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전화만 기다리기엔 내 삶도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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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순 기자]
오늘 아침도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어제 통화 못했네. 오늘 저녁에 통화할까?" 미국에서 근무하는 딸과 나는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가 바빠서 전화를 놓칠 때가 생긴다.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고, 글을 쓰다 보면 약속을 깜빡한다. 예전 같으면 딸의 전화를 손꼽아 기다렸을 텐데, 이제는 내가 바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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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 컷 노인들의 연대 |
| ⓒ 영화사 도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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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이상 누군가의 연락을 기대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섰다. |
| ⓒ joshua_hoehne on Unsplash |
처음엔 관계가 멀어지는 것에 서운했지만, 곧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이름없는 시간, 외로움의 무게를 두려워하는 대신 마주보기로 결심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외로움 그 자체가 자유인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 해방의 서막을 열었다. 이제 나는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의무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적 독립을 얻었다.
마침내 나는 기다림을 멈추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연락을 기대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섰다. 새벽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가까운 문화원의 독서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나이 들어 눈이 나빠지는 이유는, 책을 많이 보아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뒤에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라는 책 속의 유머처럼, 기꺼이 뒤로 물러나 조연으로 살되, 그 시간을 능동적으로 채우기로 했다.
외로울 틈이 없다
진정한 자유는 홀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하고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의 관계가 의무와 혈연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즐거움, 배움, 취미로 연결된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 나선다.
나는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앉는다. 새벽의 고요가 좋다. 책을 펼치고 한 줄 한 줄을 천천히 읽는다. 생각이 떠오르면 글을 쓴다. 오늘 본 구름의 모양, 창밖의 새소리, 차를 마시며 스친 잡념들. 그 모든 것이 오롯이 나를 위한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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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수 구운 쿠키. |
| ⓒ rjh07 on Unsplash |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어떻게 늙을 것인가'라는 마음의 근육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능력. 스스로 행복한 삶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도 잘 지내니까 너희는 너희 인생을 살아'라고 말할 수 있는 노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오늘도 딸에게 메시지가 온다. "엄마, 저녁에 통화할까?"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답장한다.
"오늘은 엄마가 바빠서 저녁 늦게 할게."
외로움이라는 거대한 여백 속에서 찾은 이 온전한 여유와 충만함이야말로, 내 노년의 황금기를 빛나게 하는 진정한 자유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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