시시피 출신으로 임명했다면, 지금의 미국은 두 개의 나라로 쪼개져 있었을지 모른다.
실전에서 뛰어난 두뇌와 강력한 힘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마음인 경우가 많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3호 (2025.11.05~11.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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