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 화재 참사 26주기-잃어버린 명예, 그 후] (상) 누구도 답하지 못한 질문들
대통령실, 간담회서 '가해자 분류' 의문 제기
법원, 지난해 사망 보상금 청구 소송 기각
“지혜 학생, 단기 근무자 고용 고교생” 판결
보상금 지급 대상에 '종업원 등 제외' 규정
인천시·중구, 유족 보상금 지급 종결 주장
유족들, 최근 보상 조례 개정 촉구 기자회견
“'화재 사고에 책임 있는 종업원' 구분돼야”
“왜 원통한 죽음 당해야 하나” 유족 응어리

'잃어버린 명예' 줄거리<인천일보 2024년 10월21·24·28·31일자 12면>
1999년 10월 마지막 주말 오후, 인천 중구 인현동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났다. 화재 신고 접수 이후 13분 만에 진화됐지만⑴, 사상자는 137명에 달했다. 화재로 숨진 57명 가운데, 56명은 청소년이었다. 무허가 공간에서 비상구는 가로막혔다. 친구에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러 간다"고 했던 열일곱 살 지혜도 그곳에 있었다. '종업원'이라는 낙인으로 지혜는 희생자 범위에서 제외됐다. '보류' 결정을 내렸던 보상심의위원회는 재개되지 않았다. 25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지혜 엄마' 김영순(69)은 중구와 인천시, 대한민국을 상대로 '재해 사망 보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현민 아빠' 이재원(73) 유가족협의회장은 인현동 화재 참사 관련 문서와 기록을 찾는 데 몰두했다. 명예 훼손, 책임 회피와의 싸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참사 당시 자료들은 지혜가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단서였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기각' 판결을 내렸다. 유가족들은 항소심을 준비하며 25주기를 맞았다.

"희생자로도 인정이 안 된 건가요?"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과 마주 앉은 대통령실 관계자가 질문했다. 지난 9월12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사회적 참사 유가족 대표 간담회 자리였다.
이재원 유가족협의회장은 자필로 쓴 건의문에 '무허가 영업 및 행정청의 대책 부재'라고 적었다. 그리고 첫 번째 현안으로 '아르바이트생(종업원)으로 분류돼 보상에서 제외'를 올렸다. 지혜를 둘러싼 '재해 사망 보상금 청구' 소송은 항소심을 앞두고 있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기조는 바뀌는 분위기였다. '사회적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⑵ 이재명 대통령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 2주기를 맞은 7월15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실수하지 않는 것이 의무임에도 그 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참사를 당했다"며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반사회적 언행들이 많다. 이에 대해선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회의 이튿날 청와대 영빈관에선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를 주제로 이 대통령이 주재한 사회적 참사 간담회도 열렸다. 참석 대상은 세월호와 이태원, 오송 지하차도, 무안 여객기 참사 유가족이었다. 청와대에 초청받지 못했던 참사 유가족을 대상으로 대통령실은 릴레이 형태로 경청 간담회를 이어갔다. 인현동 화재 참사도 그중 하나였다.
"아르바이트, 종업원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가해자로 분류됐다는 거예요?"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과 만난 전성환 경청통합수석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맞은편에 앉은 김영순은 딸 지혜를 떠올렸다. 말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사실'의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앞선 법리에 따라 망인은 인현동 화재 사고 가해자의 종업원이었던 사실이 추인된다."
지난해 7월23일 인천지법은 중구와 인천시, 대한민국을 상대로 '지혜 엄마' 영순이 제기한 재해 사망 보상금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2003년 패소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당시 판결문에는 "시간제로 수당을 받는 단시간 근로자로 처음 고용돼 근무하던 고등학생"이라는 문장이 기초 사실로 담겼다. 21년이 지나서도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종업원 여부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 지었다. 2000년 1월 제정된 '인천시 중구 인현동 화재 사고 관련 보상 조례'는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실화자와 가해자이거나 그 종업원과 건물주 및 공무 수행 중인 자는 제외한다"고 규정했다. 보상 조례대로라면, 그리고 재판부가 판단한 기초 사실대로라면 지혜는 '가해자'였다.
"아니, 근데 아무리 봐도 이상해요. 지혜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춘효 아빠' 김폰삼(68) 유가족협의회 총무가 재판 서류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지난해 11월29일 그가 운영하는 인천 서구 석남동 유리 가게에 '현민 아빠' 재원이 들렀던 때였다. 인현동 화재 참사 25주기 추모식이 끝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재원은 인천시청에 후속 조치를 물어보러 가는 길이었다.
폰삼의 말에 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애당초 판결문에 적시된 '사실'의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현동 화재 참사가 뉴스 속보로 전해지던 그날 저녁까지도 영순은 지혜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혜 친구들 연락을 받은 뒤에야 응급실로 향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러 갔다는 말들만이 지혜 동선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변을 당했다"는 전언은 참사 직후 안타까운 사연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다. '사실'은 거기까지였다.

▲'보류' 이후 20여년…인천시·중구 "종결"
항소심 일정은 잡히지 않고 있었다. 재해 사망 보상금 청구 소송 1심 판결이 나온 지 1년이 가까워진 7월21일 유가족협의회는 부평구의회에서 회의를 가졌다. 인현동 화재 참사를 주제로 4·16재단이 펴내는 '생명 안전 피해자 백서' 연구진과 인권 단체 활동가도 동석했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이 연락을 돌렸고, '인현동1999'라는 단체를 이끌며 유가족협의회를 지원해온 정예지 부평구의원이 공간을 마련했다.
"행정 소송으로 제기해야 하는 사건을 민사 소송으로 잘못 제기했다는 법원 통보가 왔어요."
화두는 소송 대응이었다. 재원은 항소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첫 변론 기일은 '추후 지정'으로 미뤄진 상태였다. 일단 변호사부터 선임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그때까지 소송은 변호사 없이 유가족들이 법무사를 통해 서류를 제출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다음 과제로 제시된 건 '인천시 중구 인현동 화재 사고 관련 보상 조례' 개정이었다.
인현동 화재 참사 이듬해인 2000년 1월15일 제정된 보상 조례는 "실화자와 가해자이거나 그 종업원과 건물주 및 공무 수행 중인 자"는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했다.
"추후 방화 가담 여부 및 종업원 여부에 관한 법적 증빙 서류 확보 후 보상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⑶
조례가 제정되고 한 달여 뒤 중구 보상심의위원회는 "종업원 및 방화 가담자에 대해 보상금 지급을 보류한다"고 의결했다. '보류' 대상에는 지혜도 포함됐다. "방화 가담"과 "종업원 여부에 관한 법적 증빙"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은 거기까지였고, 보상심의위원회는 '보류' 판단을 내린 채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중구는 보상심의위원회 심의에 따라 2000년 2월23일까지 사망자 유족에게 보상금을 이미 지급해 종결 처리했는데, 원고가 이로부터 만 24년이 다 되는…이 사건 소를 제기한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억지 주장에 불과합니다."⑷
재해 사망 보상금 청구 소송 1심 과정에서 피고 인천시 소송 대리인은 중구 보상심의위원회 심의가 '종결됐다'는 서면을 인천지법에 제출했다. 또 다른 피고인 중구 역시 같은 달 소송 대리인을 통해 "보상금을 모두 지급해 종결 처리했다"며 "원고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제출 서면에서 밝혔다. '사실'은 온데간데없었다.

▲"똑같은 사고를 당한 아이인데"
"화재에 책임이 있거나 탈출을 막았다거나 불법 행위를 한 자가 가해자인데, 그 어린 학생이 무슨 책임질 일을 했다는 말입니까?"
지난 8월7일 인천시청 앞 계단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고 이지혜 학생 명예 회복을 위한 보상 조례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알리는 현수막 뒤로 영순과 재원이 나란히 섰다. 영순은 "가슴 깊이 박혀 있던 엄마의 한으로 가득 찬 응어리"를 쏟아냈다.
26년이라는 세월은 '사실'과 '허위 사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은 승산을 따지기 어려운 법정 다툼의 결말만을 기다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보상 조례 개정은 명예 회복을 위한 또 다른 싸움이었다. 지혜를 '가해자'로 낙인찍은 건 보상 조례에서 제외 대상으로 규정한 "종업원", 세 글자가 전부였다.
단 한 줄의 조례 문구, "종업원"을 "화재 사고에 책임이 있는 종업원"으로 고치면 가해와 피해는 다시 구분 지어질 수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정예지 구의원은 "그래야 다시는 어떤 참사도, 어떤 억울한 피해자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제외된 이름'으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있어선 안 된다는 인식은 인현동 화재 참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은 "세월호 선원으로서 여객의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탈출한 사람"으로 피해자 제외 범위를 세분화했다. 참사에 책임이 없는 승선원을 구제하려는 장치다. 어쩌면 너무 늦은 목소리였다.
"똑같은 학생 신분으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날, 똑같은 사고를 당한 아이인데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당해야만 합니까?"
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영순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말문은 쉽사리 이어지지 않았다.
/글·사진 이순민·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참고자료
⑴행정자치부, '인천 화재피해 및 수습상황', 1999년 11월2일.
⑵국무조정실,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 2025년 9월16일.
⑶인천시 중구, '인현동 화재사고 관련 제2차 보상심의위원회' 심의 의결서, 2000년 2월16일.
⑷인천시 소송 대리인, 인천지방법원 제출 서류, 2024년 4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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