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베팅…이호진 경영 복귀·승계 염두에 뒀나
한동안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잠잠했던 태광그룹이 큰손으로 돌아왔다. 주력 사업의 장기 부진을 타개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승부수다. 이면에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경영 복귀와 원활한 승계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사업 다각화로 본업 부진 타개
올 들어 태광그룹은 수천억원대 M&A에 다수 참전했다. 애경산업,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호텔,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거래 가격은 각각 2000억원대, 4000억원대, 6000억원대로 알려졌다. 계획대로 모두 인수할 경우, 태광그룹은 올해 M&A에만 1조2000억원가량을 쏟아붓는 셈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7월 1조5000억원 규모 투자를 공식화한 바 있다.
애경산업 인수전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AK홀딩스는 지난 10월 21일 공시를 통해 태광산업·티투프라이빗에쿼티(PE)·유안타인베스트먼트에 애경산업 보통주 1667만2578주를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애경산업 지분 63%에 해당하는 경영권 거래다. 태광산업이 833만6288주(32%), 티투PE·유안타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833만6290주(32%)씩 나눠 갖는 구조다. 총 거래대금은 4700억원이다. 이날 계약금 235억원을 지급했고, 2026년 2월 19일까지 잔금 4465억원을 납입하면 거래가 마무리된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호텔도 품기 직전이다. 태광그룹 금융 계열사 흥국리츠운용은 지난 8월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호텔 인수를 위해 태광제1호리츠를 설립하고 9월 초 국토교통부에 영업인가를 신청한 상태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거래 가격을 약 2000억원 중반대로 추정한다. 객실당 6억~7억원 수준이다. 이 호텔 인수는 태광그룹의 오랜 숙원 사업으로 알려졌다. 해당 호텔 주변 6개 건물이 모두 태광그룹 계열사가 보유 중이다. 이 건물을 모두 연결하면 태광타운을 꾸릴 수 있고, 향후 부지를 통합한 부동산 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 인수가 중요하다. 태광그룹 금융 계열사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적격 후보자(쇼트리스트)에 포함돼 실사를 진행 중이다. 한화생명과 소수의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경쟁자다. 본입찰은 오는 11월 11일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지분 약 66%가 거래 대상이며, 가격은 6000억원 안팎으로 파악된다. 태광그룹이 이미 보험·증권·자산운용·저축은행 등 금융 전반 라인업을 보유 중이라는 점에서 시너지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태광그룹이 올해 M&A 시장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주력 사업이 장기 부진한 영향이 크다. 그룹 본체인 태광산업은 원자재 가격 불안과 중국의 대규모 증설, 글로벌 경기 둔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최근 3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 기간 누적 적자는 2310억원에 달한다. 올 상반기 또한 약 16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에 태광그룹은 M&A를 통해 고부가가치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추진하며 활로를 모색 중이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애경산업 인수를 통해 뷰티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한 뒤 전후방 산업으로 확장할 것”이라며 “안정적인 수입과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부동산 개발업도 중요한 성장축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호텔 투자는 글로벌 브랜드가 주는 신뢰성과 서울 도심 핵심 입지를 기반으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투자를 시작으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회사의 안정성과 성장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할 계획”이라고 발했다.
IB 업계에서는 태광그룹의 자금력이 충분한 것으로 판단한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 이상 태광그룹이 대형 M&A를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금 여력은 충분하다고 보여진다”며 “SK브로드밴드 지분 매각 잔금이 올 상반기 들어온 점도 M&A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광그룹은 흥국생명·흥국증권·고려저축은행·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인수해 몸집을 키운 회사”라며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서 한화생명과 자금력으로 붙어도 경쟁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EB 발행 여부 촉각
이 같은 태광그룹 행보를 두고 이면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그 중심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다. 지난 2023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며 경영 복귀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이 전 회장은 2012년 2월 배임 혐의 등 사법 리스크와 건강 문제 등으로 태광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11년 421억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3000여만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2019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돼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이 전 회장은 2023년 복권 후 태광산업 비상근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윤석열 정부에서 사면됐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는 이 회장의 경영 복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전 회장이 사면 두 달 만에 김치·와인 계열사 강매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받자,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이끌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사면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6월 태광산업이 발표한 교환사채(EB) 발행으로 현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혔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27일 발행주식 24.4%에 해당하는 자사주 전량을 담보로 3186억원 규모 EB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문제는 담보로 설정한 자사주다. 연초 자사주 처분 계획이 없다고 밝힌 태광산업이 자사주를 담보로 활용해 정부가 요구하는 자사주 소각을 회피했다는 지적이다.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EB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하며 태광산업 손을 들어줬다. EB 발행에 관해 태광산업 관계자는 “향후 이해 관계자 의견과 급변하는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회사와 주주 이익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고민해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태광그룹 일련의 행보가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태광산업의 EB 발행은 담보 자산이 자사주라는 점에서 향후 자녀 지분 이전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애경산업 인수가 단순한 사업 확장뿐 아니라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애경산업 거래가 마무리 되면 최대주주에 오르는 주체가 태광산업이 아닌 티투PE와 유안타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기 때문이다. 태광산업과 함께 애경산업 인수 주체로 이름을 올린 티투PE는 태광산업과 IT 계열사 티시스가 각각 41%, 이 전 회장의 장남 이현준 씨와 장녀 이현나 씨가 각각 9%씩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현준 씨는 티시스 지분도 11.3%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인 지배력은 더 크다.
태광그룹은 그룹 결정이 이 전 회장의 복귀나 승계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올해 그룹 차원에서 결정한 투자는 사업 구조 재편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차원일 뿐”이라며 “승계나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 시점에 대해 현재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며 “건강 호전 상황 등을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2호 (2025.10.29~11.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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