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진솔 "역사 쓰고싶어 시작한 말러 프로젝트, 이제는 사명"

박병희 2025. 10. 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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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가본 길을 가기보다는 볼품없게 시작하더라도 새로운 역사를 써보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 출발이었던 것 같다."

진솔 지휘자가 2017년 야심 차게 시작한 말러 프로젝트가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서른 살이 되던 해, 미완성으로 남은 10번을 포함해 말러 교향곡 열 곡 전부를 연주하겠다며 야심 찬 도전에 나섰다. 코로나19 등의 고비를 넘겨 내년이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0년째가 된다.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말러 4번 교향곡 연주를 마치면 2번 '부활'과 8번 '천인'만을 남겨둔다.

진솔 지휘자는 지난 24일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명처럼 느끼고 있어 프로젝트를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또 음악가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진솔은 "스스로 약속한 것이고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마무리하는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누가 알아주든 상관없이 이어가겠다고 생각한 마음속 사명"이라고 말했다. 또 "말러가 고뇌에 가득 찬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 자신이 철학적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음악가로서 내면적·외면적 성장을 해온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휘자 진솔이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러 교향곡 4번 연주회와 말러 교향곡 3번 음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말러는 평생 교향곡에 집중했다. 20대 후반이던 1887~1888년에 교향곡 1번을 작곡했고 교향곡 10번을 작곡하던 중 1911년 사망했다. 평생 말러의 고심이 담긴 만큼 그의 교향곡은 연주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진솔은 "기술적으로도 어려운데 말러가 악보에 쓴 난해한 지시어도 매우 많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가야 하는데 빨라지지 마', '멈추는 듯한데 느려지지 마'라는 식의 지시어를 독일어로 많이 써놓았다"며 "어쩌라는 것인지 지시 자체도 헷갈리는 부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편성도 말러 교향곡 연주가 까다로운 이유다. 남은 2번과 8번의 경우 두 곡 모두 연주 시간이 80~90분에 달하며 지휘자의 성향에 따라 90분을 넘기도 한다. 합창단도 있어야 한다. 8번 교향곡에 '천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1910년 초연 당시 합창단을 포함해 1000명이 넘는 연주자가 동원됐기 때문이다. 26일 연주할 4번 교향곡은 그나마 부담이 덜한 편이다.

진솔은 "보통의 말러 교향곡은 100명에서 500명 정도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4번은 연주 시간이 50~60분 정도에 연주자 인원도 80~95명"이라고 설명했다.

연주 시간이 90분에 달하는 2번과 8번의 경우 보통 해당 곡 한 곡만 연주된다. 4번은 연주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한 곡이 더 필요하다. 진솔의 '죽음과 소녀'를 연주할 예정이다. 죽음과 소녀는 원래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 곡인데 말러가 이를 관현악으로 편곡한 작품이 있다.

진솔은 "죽음과 소녀는 소녀가 죽고, 죽음이 소녀를 끌어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인데, 말러 교향곡 4번의 4악장이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솔은 말러가 관현악으로 편곡한 죽음과 소녀를 자신이 조금 더 손을 봤다고 했다. "말러가 더블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어서 편곡을 했는데 더블베이스가 쉬는 부분이 많다. 쉬고 있는 더블베이스가 아쉬워서 조금 더 더블베이스를 등장시켰고 말러가 젊은 시절에 편곡해 화성학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지휘자 진솔이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진솔은 지난 24일 말러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첫 음반도 발매했다. 2023년 말러 프로젝트 여섯 번째 공연 때 연주한 말러 교향곡 3번 실황 음반이다. 당시 연주가 90분을 넘어 CD 두 장에 나눠 담았다. 진솔은 말러 교향곡의 경우 대규모 편성이 필요하다 보니 스튜디오 녹음보다 실황 음반이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에는 모차르트 레퀴엠 음반도 발매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레퀴엠 시리즈를 시작했다. 모차르트 레퀴엠에 이어 향후 포레, 베르디의 레퀴엠 연주를 이어갈 예정이라며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레퀴엠이 죽음을 추모하는 미사곡인데, 그런 점에서 위로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위로는 말러가 교향곡을 작곡한 의도와 통하는 면도 있다. 진솔은 "말러는 세상이 연결돼 있고 교향곡은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남겼다"며 평소 자신이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이 생각보다 세대 간 또는 성별 간 나라 간 다양한 갈등을 겪고 있어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며 "나의 아픔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메시지를 예술가가 전달할 수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레퀴엠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진솔은 아홉 번째 말러 프로젝트 연주는 내년 4월에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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