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극약처방’ 토허제, 언제까지 묶을 건가

주정완 2025. 10. 2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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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그야말로 ‘극약처방’이다.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도 남부 12곳을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로 묶은 조치다. 이제 해당 지역에서 아파트를 사고팔려면 시장 또는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살 사람과 팔 사람이 거래에 합의했더라도 세입자가 있으면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전·월세를 낀 아파트는 아예 살 생각도 말고, 팔 생각도 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의 원천 봉쇄 선언’이다.

「 47년 전 박정희 정부가 제도화
토지 아닌 주택 허가제로 변질
효과는 작고 부작용 커질 우려

지난 20일부터 서울 전역과 경기도 남부 12개 지역에 토지거래허가제도가 시행되면서 오피스텔과 빌라 등 비(非)아파트 시장이 상승세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정부가 공식 통계로 사용하는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자. 올해 들어 약 10개월간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포·성동구 아파트값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에 강북·도봉·중랑·금천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0%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행정구역이 서울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25개 구가 모두 같은 규제를 받는다. 정부는 ‘풍선 효과 차단’을 내세우지만, 집값 상승에서 소외된 지역의 집주인들로선 분통이 터질 일이다.

만일 정부가 최근 집값이 급등한 지역만 토허제로 지정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반발이 없진 않았겠지만, 지금처럼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주거 밀집 지역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토허제로 묶은 건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도 없었던 일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원래 토허제는 이런 식으로 정부가 집값을 잡는 데 쓰라고 만든 규제가 전혀 아니다. 토허제란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규모 개발 사업이 예정된 지역에서 땅 투기를 막기 위한 제도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8년 ‘8·8 부동산 대책’에서 도입했으니 어느새 47년이 지났다. 당시 토허제 도입의 주역은 남덕우 경제부총리와 강경식 경제기획원 예산국장(나중에 경제부총리)이었다.

남 전 부총리는 자신의 회고록(『경제개발의 길목에서』)에서 토허제 도입의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강경식 국장 일행은 일본에서 (부동산) 관련 서적과 정책 자료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는데, 정책 자료에는 바로 우리가 고민하던 부동산 투기에 관한 정책도 포함돼 있었다”며 “나는 즉시 이를 참고해 법안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적었다. 그 무렵 일본 정부가 준비하던 부동산 대책을 한국식으로 고쳐 토허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여기엔 남 전 부총리도 외부에 공개하지 못한 은밀한 사정이 있었다. 사실 박정희 정부는 이희일 청와대 경제1수석의 주도로 ‘제2의 토지개혁’을 준비 중이었다는 게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회고(『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다. 남 전 부총리는 뒤늦게 이 말을 전해 듣고 “그러면 큰일 난다”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그는 급하게 해군 함정을 타고 대통령 휴가지(경남 진해 저도)까지 찾아가 토허제를 포함한 부동산 대책을 보고하고 대통령 결재를 받아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잠실ㆍ삼성ㆍ대치ㆍ청담동의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을 해제한 지 34일 만에 강남ㆍ서초ㆍ송파ㆍ용산구를 토허제 구역으로 재지정했다. 뉴스1

우여곡절 끝에 토허제를 도입했지만, 정작 제도 도입의 주역인 강경식 전 부총리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고 평가한 것은 아이러니다. 강 전 부총리는 자신의 회고록(『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토허제) 제도는 마련했지만 실제로 쓸 생각은 없었고 또 써서는 안 되는 제도였다”며 “훗날 실제로 써본 결과 불편할 뿐이지 투기 억제 효과는 별것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토허제는 결코 칼을 뽑지 않는 전가의 보도처럼 써야 했다”며 “필요하면 허가제를 실시한다는 으름장을 놓는 용도로 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고 했다.

이런 토허제를 집값 잡는 데 쓰겠다며 일반 주거 지역에도 지정하기 시작한 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었다. 그는 2020년 4월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을 토허제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때는 주변 개발 사업의 영향으로 부동산 투기가 우려된다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지난 2월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5년 만에 잠삼대청의 토허제를 풀었다가 집값이 급등하면서 혼쭐이 났다. 파문이 커지자 오 시장은 부랴부랴 강남 3구와 용산구를 토허제로 묶었다. 여기까지가 10·15 대책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정부는 이번에 토허제를 대폭 확대하면서 내년 말까지라는 기한을 뒀다. 하지만 그때까지 정부의 의도대로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면 토허제를 계속 연장할 공산이 커 보인다. 어느새 이름은 토허제지만, 실질적으론 ‘주허제’(주택거래허가제)로 변질됐다. 원래 의료에서 극약처방은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초단기적으로만 쓰는 방법이다. 부동산 정책에서도 극약처방이 오래가면 정부가 원하는 집값 안정 효과를 얻기는커녕 부작용만 커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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