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도 감탄하는, 베를린의 '가장 못생긴 공원'
베를린의 정치 사회 문화적 풍경을 소개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을 살피며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독일 수도의 어제와 오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말>
[고정희 기자]
지난 이야기("베를린도 세계적인 데가 있다" 기사에 쏟아진 조롱 댓글 https://omn.kr/2fml2)에서 베를린이 스스로 세계급이라 꼽은 일곱 가지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한가지 매우 중요한 것이 빠졌다. '베를린의 녹지'야말로 세계급이다. 외지에서 온 사람에겐 단박 눈에 띄지만, 베를린 시민들은 당연하다 여기는 모양이다. 그리고 녹지가 부족하다고 투덜댄다.
실제로 외국인들에게 왜 베를린이 살기 좋은지 물어보면 풍부하고 아름다운 녹지를 반드시 그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베를린은 유럽의 대도시 중에서 녹지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시 전면적의 45%가 녹지이며 지난 150여 년간 체계적으로 '지켜'왔다. 지켜왔다고 함은 녹지를 조성하기에 앞서 본래 있던 숲을 도시개발로부터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뜻이다.
베를린과 그 주변의 땅은 높낮이가 없이 완전히 평평하다. 빙하기 말기에 형성된 지형으로 수만 년 동안 어마어마한 크기의 빙하에 눌려 있던 곳이다. 빙하가 물러가자 습한 땅이 나타났고 녹은 물이 이리저리 흐르며 그 땅에 수많은 계류와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깊은 숲이 형성되었다. 평지숲 내지는 습지숲이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숲이라면 자동으로 산을 떠올리지만 베를린과 그 주변의 브란덴부르크주는 한때 깊은 습지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람은 살지 못했다. 그러다가 5~6세기에 민족대이동이 시작되며 동쪽에서 살던 슬라브인들이 이 숲속으로 밀려와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뒤이어 게르만족이 슬라브인들을 쫓아내고 숲을 벌채하여 도시를 만들었다. 베를린이 출발한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결과로 인구가 급속하게 팽창하자 외곽으로 도시를 확장해 나갔다. 숲을 점점 더 침범해 갔다는 뜻이다. 도시 외곽의 숲속이나 호숫가에 근사한 빌라를 짓고 사는 귀족들이 늘어갔다. 이때 이미 베를린에는 숲보호연합, 자연보호연합 등이 결성되어 있었다.
급성장하는 산업도시로서 서민과 노동자들의 건강과 휴양도 큰 숙제였다. 1861년 50만 명에서 1910년 200만 명으로 증가한 인구로 인해 식수 공급 역시 시급했다. 숲속 호수들은 수질이 매우 깨끗했으므로 식수원으로 보호해야 했다.
|
|
| ▲ 베를린 도시숲에서 늦가을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
| ⓒ 고정희 |
"시민의 휴양과 식수 보호를 위해 숲을 개발로부터 보호하겠다면, 그 의도를 끝까지 지켜라. 만약에 개발이나 도로 건설 등의 용도로 벌채하는 경우 훼손된 면적만큼 대체지를 조성해라. 영원히 그리해라."
소위 영구숲 계약이 체결되었고 지금까지 유효하다. 서베를린에서 1979년 제정한 삼림법에 수렴되었다가 통일 후 양 베를린에 일괄적으로 효력이 발생했다. 삼림법 제1조에서 베를린 도시숲 전 면적을 '보호림 겸 휴양림'으로 정의했다.
이로써 약 8700만 평의 숲을 지켜냈고 그것이 지금 베를린 녹지체계의 근간이다. 비슷한 시기, 즉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도심의 동서남북에 5만 평에서 20만 평 사이 규모의 시민공원을 조성했다. 1910년 베를린 대도시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녹지계획도 세웠는데 그때 녹지 연계시스템을 도입했고 이후 그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지금 베를린의 녹지 지도와 1910년 녹지체계지도를 비교해 보면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도심의 녹지는 증가했다. 베를린은 녹지가 풍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수준이 매우 높고 도시 전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느 동네에 살거나, 자기 정원이 없더라도 녹색을 배경으로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 빈 땅이 나타나면 이를 개발하려는 시 정부와 공원을 만들려는 시민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
|
| ▲ '템펠호프의 자유' 공원 전경. 텅 비었지만 시민들에겐 자유를 상징하는 곳이다. |
| ⓒ 위키미디어 공용 |
공항이 폐쇄되자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거의 같은 면적인 백만 평 넘는 땅이 베를린 한복판에 남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시유지였으므로 베를린 시민들은 공동으로 당첨된 복권으로 여겼다. 이 커다란 땅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이 시작되었다. 공항에 남겨진 것은 넓은 아스팔트 활주로와 잔디밭이 전부였다.
|
|
| ▲ 템펠호프의 자유 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미리 들어가 커뮤니티 정원을 만든 젊은이들. |
| ⓒ 고정희 |
여러 스포츠 협회에서도 여기저기 텐트를 치고, 펜스를 세우고, 현수막을 걸어 취향에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축구, 배구, 농구, 필드하키 등 여러 운동을 동시에 하더라도 서로 부대낄 것 없는 넓은 공간이었다. 젊은이들은 활주로를 바로 접수해 보드, 서핑, 행글라이더를 연습했다. 자전거를 타고 원 없이 달릴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잔디밭 한쪽에서는 도시농업협회가 결성되어 커뮤니티 정원을 만들었고 예술가들은 환경조형물을 세웠다. 시민들의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들은 조경가들이 제시한 멋진 공원 설계도를 전면 거부했다. "디자인이 식상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공간을 이용하겠다, 여기서는 이것을 하고 저기서는 저것을 하라는 등 용도를 지정할 생각을 말아라, 숨 막힌다, 우린 편안한 공간이 좋다" 같은 의견들이 대두되었다.
|
|
| ▲ 템펠호프 자유 공원에서 연을 날리고 있다. 도심에서 이렇게 긴 연을 날릴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
| ⓒ 고정희 |
결국 '템펠호프 백퍼센트 공원화를 위한 모임'이 만들어졌고 서명운동을 벌여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2014년 1월 탄원에 필요한 서명 2만 개 이상이 모였다. 같은 해 5월 25일 시민 투표에 부쳤다. 그날은 원래 유럽연합 의원을 뽑는 날이었는데 투표소에 전례 없이 많은 유권자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유럽연합 의원 선거보다 템펠호프 공항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투표 후 시장은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템펠호프 구 공항부지는 백퍼센트 공원으로 운영될 것"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연대 스스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승리였다.
이 땅을 '템펠호퍼 펠트'라 부른 시 관계자들은 보존을 위한 법을 제정했다. 제6조 1항에 보면 "템펠호퍼 펠트는 베를린 시민들과 베를린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전면적으로, 영구적으로, 제한 없이, 그리고 무료로 여가 및 휴식 공간으로 제공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템펠호프의 자유' 공원은 베를린의 많은 공원 중에서 가장 못생긴 공원이다. 넓은 잔디밭과 활주로를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유로울 뿐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정보사, 안규백 장관 보고 없이 휴민트 부서 서류 등 이전 시도
- 언론엔 20억 아파트 이야기만... 마흔살 돌배기 아빠의 진짜 고민
- 트럼프, 막판 양보... 이재명의 '버티기 전략' 통했다
- 495억 꿔주고 5개월 뒤 110억 더... 한강버스 떠안은 SH의 한숨
- 근무 기록 없다더니... '연장근무수당' 지급한 런던베이글뮤지엄
- 트럼프 "한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
- "스터디카페 하는 사람 있냐?"는 형의 카톡, 불안이 밀려왔다
- 5년 새 140→221명, 죽음으로 향하는 학생 급증... "특별법 필요"
- '해환이 난치병' 보도 후, 복지부 "만성장부전 포함해 장애 검토"
- 민주당 "한미 관세협상 타결 환영, 경제·안보 두 토끼 다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