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도입 반대하는 대법원이 숨기려는 진실

정연주 2025. 10. 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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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4심제 되는 것도 대법원이 최고법원임을 부정하는 것도 아냐 ... 위헌 여부만 판단해 국민 권리 구제

[정연주 기자]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펄럭이는 깃발.
ⓒ 권우성
재판소원이 사법개혁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소원은 헌법소원의 한 유형이다. 헌법소원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당사자인 국민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기본권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에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모두 포함된다. 재판소원은 이들 국가작용 중 사법작용, 즉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제기하는 헌법소원이다.

그런데 헌법소원에 대한 기본적 규정인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국가작용 중 유독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있다. 재판소원 도입은 헌법재판소법상 금지되어 온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법개정을 통해 허용하자는 것이다.

사실 과거부터 필자를 포함해 학계에서 재판소원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정치권에서도 얼마전 민주당을 중심으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사유에 '법원의 재판'을 추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개정안의 내용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이었다. 그 후 재판소원 도입 움직임이 주춤하다가 최근 민주당 김기표 의원의 개별 발의를 시발점으로 다시 당 차원에서 탄력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개정안은 대법원의 확정된 재판이 재판소원의 대상이고, 재판 확정 후 30일 이내에 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헌재가 인용할 경우 사건은 해당 법원에 돌아가 재심리를 받는다. 또한 재판소원의 남용을 우려해 헌재가 부적합 판단을 내리면, 지정 재판부가 각하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도입 논의는 재판소원이 4심에 해당되고, 최고법원을 대법원으로 규정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등의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사법부의 강력한 반대 의견에 부딪히고 있다. 법원행정처장은 과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재판소원제도를 언급하며 "현행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헌법 규정에 반하고, 이는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반면 헌재는 "재판소원이 4심제라는 비판은 잘못됐다"는 공식 의견을 내놨다. 헌재는 23일 보도자료를 내어 "재판소원 도입 논의와 관련하여, 이를 법원의 심급을 연장하는 '4심제'로 표현하는 것은 재판소원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의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는 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는 오랜 기간 학계에서 논의되어 왔으며 국민의 기본권 보장 범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오해 없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안의 본질에 입각하여 심도 있고 건전한 논의와 공론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언론의 정확한 용어 사용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향후 재판소원의 도입 문제로 대법원과 헌재 간의 첨예한 갈등이 예견된다.

헌법소원제도의 유래와 본질은 재판소원이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본래 헌법소원제도는 공권력 작용 중에서도 재판작용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헌법소원제도의 모국인 독일이 그렇다. 독일이 과거에는 없었던 헌법소원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은 1951년 연방헌법재판소법 제정 이후이다.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이 영미법계 국가에는 존재하지 않는 헌법소원제도를 굳이 채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법부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입법부에 대한 통제는 위헌법률심판제도를 통해, 행정부에 대한 통제는 행정소송제도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사법부를 통제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법부를 통제할 방법을 마련하지 않았던 이유는, 본래 사법부는 다른 국가기관의 위헌·위법한 행위를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굳이 사법부를 통제할 별도의 방법을 마련할 당위성과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깨졌다. 즉, 히틀러 치하의 제3제국 시절, 권력 통제와 기본권 보장에 앞장서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독재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고 인권 유린에 앞장서는 만행을 목도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절실해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사법부를 통제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후 서독의 탄생과 더불어 채택된 것이 바로 연방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소원의 주기능은 당연히 법원의 재판에 대한 통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독일의 경우 헌법소원의 대상 중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전체 헌법소원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90%이다. 한마디로 헌법소원의 본령은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하는 재판소원이다.

재판소원 도입의 계기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다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이러한 독일 헌법소원제도, 특히 재판소원의 도입 배경과 본질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의 내란과 사법쿠데타 과정에서 보듯이 그리고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의 사법부의 행태에서 보듯이, 우리 국민 모두는 더 이상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고 따라서 통제의 사각지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재판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받는 재판부가 공정하고 신속한 절차를 진행해야 하고, 그 과정과 내용이 당사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의 사법부 구성원의 행태를 보면 정의와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깨진 것이다.

그동안 사법부는 철저하게 국민이 아닌 권력과 강자, 특히 최근에는 윤석열과 내란 세력에 충성하는 일관성을 보여 왔다. 더 나아가 이들은 직간접적인 내란의 동조나 방조 내지 우호 세력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행태를 일관되게 보여왔다(관련기사: "조희대 대법원장, 계엄 매뉴얼대로 하려 했던 것 아닌가"
https://omn.kr/2frjh).

예컨대 정의 및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조희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법부는 명백히 위헌적인 계엄선포 등 내란 행위와 관련하여 당시 위헌성 지적 등 어떠한 의사 표명도 하지 않았다. 또한 대법원은 지난 5월 초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례적으로 전원합의체에 긴급 회부하고 단 9일 만에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법농단을 야기했다.

아울러 내란 사건 재판부는 70년 넘게 적용해 온 날짜 단위 구속 기간 계산법을 위반해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게만 시간 단위로 바꿔 구속을 취소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밖에도 법원은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정의롭지 못하고 왜곡된 재판을 적지 않게 해왔다.

또한 법원이 그동안 검찰의 무수한 위헌·위법한 행태를 바로 잡지 않았고 부화뇌동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결국 국민의 기본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이로 인한 사법부의 신뢰 상실은 사법부의 자업자득이다.

사실 그동안 상당수의 법관은 지극히 왜곡된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국민에 대한 공복의 역할은커녕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악한 반헌법·반민주적 행태를 초지일관 보여 왔다.

반면 권력과 강자에게는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충견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헌법과 양심을 내팽개치고, 국민의 권익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와 독재 권력에의 충성에 일로매진해 온 것이다. 이제 이러한 악의 고리를 끊고 법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가 됐다. 헌법소원제도가 그 수단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유감스럽게도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는 대법원의 기득권과 배타적 권위의식 때문이다. 즉 만일 재판소원이 인정된다면 실질적으로 대법원이 헌재 밑으로 들어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세간에 일부 알려진 바와 같이 대법관들은 헌법상 동급인 헌법재판관들을 한 수 아래로 본다. 따라서 자신들이 내린 판결이 다시 헌재의 통제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위와 자존심을 훼손하는 참을 수 없는 수치로 보는 것이다.

재판소원 도입으로 4심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
ⓒ 권우성
앞서 언급했듯이 재판소원의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큰 논거는 이로써 4심제가 되는 것이고, 대법원의 위상이 헌재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판소원의 도입은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재판에 대한 헌법적 통제와 국민 기본권의 효율적 보장이라는 헌법 실현의 문제이다.

재판소원의 도입으로 4심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헌법상 동급인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양 기관 상호 간 기능의 차이와 견제와 균형 관계를 실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법률심(법률 판단)과 사실심(사실 판단)이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배타적 권한인 것처럼 헌법심(헌법판단)은 헌재의 배타적 권한이다.

재판소원이 도입된다고 해서 헌재가 대법원 등 법원에서 이루어진 재판에 대하여 또다시 사실판단과 법률 판단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로지 '헌법 판단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재의 헌법 판단에 법원이 기속되듯이 법원의 법률 판단과 사실 판단에 헌재가 기속된다. 그러므로 재판소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헌재는 이미 이루어진 법원의 법률 판단과 사실 판단에 기속된다.

다만 헌재는 헌법심만을 담당하므로 법원이 내린 잘못된 헌법 판단만을 통제하고 파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재판소원을 도입하더라도 헌재가 법원의 사실판단과 법률판단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재의 심판이 제4심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또 사실심과 법률심에 대하여는 여전히 대법원이 최종심이 되는 것이다.

즉, 사실심과 법률심을 담당하지 않는 헌재가 헌법심의 초심이자 종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학설과 판례도 재판소원이 4심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의 모든 재판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헌법적 해석과 적용을 그르쳐 위헌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일부의 재판만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한다고 해서 대법원이 헌재 밑으로 들어간다든가, 4심제를 인정하는 것이라든가, 법원의 모든 재판이 헌법소원의 심판이 된다든가, 재판소원 허용이 사건 폭주로 이어져 헌재의 기능이 마비된다든가 하는 모든 우려는 헌법소원제도의 유래와 기능 및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헌법소원제도가 이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독일의 이론과 실제에도 반한다.

다만 재판소원을 허용하게 되면 과거보다는 헌재의 사건이 다소 늘어나기 때문에 그에 비례해 헌재 재판관의 소폭 증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재판관 증원은 헌법 개정 사항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는 2개 부(Senat)로 구성되어 있고, 재판관 수는 각각 8명씩 총 16명이다.

재판소원 도입은 최고법원을 대법원으로 규정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 이정민
한편 최근의 국정감사에서 법원장들은 재판소원 도입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101조 제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함으로써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 법원 중 최고법원이라는 뜻이다. 헌법사건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도 최고법원이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법원에 대하여는 제5장에서 규정하고 있고, 헌법사건을 관장하는 헌법재판소에 대하여는 제6장에서 따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을 최고법원이라고 규정한 제101조 제2항은 제5장에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사법제도는 민형사사건 등 일반사건을 담당하는 법원과 정치적 사법작용인 헌법사건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로 이원화되어 있다.

따라서 대법원과 헌재, 대법원장과 헌재 소장은 동급의 병렬적 헌법기관으로서 상호 견제와 균형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없이 대법원 등 일반 법원이 모든 사건을 담당하는 미국과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결국 헌법 제101조 제2항에 따르면 대법원은 사실심과 법률심을 담당하는 법원 중 최고법원이라는 뜻이지, 본질을 달리하는 헌법심을 담당하는 헌재와의 관계에서도 최고법원이라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재판소원의 도입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한 헌법 제101조 제2항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대법원의 법원 내 최고법원의 지위를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모든 사법기관을 통틀어 대법원이 최고 기관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위헌 결정권이나 탄핵심판권 등 헌법 사건을 관할하는 헌재라는 별도의 헌법기관을 설치한 헌법의 규정들과 충돌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차라리 헌재를 폐지하고 그 모든 권한을 대법원이 가져와야 할 것이다.

재판소원의 엄청난 순기능과 헌재의 존재 목적
▲ 헌법재판소 도착하는 윤석열 호송차 2025년 1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 변론기일이 열리는 가운데, 수감중인 서울구치소에서 윤 대통령을 태운 법무부 호송차가 헌법재판소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아 헌재가 헌법이라는 도구를 통해 법원을 통제하게 되면 실로 엄청난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난다. 대법원을 비롯한 모든 법원의 재판 전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헌법에 대한 극도의 경각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위헌적인 또는 국민의 기본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하는 판결이 이루어질 경우, 반드시 헌법소원을 통해 헌재의 헌법적 통제를 받아 파기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모든 법원과 판사들로 하여금 고도의 헌법적 긴장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자신들이 내린 판결에 대한 헌재의 파기는 모든 법관에게 경력과 평판 및 자존심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독일이 그렇다.

따라서 법관 모두 헌법 전문가가 되어 사건마다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헌법적 검토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결국 법원의 전 재판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법원의 재판 대상이 되는 검찰과 수사기관의 수사와 기소 등 전 사법 내지 준사법 과정에서, 헌법과 국민의 기본권이 최고도로 존중되고 보장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야말로 헌법과 기본권이 제대로 실현되는 것으로 국민을 위해 얼마나 바람직한 현상인가.

얼마 전 사법쿠데타에서 보듯이 대법원의 위헌적 판결에 대하여는 대한민국에서 헌법적으로 통제하고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우리와 다른 영미법계의 대표국인 미국의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없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이 실질적으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미국처럼 헌재가 없다면 모르되, 독일 제도를 계수해 최후의 헌법수호기관으로 헌재를 설치한 이상 대법원 등 모든 법원의 재판도 최종적으로는 헌재에 의한 헌법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법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통해 헌법을 수호하라고 굳이 헌법재판소를 설치한 것이 아닌가.

한편 최근 사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법원장들이 모두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하면서 재판소원이 4심에 해당한다는 주장 외에 재판소원 도입으로 인해 권리구제가 지연되고, 경제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논거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법원의 위헌적인 확정판결로 인해 권리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다소 지연되더라도 최종적으로 권리구제를 받는 것이 당사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연된 정의가 정의의 미실현보다 낫다는 것이다. 더욱이 재판소원은 권리를 구제받지 못한 당사자가 절차의 지연을 감수하고 본인이 원해서 제기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논리는 경제적 약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또한 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경제적 약자의 문제는 국선변호인제도의 확대 및 활성화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미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70조가 "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려는 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할 자력이 없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 국선대리인을 선임하여 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국선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다.

재판소원 도입 위한 개정안에 수반된 보완 규정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국회가 조속한 시일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헌법 수호에 한 발 더 다가가길 필자는 간절히 바란다. 간단하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을 삭제하면 된다.

다만 추가로 헌재법 개정안에 '기속력'을 명확히 해 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즉 개정안에 헌재가 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관할법원에 환송할 경우, 법원은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행 헌재법에는 헌법소원 심판의 경우 가처분 규정이 없는데, 이 기회에 가처분에 관한 근거 규정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재판소원이 인용될 경우의 재심과 환송심 등 후속 절차도 법에 명시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무분별한 헌법소원의 남발을 막기 위해 반드시 대법원 등의 확정판결에 대해서만, 그것도 독일처럼 판결의 헌법위반 사건에 대해서만 헌법소원을 제기하도록 엄격한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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