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시절엔 인간미가 있었는데'...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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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영 기자]
카메라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 평소에도 항상 웃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는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아무도 사진을 찍는데 왜 웃어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카메라 앞에서 웃는 일은 드물었다. 카메라가 발명된 초창기에는 사진을 찍는 건 초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긴장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또 19세만 해도 부유층이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니 권위를 드러내거나 근엄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활짝 웃는 건 필름과 카메라 전문 회사인 코닥이 '사진을 찍는 순간이 곧 행복한 순간'이라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광고한 결과다. 코닥의 의도대로 대중은 사진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하게 됐다.
코닥의 이러한 마케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대원칙의 성공 사례로 남았다. 이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더 단시간에 빈번하게 나타났고 우리는 놀라운 속도로 변화에 적응했다. 마치 세상에 없던 물건과 서비스를 전부터 이용했던 것처럼, 아무런 혼란도 겪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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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싸이월드의 모습. |
| ⓒ 싸이월드 |
첫인상은 낯설었다. 사각의 텅 빈 방에 '미니미'라는 이름의 아바타(원래는 힌두교와 불교 용어로 분신을 뜻하나 지금은 온라인에서 개인을 대신하는 캐릭터를 의미한다. 싸이월드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프리챌이 아바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가 홀로 서 있었다. 미니홈피에 들어간 사진첩, 다이어리, 방명록의 기능은 단순하고 직관적이었다. 특히 싸이월드 서비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촌 맺기'라는 이름의 친구 추가하기 기능이 눈에 띄었다.
며칠 뒤에 저녁마다 모였던 기숙사 내 친구들과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아직 이 서비스를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사용법을 설명했는데 반응은 심드렁했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왜 이걸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이었다.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도, 일기를 써서 공개하는 것도, 심지어 초기에 무료였던 배경 음악을 설정하기도 '왜'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마치 카메라 앞에서도 웃지 않았던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처럼 말이다(그들도 아마 왜 웃어야 하느냐고 되묻지 않았을까?).
그 시절 우리에겐 한 손엔 디카, 다른 한 손엔 MP3가 들려 있었다. 밀레니엄 세대에게 이 두 가지 물건은 최첨단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댔던 수백 장의 사진(도대체 왜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느냐는 어른들의 타박을 귓등으로 흘렸다)은 '내 사진' 폴더에 보관돼 있었고 음악은 MP3만 있으면 어디서든 수시로 들을 수 있었다. 사진과 음악을 수고스럽게 미니홈피로 옮길 이유가 없었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단 하나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다'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대중은 사적인 사진이나 일기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데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생활을 드러내는 건 이상하고 불편한, 약간 비상식적인 일에 속했다. 그 옛날에 치아가 드러나게 웃는 것을 미성숙하고 천박한 행위로 여겼던 것처럼.
그러나 이런 거부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이월드의 인기는 나날이 치솟았다. 2030이 중심인 이용자들은 오프라인의 나와 같으면서도 살짝 다른, 온라인 자아를 연출하는 일에 금방 적응했다. 일종의 가상 화폐인 도토리로 미니미와 미니홈피를 치장하는 아이템과 배경 음악도 사들였다. 2003년에는 싸이월드와 SK커뮤니케이션즈가 합병했고 전성기에는 도토리 수익만 연평균 1천억을 넘었다고 알려졌다.
행동이 변하자, 신기하게도 싸이월드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낮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찍은 사진이 저녁이면 일촌의 미니홈피에 올라가 있고 그 사진 아래 모르는 사람의 댓글을 달리고 누군가는 사진을 퍼갔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나를 표현하고 친구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건 다른 사람의 자아를 엿보는 것이었다.
싸이월드는 이름과 출생 연도만 검색하면 쉽게 미니홈피를 찾을 수 있게 해놓았다. 홈피의 주인이 올려놓은 사진과 글은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된 것들이지만 남의 홈피를 보는 건 묘한 일이었다. 엿본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죄의식이 따르는데 동시에 멈출 수 없게 재미있었다.
재미는 사진, 일기장, 방명록을 엿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연출한 온라인 자아와 오프라인의 자아의 간극을 비교하고 그 사람의 욕망까지 알아차려야 이제 웬만큼 그 사람을 안다는 착각과 함께 만족할 수 있었다. 싸이월드 이전에는 그처럼 타인을 향한 관심이 폭증했던 적이 없었으니 싸이월드는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온라인의 신세계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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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이월드 이미지 |
| ⓒ 연합뉴스 |
투데이 멤버는 보통의 이용자들에 비해 유명하고 인기 많은 일반인이었다. 그 인기를 사업에 활용하거나 홍보의 수단으로 쓰기도 했지만 적어도 인기인 자체가 직업은 아니었다. 이들이 진화해서 오늘날 협찬, 광고, 사인회, 굿즈 출시 같은 연예인들이나 독점하던 활동을 분담하는 인플루언서가 탄생하리라고는 당시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중의 행동 변화를 그저 따르기만 했지만 새삼스럽게 20년 전 일을 돌아보게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외장 하드로 옮기다가 지쳐서 '영상을 이렇게 많이 찍을 일인가?'라고 반문했던 것이다. 지금도 거대 플랫폼은 끊임없이 나를 표현하고 세상에 알리라고 권한다. 그러나 우리가 카메라 앞에서 음식을 먹고 신상품을 리뷰하고 이른바 썰을 풀고 운동하고 일상을 보여주는 건 정말 자기표현의 욕구에서 비롯된 행위일까? 어쩌면 대대적인 마케팅에 의해 표현하도록 훈련된 건 아닐까?
하지만 동기가 어떻든 행동의 변화도 추억이고 언제나처럼 과거는 쉽게 미화된다. 2000년대를 회상할 때 압도적으로 많이 거론되는 사건은 2002년 월드컵이다. 우리나라에서 다시 월드컵이 개최되지 않는 한 2002년 월드컵 개최와 4강 진출은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월드컵과 싸이월드의 탄생, 두 가지 사건은 2000년 초를 낭만화한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잔인한 경쟁 시대의 서막이었다. IMF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계약직 시대가 열렸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지금의 온라인 세상에 비해 과거의 그것이 더 인간적이고 정감 어린 공간이었다고 미화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 시절의 온라인이 인간적이었다기보다 아직 기술이 미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온라인 세상이 지금처럼 자본화되고 고도화될 조짐은 그때도 이미 시작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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