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캄보디아 쇼크 심상찮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5. 10. 2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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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화 우등생? 동남아 전략 이상 없나

‘기회의 땅’으로 불리며 국내 금융권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캄보디아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와 감금, 온라인 스캠 같은 각종 중범죄의 배후로 지목된 현지 범죄 조직 ‘프린스그룹’ 자금이 국내 은행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을 통해 유통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캄보디아는 불과 지난해 우리 금융당국으로부터 ‘해외 점포 현지화 최우수 국가’로 평가받았던 터라 그 충격은 배가되고 있다. 성장 잠재력만 보고 달려온 동남아 진출 전략의 민낯이 드러나며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금융사가 현지 범죄 단체 자금을 유치했다가 비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은행, 범죄와 얼마나 엮였나

프린스그룹과 1970억원 거래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iM뱅크·전북은행 등 캄보디아에 진출한 국내 5개 은행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 1970억4500만원에 달하는 금융 거래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912억원이 여전히 예금 형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국내 여론은 들끓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금융 거래 문제를 넘어선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10월 14일 프린스그룹을 국제 범죄 조직으로 지정하고 제재에 착수하며, 해당 그룹과 거래한 국내 은행들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의 위험에 노출됐다. 은행들은 부랴부랴 지난 10월 15일부로 관련 예치금 912억원을 전액 동결하는 긴급 조치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금융권의 캄보디아 진출은

KB·전북銀 등 성장세 업고 질주

그동안 캄보디아는 국내 금융권에 ‘약속의 땅’으로 통했다. 달러 기반의 안정적 경제, 높은 성장 가능성, 그리고 포화 상태인 내수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금융사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핵심 해외 진출 국가로 각광받았다.

캄보디아에는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iM뱅크 등 시중은행과 전북은행 같은 지방은행이 진출했다. 여기에 기업·농협·수협 등 특수은행까지 총 13개사가 들어가 법인, 지점, 사무소 등 다양한 형태로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다. 성과도 좋다.

금융감독원의 ‘2024년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 경영 현황 및 현지화 지표’에 따르면 평가 대상 41개국 중 캄보디아는 현지 고객, 직원 비율 등을 따지는 ‘현지화 수준’ 평가에서 1+ 등급을 받으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실적 또한 화려했다. KB국민은행의 현지법인 ‘KB프라삭은행’은 올 상반기에만 1117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02%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보였다. 자산 규모 역시 지난달 말 기준 약 8조4500억원으로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 중 압도적인 1위다.

지방은행의 약진도 눈부셨다. JB금융그룹 계열사인 전북은행은 2016년 ‘프놈펜상업은행(PPCB)’을 인수한 이래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했다. 2016년 32억원에 불과했던 순이익은 2024년 386억원으로 10배 이상 뛰어올랐다.

‘현지 밀착’의 역설

수익 창출 방식 ‘독’ 됐다

어떻게 국내 최고 수준의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 시스템을 갖춘 은행들이 국제 범죄 조직의 자금 통로로 활용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현지화 전략’ 자체에 구조적인 허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국내 은행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예금, 대출, 외환, 신용카드 등 은행업 전반을 아우르는 공격적인 영업을 펼친다. 전북은행의 경우, 기업대출 중심이었던 포트폴리오를 주택, 자동차, 중소기업(SME) 대출로 다변화하며 현지인 고객 기반을 넓힌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이런 영업 방식은 높은 수익성을 보장했지만, 동시에 고객에 대한 검증, 즉 ‘고객알기제도(KYC)’에 허점을 드러낼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프린스그룹처럼 현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 집단의 경우, 자금의 출처 검토보다 거액의 예금을 유치하는 데 급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린스그룹과의 거래 내역은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현재 잔액 기준으로는 KB국민은행이 566억5900만원(정기예금 1건), 전북은행은 총 47건의 정기예금을 유치하며 1217억원에 달하는 거래를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150여개 금융기관이 난립해 경쟁이 치열하다”며 “후발 주자였던 일부 국내 은행들이 네트워크 구축과 실적 증대를 위해 다른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현지화’라는 미명 아래 현지법인의 영업 실적에만 매몰된 나머지, 돈의 ‘꼬리표’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국 관계 경색 우려

동남아 전략, 근본적 수정 불가피

이번 사태는 한국 금융권 전체의 동남아 시장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장 캄보디아와의 관계 경색이 우려된다. 외교부 장관이 직접 현지 범죄 연루 한국인 체포와 구출 사실을 발표하고, 동남아 지역 조기경보체계 가동을 언급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응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현지 영업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지에 진출한 한 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한국 금융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거나, 캄보디아 당국의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단기 실적 악화는 물론, 장기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장 잠재력이라는 ‘빛’에 가려져 있던 동남아 시장의 ‘그림자’, 즉 정치·사회적 리스크를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 진출 시 현지법인의 준법 감시와 자금 세탁 방지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운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수익성 확대에만 매몰된 단기 성과주의를 지양하고, 현지 사회와 동반 성장하는 정도 경영이 지속가능한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2호 (2025.10.29~11.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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