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영화제 홍보대사로 보낸 3개월간의 기록들 [배우 차유진 에세이]

차유진 2025. 10. 2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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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홍보대사 위촉부터 10월 개막식 사회까지... OTT 시대, 영화제의 의미를 생각하다

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글입니다. <기자말>

[차유진 기자]

"차유진 배우님 되시죠?"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의 주인은 명동성당 성바오로 수도회의 조용준 신부님이었다. 이어진 용건은 2025년 제12회 가톨릭영화제 홍보대사 위촉 소식이었다. 왜 나였을까. 혹시 지난 6월에 쓴 '희년을 맞아 엄마와 함께 한 성지순례 데이트' 기사를 보신 걸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뜻밖의 선물처럼 다가온 제안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조용준 신부님은 제1회 때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아오셨다. 가톨릭영화제(CaFF)는 2013년 가톨릭영화인협회 창립 후 2014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국내 영화제다. 종교적 범위를 넘어 인간, 삶, 희망 등 보편적 가치를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가톨릭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았다.
ⓒ 가톨릭영화제
올해는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The Way to Hope)'을 주제로 21개국 50편(장편 16편, 단편 34편)의 국내외 장·단편 영화가 상영되었다(10월 23일(목)부터 26일(일)까지,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은 영화제 개막식 사회, 단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 등이다. 경험이 많지 않아 역대 홍보대사 배우님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신부님의 따뜻한 격려 덕분에 맡은 역할을 책임 있게 해내리라는 다짐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가톨릭영화제는 지난 8월 이른 가을 바람처럼 설렘을 안고 내게 찾아왔다.

단편 경쟁작 15편, 각자의 색으로 빛난 순간들

홍보대사 위촉 후 3주 쯤 지났을까. 9월 중순, 한밤중 카카오톡 단체방 초대 알림이 떴다. 다섯 명의 단편 경쟁 부분 심사위원을 모은 이는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램팀장 손옥경 데레사 수녀님이었다. 705편의 출품작 가운데, 19명의 예심위원 심사를 거쳐 본선 경쟁 후보로 오른 15편의 영화 파일이 전달되었다.

이 중 올해 영화제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세 편과 스텔라상(연기상) 수상자 한 명을 선정해야 한다.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속 하나하나의 맛을 기대하듯, 하루에 한두 편씩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감상하기로 했다. 감동의 여운이 다음 작품에 곧바로 덮이지 않도록.

극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뮤지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선보인 15편의 작품을 지난 9일까지 차례로 감상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배우들의 진심이 만들어낸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단편경쟁부문 <송석주를 찾습니다>(감독 여장천) 스틸컷.
ⓒ 가톨릭영화제
여장천 감독의 <송석주를 찾습니다>는 치매로 흔들리는 전직 형사가 이웃 소녀의 강아지를 찾아주며, 잊었던 삶의 활력과 하루의 소중함을 되찾는 과정이 긴 여운을 남겼다.
정재훈 감독의 <침묵의 사선>은 미니어처 피규어를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전쟁의 참상을 그려내며, 12분의 러닝타임을 혼신의 노력으로 완성한 수작이었다.
 단편경쟁부문 <침묵의 사선>(감독 정재훈)
ⓒ 가톨릭영화제
김수홍, 황완섭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호스피스 완화병동 자원봉사자들의 일상을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 대신 사랑을 건네는 그들의 미소가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환기시켰다.

이 밖에도 수고로운 작업 과정과 섬세한 관점이 담긴 작품들로 풍성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여러 차례 반복해 감상하며 선정작이 바뀐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작품에 깃든 사유과 열정의 작품들을 미리 만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자 축복의 시간이었다.

희망을 품은 영화제 개막식

그렇게 지난 23일 많은 관객이 자리한 가운데 이경숙 조직위원장의 개막 선언으로 제12회 가톨릭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집행위원장 조용준 신부님은 이번 영화제가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마지막으로 열리는 것임을 전하며(오는 29일로 운영 종료), 해마다 희망적인 작품을 찾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럴수록 희망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전했다.
 가톨릭영화제 개막작 <네가 보여>, 감독 브라이어 마치(Briar March)
ⓒ 가톨릭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브라이어 마치 감독의 자전적 단편 <네가 보여>(I See You)는 장애를 가진 딸을 이해하려 애쓰는 엄마의 여정을 따라갔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진정한 행복을 만든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홍보대사로서 맡은 개막식 사회도 관객들의 따뜻한 호응 속에 잘 마무리되며, 4일간의 영화 순례는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심사 회의 전, 극장 내 '씨네라이브러리' 객석에 앉아 공간을 둘러보았다. 이전에 출연했던 영화 <우수>를 비롯해 많은 작품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했던 자리인데 곧 운영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움에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내부 공간 '씨네라이브러리' 객석
ⓒ 차유진
25일, 운명의 심사회의가 시작되었다. 처음 맡아보는 심사 자리라 긴장감과 책임감이 컸지만, 영화의 완성을 위해 쏟는 창작자들의 노고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작은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신중히 이견을 좁혀 나갔다.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뻐하는 수상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 또한 웃음이 번졌다.

CaFF 초이스 장편 관람 그리고 폐막식

CaFF 초이스 장편작을 관람하기 위해 26일 아침부터 명동으로 향했다. 마크 에반스 감독의 <리처드 버튼(Mr. Burton)>은 20세기 최고의 배우로 불린 리처드 버튼이 배우로 성장하기까지, 헌신적으로 그를 지지한 후원자 필립 버튼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룬 작품이다. 단순한 전기 영화의 틀을 넘어, 인간의 성장과 관계의 힘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CaFF초이스장편 <리처드버튼> 감독 마크 에반스(Marc Evance).
ⓒ 가톨릭 영화제
아일랜드 발리가르 여성들이 가정을 떠나 루르드로 순례를 떠나는 타데우스 오설리반 감독의 <미라클 클럽>(The Miracle Club)은 침수 예절을 통해 기적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왜 우리 같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아일린(캐시 베이츠)의 질문처럼, 영화는 기적이란, 내가 당장 바라는 것을 이루기보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깨닫는 과정임을 돌아보게 한다.
저녁이 되자 두근거리는 시상식 분위기 속에서 폐막식이 시작되었다. 대상과 스텔라상(연기상)은 <송석주를 찾습니다>(감독 여장천)에게 돌아갔고,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은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식>(감독 김수홍, 황완섭)이 수상했다. 우수상은 <침묵의 사선>(감독 정재훈), <엑스레이>(감독 박도겸), <네일 플라워>(감독 노언식)에게 영예가 안겨졌다.
 제12회 가톨릭영화제 수상자들 포토타임
ⓒ 가톨릭영화제
관객과 나눈 4일간의 희망 순례

최근 OTT 등 다양한 볼거리가 늘어나면서 극장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영화와 영화제의 존재 이유를 자문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업영화보다, 소박하지만 깊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발굴하며 희소 가치를 지켜가겠다는 조용준 신부님 말씀은 가톨릭영화제의 취지를 한층 선명하게 한다.

관객과 영화가 나눈 희망에 대한 이야기와 감동을 4일간의 순례 흔적에 새기며, 올해의 가톨릭영화제도 아름다운 여정으로 막을 내렸다.

홍보대사로 가톨릭영화제에 참여하며 매일 현장을 체험하고 기록했다. 한 해 한 해 이어온 시간들이 기적에 가깝듯,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영화제였다. 고요하지만 힘 있게 흐르는 원동력은 천주교 정신을 닮아 있었다. 아울러 희망은 결국 한 걸음씩 나아가며 견뎌내는 것임을 성찰하게 되었다.

뜻깊은 배움과 축복의 시간을 선사한 영화제에 감사드리며, 내년 제13회 가톨릭영화제를 마음에 담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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