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다 몸싸움 벌인 어르신들 보며 웃다가 운 까닭
[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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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사람과 고기>의 홍보 사진 폐지 줍는 노인, 좌판에서 채소 파는 노인이 모여서 소고기 뭇국을 끓여먹고 있다. 홀로 살던 노인 셋이 모여서 즐거운 대화도 나누었다. 모처럼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
| ⓒ 영화사 도로시 |
영화를 두 번쯤은 봐야 리뷰를 쓰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어려웠다. 바로 접근성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영화는 상영관이 많지 않다. 검색 끝에 찾은 상영관도 우리 집에서 멀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에서 영화를 보았다.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서야 도착한 곳이다. 인천의 주안역에서 내리고도 큰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상가로 걸어 들어갔다가 지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서 또 사백 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바로 '영화공간 주안'이다. 주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먼 길을 가서 본 영화는 양종현 감독의 <사람과 고기>이다. '사람'과 '고기'라니,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조합해 놓으니 심오한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다. 호기심이 일어났다.
제목만 보고 상상했던 영화와는 달리, 영화 <사람과 고기>는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거나 스토리가 명확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가볍게만은 볼 수도 없다. 코믹한 장면 때문에 보는 동안에는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다 보고 나면 몇 가지 장면이 마음속에 남아 슬픈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남성 노인 두 명, 여성 노인 한 명이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 등장하는 이들도 그렇다. 세 명 다 어려운 형편이긴 한데, 둘은 같고 하나는 다르다. 두 명은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폐지를 줍는 남성 노인이다. 여성 노인 한 명은 자신의 생계는 물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손자의 용돈까지 챙기면서 살림을 꾸려간다. 이렇듯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노년에도 드러난다. 여성의 '육아'는 남성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두 남성 노인이 폐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몸싸움까지 벌어진다. 그곳이 하필이면 여성 노인이 채소를 파는 좌판 앞이다. 커피 한 잔보다는 밥을 먹고 싶었던 노인. 셋이서 함께 오랜만에 소고기 뭇국을 먹으며 잊었던 웃음을 웃는다. 고기는 역시 불에 구워야 제맛이라며 외식을 하자는 제안에 따라 고깃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외로운 노년에 친구와 약속이 생겼다. 문제는 돈이 없는 것. 그럼에도 맛있게 고기를 먹고 음식값은 내지 않고 음식점을 도망쳐 나온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당연히 두려워하고 어두워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들에게 생기가 돈다. 그래도 경찰관이 눈에 보이면 움츠려든다.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일탈은 분명 범죄임에도 관객도 유쾌하다. 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이게 영화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분명히 음식값이 없으면서도 맛있게 먹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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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사람과 고기>의 홍보 사진 가난한 세 노인이 음식점에서 즐겁게 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무전취식 중이다. |
| ⓒ 영화사 도로시 |
"살아 있어. 살아 있어. 나만 그래?"
"나도 그래. 죽어라고 뛰니까 젊어진 것 같다."
"인생을 쭈욱 돌이켜 봤는데, 형님이랑 여사님이랑 고기 먹으러 다닐 때가 제일 좋았어."
"늙었으니까 세상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그대로 죽으라고?"
또 한 장면은 남성 노인이 옛 친구 연락을 받고 찾아간다. 허름한 단칸방에 옛 친구가 누워 있다. 방문객이 들어갔는데, 여전히 누워 있다. 병명이 뭐냐고 물으니, 굳이 말하자면 영양실조이려나,라고 한다. 정황상 극단적 선택인 것 같다. 오늘 느낌에 '갈 것' 같아서 장례비를 준비해 놓고, 친구에게 자신의 장례를 부탁하려고 한 것이다. 연락할 가족이 없으니,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부른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굶어 죽는 것이 좋은 이유를 말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굶어서 죽는 것이 아프지도 않고 힘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장례비를 마련해 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친구에게 찾아간 사람이 말한다.
"자식, 너 좀 멋지다. 오늘내일 안 죽고 계속 살아 있으면 나도 기다려야 되는 거냐?"
슬픈 현실에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도 인생의 여러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딱 하나 공평한 것이 있다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사는 것은 불공평해도 죽는 것은 공평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답게 죽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는 것. 먹을 것이 지천인 풍요의 시대에 굵어서 죽겠다는 슬픈 노인의 처지를 생각한다. 이 영화, 상영관을 대폭 늘려서 많은 이가 쉽게 찾아가 관람했으면 좋겠다. 젊음과 늙음. 나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문장이 있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이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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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사람과 고기>의 광고지 양종현 감독의 영화다. 박근형, 장용, 예수정 배우가 출연한다. 2025년 10월 7일 개봉. 현재 상영중이다. |
| ⓒ 영화사 도로시 |
-감독:양종현
-제작:영화사 도로시
-배급:트리플픽쳐스
개봉일:2025. 10. 7.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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