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치솟은 한국시리즈 암표…경기장 밖 '겉돌족'은 운다

26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LG트윈스 대 한화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첫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응원가가 울렸다.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수천명의 관객 뒤로 100여명이 각각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른바 ‘겉돌족’이다.
겉돌족이란 표를 구하지 못해 경기장이나 공연장 인근에서 중계나 공연을 즐기는 사람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이날 겉돌족 100여명은 각자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연신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울산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경기장에 온 이찬복(49)씨는 “밤새 표 사이트를 봤는데도 표를 얻지 못했다”며 “현장의 냄새라도 맡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동접속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사재기하는 암표상이 낳은 슬픈 풍경이 경기장 밖 겉돌족이다. 표를 구한 관중이 환호성을 지르면 휴대전화로 중계를 본 겉돌족은 한박자 늦게 환호할 수밖에 없다.
KBO에 따르면 이날 1차전 경기는 1분 만에 매진됐으며 예매 대기자만 최대 20만명에 달했다. 재판매 플랫폼 ‘티켓베이’에선 첫 경기 정가 12만원 좌석이 최대 200만원에 거래됐다. 27일 오후 열린 2차전 예매 역시 접속자 폭주로 사이트 연결조차 안 됐다는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이날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일부 겉돌족은 아예 빔프로젝터를 설치하기도 했다. LG의 26년 차 팬 김경애(44)씨는 잠실야구장 인근 벤치에서 반려견들과 함께 와 30인치 스크린을 설치하고 경기를 관람했다. 이에 경기장 주변을 돌고 있던 또 다른 겉돌족들도 자연스레 합류하며 함께 응원을 시작했다. 김씨는 “예매에 처참하게 실패해 분위기라도 느끼려고 왔다”며 “안에서 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암표는 절대 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공연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빚어졌다. 지난달 13일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콘서트에선 약 500명의 겉돌족이 몰려들었다. 주최 측이 검은색 가림천으로 공연장 펜스 사이를 막아뒀지만, 이들은 손가락으로 가림천을 벗겨내며 한쪽 눈을 들이밀었다. 주최 측의 제재로 공연장에서 멀리 이동해야 했지만, 이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확대해가며 가수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예매에 실패한 일본인 팬 A씨(28)는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근처를 맴돌며 겉돌하고 있었다. A씨는 “현장 소리라도 듣기 위해 전날 도쿄에서 왔다”며 “정직하게 표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호소했다.

겉돌족이 나오게 된 배경인 암표 부정판매는 매해 늘고 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산업과와 한국프로스포츠협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집계된 한국 프로스포츠 온라인 암표 의심 사례는 총 25만9334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6237건) 대비 4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의심 사례가 아닌 실제 암표로 신고된 사례는 7만7435건으로 집계됐다.
스포츠 경기 외 공연의 경우에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민형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암표 신고 건수가 지난 2023년부터 지난 8월까지 총 5405건이었다. 한 해 평균 2000건씩 접수됐는 셈이다. NCT위시나 블랙핑크 등 인기 그룹의 공연표의 경우 정가 15만원~20만원대 표가 최대 970만원까지 암표로 거래됐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암표 단속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지난 17일 한화-삼성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경찰은 현장 암표 단속을 진행했지만, 적발 건수는 없었다. 단속에 나선 우진석 대전경찰청 범죄예방질서계장은 “요새 몇백장씩 거래되는 암표는 매크로를 활용해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현장에서 돈다발처럼 암표를 팔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의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해 경기·공연 주최 측에선 입장 시 본인 확인 절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아옮(아이디 옮기기)’이나 ‘팔옮(팔찌 옮기기)’ 등의 꼼수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아옮이란 암표 판매자와 구매자가 ID를 중개업자에게 넘기고, 중개업자가 판매자의 표을 취소한 뒤 재빨리 취소된 표를 낚아채는 방식을 말한다. 팔옮은 현장에서 표 수령할 때 주어지는 본인 인증 팔찌를 암표 구매자에게 건네는 식이다.
문화·스포츠계에선 암표 거래 및 편법이 더는 용인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기연 단국대 법학과 교수(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 법학회 회장)는 “암표 부정 판매와 부정 취득에 대한 단속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정당하고 공정한 표 거래가 이뤄지도록 법·제도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소영‧이영근 기자 oh.s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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