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납치했는데, 얼굴을 모른다... 자파르 파나히가 트라우마를 대하는 방식
[김성호 평론가]
영화계 최고 영예라고까지 불리는 칸영화제 올해 황금종려상은 이란 출신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 차지가 됐다. 이달 개봉해 한국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이 영화는 한국에선 만나기 쉽지 않은 이란 출신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또한 유효한 지점을 점하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스가르 파라디, 마지드 마지디 등 한국에서도 인정받는 이란 출신 감독이 앞서 몇 쯤 자리한 가운데, 베를린과 베니스에 이어 칸 최고상까지 석권한 자파르 파나히의 매력이 무언지 알아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다.
1979년 이란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종교 중심적 혁명이 성공하며 오늘에 이른 이란이다. 무너진 팔레비 왕조의 개혁정책을 두고서 많은 해석이 엇갈리는데, 성급한 근대화가 이란 현실에 맞지 않았단 주장과 근대화에 따른 자연스런 분열이 있었을 뿐이란 의견이 나뉘는 것이다. 어찌됐든 서구화와 탈종교화 흐름에 저항한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집권 뒤 이란은 종교경찰이 부활해 불경한 이를 단속하고 여성은 히잡으로 머리를 가려야만 외출이 허용되는 지난 시대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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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저 사고였을 뿐 스틸컷 |
| ⓒ 그린나래미디어 |
예술은 독재와 폭압, 거짓과 부조리에 저항한다. 예술이 인간 본연의 표현으로, 본래적으로 자유와 진실을 따르는 성질을 지닌 까닭이겠다.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가 그와 같아서 이란 사회의 현실을 묘사하고 고발하는 작품으로 당국의 심경을 거스른 게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2000년 작 <써클>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 스승격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이어 이란 영화계에 또 한 명의 거장이 나왔단 기대를 받은 그다. 이란의 자랑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작품에 불편을 느낀 이란 당국이 지난 2010년 20년간 영화 제작을 금하는 강경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혹시 몰라 나라 바깥에서 영화를 찍을까 걱정하여 해외출국 금지 조치까지 내린 건 웃픈 사연이라 해도 좋겠다.
물론 거기서 그쳤다면 오늘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다. 자파르 파나히는 정부의 감시를 피해 몰래 영화를 제작했고, 5년 뒤인 2015년 <택시>로 베를린영화제에서도 황금곰상을 얻어냈다. 제게 닥친 상황을 재료로 삼아 픽션과 다큐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든 자파르 파나히는 탄압에 저항하는 전사적 감독의 상징으로서 유럽 사회에 제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정부에 의한 구금과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 결코 편치 않았을 사정에도 자파르 파나히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히잡 시위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노 베어스>를 완성해 화제가 됐던 그가 출옥 뒤 완성한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하니, 그는 그대로 국가폭력에의 저항이 거둔 예술적 성취라 해도 좋을 것이었다. 물론 일각에선 자파르 파나히가 저항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해 고평가를 받는단 해석도 없지는 않다. 다른 수상작, 또 이란 전대의 거장들과 비교하여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관련 기사 : 20년간 영화 촬영 금지, 탄압받는 거장의 역작)
그럼에도 오늘 이란의 환경에서 그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떠올리자면, 또 그에 따른 후폭풍을 감당하는 용기를 생각하면 <그저 사고였을 뿐>은 영화 바깥에서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 색다른 작품으로 읽히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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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저 사고였을 뿐 스틸컷 |
| ⓒ 그린나래미디어 |
영화는 운전자인 사내를 납치한 이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는 바히드(바히드 모바세리 분)란 이름의 사내다. 과거 시리아에서 살던 그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고문을 당한 뒤 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히드가 사내를 납치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가 저를 고문했던 에크발(에브라힘 아지지 분)이라 확신한 때문이다. 바히드는 고문당하는 내내 눈이 가려져 있었으나 삐걱거리던 의족소리만큼은 선명히 기억한다. 그 흔치 않은 소리를 에크발에게 들은 것이다.
그 길로 에크발을 묻어버리려던 바히드지만, 상황은 예기치 않게 돌아간다. 분명히 에크발인 이 자가 저는 절대 그가 아니라고 억울해 하는 때문이다. 바히드로선 고민이 될 밖에. 혹시라도 괜한 사람을 죽이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바히드가 저와 함께 고초를 겪었던 옛 동료들을 찾아 함께 일을 도모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사진작가 시바(마리암 아프샤리 분), 결혼 전날 사진촬영 중이던 신부 골로흐(하디스 아크바텐 분), 우연히 휘말린 예비 신랑(마지드 파나히 분), 감정이 앞서는 하미드(모하메드 알리 엘리아스메르 분)가 바로 그들이다. 하나같이 지난 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에크발을 잡아죽이려 들지만, 그들 중 눈앞의 묶인 사내가 에크발이란 증거를 가진 이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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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저 사고였을 뿐 스틸컷 |
| ⓒ 그린나래미디어 |
해방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이야말로 <그저 사고였을 뿐>이 천착하는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진짜 에크발을 죽여야만 하고, 또 누구는 에크발이 아닌 어느 누구에게라도 인정이며 사죄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와 달리 복수며 사죄를 원치 않는 이도 있으니, 그야말로 용서와 자유는 저 자신에게 달린 문제임을 아는 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중 무엇이 모두의 답이라고 쉬이 말할 수 없는 것은 삶이란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일인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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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저 사고였을 뿐 포스터 |
| ⓒ 그린나래미디어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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