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50년 만에... 무죄 구형하고 고개 숙인 검사

선대식 2025. 10. 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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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거점 간첩단 사건 조작 피해자 강을성씨 재심 사건 결심 공판... 법정은 눈물바다

[선대식 기자]

 29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 사건 조작 피해자 강을성씨 재심 결심 공판이 끝난 뒤, 기자의 촬영 요청에 응한 강을성씨 오남매 모습.
ⓒ 선대식
"피고인 강을성에 대해 무죄를 구형하겠습니다."

최지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의 한마디에 간첩 사형수의 5남매는 눈물을 쏟았다. 1976년 9월 억울한 사형 집행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9년 만의 일이었다. 최지윤 검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검찰 쪽 사정으로 재판 진행이 늦어진 점을 두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29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강민호 부장판사) 심리로 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강을성씨 재심 결심 공판이 진행됐다. 재심 대상 판결은 육군본부 군무원으로 있었던 강을성씨에게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간첩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한 1975년 2월 육군본부보통군법회의 사형 판결이다. 이후 1976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그해 9월 사형이 집행됐다.

훗날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도 알려진 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 사건은 조작된 것이다. 1974년 11월 국군방첩사령부 전신인 육군보안사령부가 1965~1974년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한 간첩단을 검거했다고 발표했고 강을성·김태열씨가 사형을 당하는 등 모두 17명이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재심 과정에서 불법구금,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임이 드러났다. ▲간첩단 우두머리로 지목된 진두현씨 ▲사형당한 김태열씨 ▲강을성씨와 공소사실 대부분을 공유하는 박기래씨 등은 최근 재심 무죄가 확정됐다.

강을성씨 재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재심 결정문에서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은 연행일로부터 20일이 지나 발부됐고 20일간 불법구금 상태에 있었다", "박기래, 진두현씨 진술 등이 그 수사에 관여한 보안사 소속 수사관들에 의한 불법 구금, 고문 등의 영향 아래 이뤄져 임의성이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검사의 무죄 구형과 사과... 눈물 쏟은 5남매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당시 사건 기록 증거조사가 진행된 뒤 바로 최지윤 검사가 구형 의견을 낭독했다. 최 검사는 먼저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1항을 읽어 내려갔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최 검사는 "대한민국 헌법은 오직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고, 형사사법 절차는 헌법 정신을 부여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정의는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게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때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피고인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피고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며 마땅히 지켜줘야 할 절차적 진실이 원심에서 지켜지지 아니하였고, 이로 인하여 더 이상 실체적 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판단되므로 피고인 강을성에 대해 무죄를 구형하겠다. 약 50년 동안 흩어진 기록을 모아 확인하는 절차를 인내하며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피고인과 피고인의 유족에게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강을성씨 5남매는 눈물을 쏟았다. 이들의 대리인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검사 구형대로 선고해주시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나라가 이제야 아버지 억울함을 풀어줬다"

발언 기회를 부여받은 강을성씨 맏딸 강진옥(64)씨는 눈물을 참지 못하며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지난달 9월 16일에는 아버지의 50주기 제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지 50년이 흐른 긴 세월인지라 눈물이 이제는 마를 만도 한데 저는 이날이 다가오면 더욱 서러워집니다"라고 말했다.

"저희 아버지는 1974년 10월 2일 저희들의 배웅을 받으시며 출근하신 뒤로, 집으로 다시 오실 때의 모습은 나무상자 속에 담긴 유골이었습니다"면서 "사형 집행 전 아버지 마지막 면회라고 저희 가족을 불렀던 면회 장소에서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아버지의 얼굴을 뵐 수도 없더니, 어느 날 낯선 남자가 불쑥 찾아와서 작은 나무 상자를 주면서 아버지의 유골이라는 황망한 상황에 어머니는 쓰러지셨습니다"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보안사에 끌려가 당하셨던 많은 고문과 협박들 속에서 겪으셔야 했던 공포와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 억울함과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명의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나셔야 했던 애절함이 가슴에 전해질 때면 미어져 숨이 멈춰집니다"라고 전했다. "아버지를 잃은 후 저희 가족들이 살아왔던 일들을 어찌 다 말로, 글로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모진 세월을 증언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한 맺힌 억울한 죽음과 저희 가족 모두의 명예 회복을 위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시작하는데 52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시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저희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재판장님의 현명하신 판단으로 진실을 바로 세워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강씨는 "그래서 아버지의 영전에, 아버지가 그렇게 가난한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던 이 나라가 이제야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고, 이제 평안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강씨가 흐느끼면서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과정에서 판사, 검사, 법원 직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민호 재판장은 재판부 사정으로 이른 시일 안에 선고를 내릴 수 없다면서 유족에게 양해를 구한 뒤, 내년 1월 19일 오전에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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