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자 전두환 죄 용납될 수 없는 쟁점
[김삼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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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
| ⓒ 연합뉴스 |
그는 군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만 골라서 주도한 인물이다. 육사생도 시절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데 앞장서고, 그 공으로 박정희의 총애를 받아 군부에서 금기시된 사조직 하나회를 조직하여 군부반란을 일으키고 이어서 5.17 쿠데타로 정권을 도득했다.
뿐만 아니다. 재임시절 파충류적인 식성으로 재산을 긁어모았다. 독일 주간지 〈슈테른〉이 "1995년을 빛낸 국제8대 사기꾼"에 2위, 노태우는 3위로 뽑힐 만큼 나라의 명예에 먹칠했다. 그는 군인으로 입신했으나 군인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 그래서 군의 명예를 훼손시킨 장본인이다. 전방부대를 빼내어 쿠데타에 동원한 처사부터, 5.17 이래 걸핏하면 내세웠던 '국가안보'가 얼마나 허구투성인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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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
| ⓒ 연합뉴스 |
저들은 독재자의 변명의 멍석을 깔아주고 사실왜곡의 양념을 쳐주면서 세력을 유지하고 국민을 억압하였다. 그래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이 나오고, '인간 전두환'으로 신격화시킨 언론사가 급성장하고, 조찬기도회를 열어주고 대형교회가 되었다. 지금도 5공의 잔재(찌꺼기)는 도처에 활개치고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행세한다.
봉건군주시대의 맹자는 "백성 학대한 죄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하고, 조지 산타야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될 것"이라 경고한다. 죽은 자에 대한 관용이 미덕처럼 되고있다. 그래서 독재자들의 죽음에 국장이나 국가장을 치루고 생전의 죄상보다 소소한 미담이 덕목으로 채색된다. 친일청산부터 이승만·박정희·전두환독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역사가 흙탕물이 되고 현대사가 오염되고 있다.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유력 정치인이 나오고, 공적으로는 문제가 많지만 사적으로는 인연이 깊어 조문한다는 정상배들이 적지않다. 전두환의 죽음을 계기로 공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恨)은 풀어주고 원(怨)은 씻어주는 해원상생이 건강한 민주시민의 도덕율이 아닐까. 80년대 한국사회를 온통 연옥으로 만들었던 가학자들의 반성은 없었다.
도산 안창호선생은 포용성이 깊은 독립운동가였다. 하지만 "역사에 대해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가 크다"고 말하였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죽었을 때 프랑스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는 〈르몽드〉에 "프랑코와 같은 독재자가 자기 침대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니"라며 개탄했다. 전씨와 더불어 역사와 겨레에 큰 죄를 지은 '생존 동업자들'은 이 기회에 '죄닦음'으로 속죄의 길을 찾았으면 한다. 그것이 전씨의 생과 사가 남긴 유일한 교훈이 아닐까. (주석 1)
주석
1> 김삼웅, <한겨레>
덧붙이는 글 | [현대사의 논쟁과 쟁점]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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