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설거지 알바'
부산노동권익센터가 주최한 2024년 제2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에서 11편의 작품이 당선됐다. 이 작품들은 공공기관 민간위탁 노동자, 도서관 비정규직, 사회복지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감정·비정규 노동자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고충과 희망을 담고 있다. 이 수기집은 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기자말>
[부산노동권익센터]
30대가 되었다. 작은 스타트업 기업에서 평범하게 사무일을 하면서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본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특별할 건 없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꿈꾸던 삶, 좋아하던 것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홈쇼핑 기획 일을 하면서였다. 상세페이지와 리플렛 등 회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디자인적 고민이 점점 나의 고민이 되었다. '이거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였던 고민이 '하고 싶다'로 바뀌었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서 결국 퇴사를 했고,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모험과 도전의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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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사 후, 첫 발을 내딛다 CHAT GPT가 생성한 이미지 입니다 |
| ⓒ 부산노동권익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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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거지 하는 모습 CHAT GPT로 생성한 일러스트 |
| ⓒ 부산노동권익센터 |
본인이 퇴근 했을 때 이모가 남아서 뭘 하는지 알고 있어야 더 많은 걸 해주고 갈 수 있으니까 기억하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라고 하셨다. 불편했지만 첫 날이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후로 12시가 넘어야만 퇴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 사장님께 물었다.
"저 퇴근 시간이 몇 시예요?"
"돈 더 벌어야 하잖아요. 12시까지 해요."
또 불편했지만 맞는 말 같았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아르바이트 3일 차에 반찬 세팅을 하라고 하셨다. 반찬 세팅을 잘하니까 홀에 나가서 상을 치우라고 했다. 들어오시는 손님들 상도 세팅해주라고 하셨다. 그것도 잘하니까 재료손질을 하라고 했다. 파를 다듬고, 마늘을 까고, 양파를 까고 두부를 썰었다. 밥이 떨어지면 밥도 안쳤다. 홀로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하면서 다른 일까지 돕는 게 버거웠다. 6시간 일했는데 쉬는 시간은 단 5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장님과 사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만큼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주방 이모가 설거지 안 도줘서 힘들지, 네가 지금보다 더 도와주면 도와주실 거야."
그 후로 냉면, 비빔냉면을 올리고 된장찌개와 계란찜과 도시락 전반적인 주방 일까지 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고기를 써는 사장님의 업무 빼고 다 한 것이었다. 나 자신을 갈아 부어서 일 하고 있는 것도 몰랐다. 오랜만에 하는 아르바이트였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참았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급급해 존중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게 당연한 거라고 배우지 않았지만 사회가 마치 현실은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자긴 원래 퇴근 시간이 10시었지만 거의 새벽 1시나 2시에 퇴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게 당연한 게 되었다고 했다. 사장님은 자기를 '알바'라고 부르신다 했다. 고기집에서 된장찌개를 옮기다가 손을 데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1만 원이었다. 일한 만큼 받는 건 아니었다. 서울은 1만 4천 원, 1만 5천 원 주는 곳도 많은데 여긴 힘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시급이 낮았다. 일주일에 평균 5~6시간 반을 일했지만, 주휴수당은 3.5시간으로 계산해줬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이 구해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버텼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이 곳은 손님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이버 평점이 높고 좋은 리뷰들로 가득했다. 그 만큼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다. 손님들이 사장님께 칭찬 한 마디씩 하고 나가실 때마다 소리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를 한 지 4개월이 흘렀다.
"사장님, 저는 앞으로 11시에 퇴근하겠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합의했던 시간이 11시니까요."
피할 수 없다면 내가 바꾸고 싶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대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말 하지 못했던 것을 말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일 주방 이모는 내게 퇴근 시간을 물으셨다.
" 네가 11시에 퇴근 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 한다."
11시에 퇴근하는 날마다 주방 이모는 설거지 싱크대에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시고, 짜증을 내셨다. 한 편으로 이해가 되었다. 손님이 많았지만 주방이모는 단 한 분이었으니 그만큼 할 일이 많으셨을 것이다.
여름이었다. 홀은 에어컨 바람에 시원했고, 주방은 가스 열기와 설거지 뜨거운 물로 열기가 가득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고 더위에 지쳐갔다. 주방보다 밖이 더 시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여름이 다가오면서 손님이 조금 줄었다는거였다. 주방 이모님이 손님 없는 시간에는 잠깐 잠깐 밖에서 땀을 식히고 오라고 했다. 밖에서 쉬고 있을 때 쯤 사장님이 소리쳤다.
" 쉬어도 안에서 쉬어요! 손님 보는데 안 좋게 설거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주방 이모님께 내가 나가있는 것 때문에 큰 문제가 있었냐고 여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화를 내시고 나가셔서 내 얘기를 할 틈도 없었다.
주방은 가스불 때문에 환풍기를 계속 틀어야 했다. 여름이 오고 매장에 찾는 손님들이 홀에서 덥다고 요청을 하니까 사장님께서 주방 환풍기를 끄라고 하셨다. 손님들이 더워하니까 주방도 에어컨 틀어놓고 냉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환풍기를 끄라는 거였다. 가스 냄새에 목이 아프고 어지러웠다. 이모는 갑상선 질환 약을 드시고 있었지만, 사장님께 말씀을 못 하셨다. 사장님이 말하면 늘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왜 우리의 의사를 말하지 못했던 걸까. 사장님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튀는 행동이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가 구해졌고, 얼마 후 이 곳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 곳은 나름 유명한 '맛집'이다. 말 그대로 손님이 왕인 식당이었다. 사장님 머릿 속에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어려워하는 점이나 불편해하는 건 별 일 아니었다. 손님들이 뭘 원하는지, 손님들께서 무엇이 필요한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손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만이 전부인 사업장이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있어 지극히 낮은 자리였다. 많은 일들을 묵묵히 감당해야 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 초라함과 설움, 삶의 치열함이 묻어있는 자리였다. 그곳의 설거지 아르바이트는 하루 이틀하고 다 그만둔다고 들었다. 사람은 일한 만큼 보상이 있다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일한 만큼 주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난 현실 때문에 바보가 되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 중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 나였다. 훈장은 아니지만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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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크대 위 고무장갑 한 짝 식탁 위 고무장갑 한 짝 |
| ⓒ 부산노동권익센터 |
일을 하며 수도 없이 다짐했다.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할 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짧은 아르바이트였지만 그 후로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식당만 가면 설거지를 하고 계시는 이모를 보게 된다. 저 사람도 그냥 존재 자체가 아닌 '설거지 알바'로 불리고 있을까? 목부터 어깨와 허리 골반 다리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시겠지.
이 글은 꿈을 찾아 헤매는 평범한 나의 푸념이자 하소연이다.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었던 나의 독백이다. 이 글은 꼭 세상의 많은 리더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꿈을 찾는 30대에게도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고 말 하고 싶다.
우리는 일 하고 있는 모든 곳에서 리더에게 나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가? 불편함과 개선사항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튀는 사람이 되고, 불편함을 이야기 했더니 더 큰 불편함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불편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자연스러운 것들이 더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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