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유 있는 SK실트론 인수 작전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5. 10.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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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본능 되살린다

두산그룹이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 인수를 추진하면서 재계 관심이 뜨겁다. 유통업에서 중공업으로 그룹 체질을 바꾼 데 이어 이번엔 반도체를 핵심 사업으로 키우면서 또다시 사업 재편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두산그룹이 SK실트론 인수를 추진하면서 재계 관심이 뜨겁다. 사진은 경기도 분당 두산그룹 사옥. (두산그룹 제공)
두산, SK실트론 인수 추진

매각대금 1조5000억원 안팎 거론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SK실트론 인수를 위해 SK그룹과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연말까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후문이다. 당초 한앤컴퍼니, MBK파트너스 등 주요 사모펀드(PEF)가 SK실트론 인수 경쟁을 벌여왔지만, 몸값을 두고 양측 눈높이가 엇갈리며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그룹이 깜짝 인수 후보로 급부상했다.

인수 대상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 29.4%는 제외됐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웨이퍼 전문 기업이다. 웨이퍼는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 소재 중 하나다. SK실트론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일본 섬코, 신에쓰에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3위를 달린다. 올 초 SK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리밸런싱) 과정에서 매물로 나왔다.

2017년 당시 SK그룹이 LG가 보유한 SK실트론을 인수했는데,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아 알짜 계열사로 분류된다. SK실트론 매출은 2017년 9331억원에서 지난해 2조1268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327억원에서 3155억원으로 치솟았다.

만약 두산그룹이 SK실트론을 품에 안을 경우 전공정부터 후공정까지 아우르는 핵심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으로 급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두산은 소형모듈원전(SMR), 로봇, 인공지능(AI)과 함께 반도체를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왔다.

두산그룹은 앞서 2022년 국내 1위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기업 테스나(현 두산테스나)를 460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반도체 전후방 연계 사업 관련 매물이 나올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두산그룹은 지주사 ㈜두산 내 전자BG사업부와 자회사 두산테스나를 두 축으로 삼아 반도체 사업을 키우는 중이다. ㈜두산의 전자BG사업부에서 반도체 기판용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하고, 두산테스나가 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를 맡는 구조다. 구리를 얇게 편 동박을 여러 장 겹친 CCL은 반도체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고 보호하는 제품이다. 전 세계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기업인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납품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덩달아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올 3분기 누적 기준 ㈜두산 전자BG사업부 매출 전망치는 1조3614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매출(1조72억원)을 한참 앞선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878억원으로 전년 동기(778억원) 대비 5배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두산 입장에선 SK실트론이 생산하는 맞춤형 웨이퍼까지 패키지 형태로 공급하면 뚜렷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SK실트론이 매물로 나올 때부터 두산 신사업전략팀이 나서서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안다”며 “반도체 사업 전망을 밝게 보고 SK실트론 인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인수 부담도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SK실트론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6400억원이다. 통상 대기업 상장사 몸값이 EBITDA의 7~9배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SK실트론 기업가치는 5조원 안팎으로 거론된다. 다만 3조원 안팎의 순차입금을 제외하면 지분(에쿼티) 가치는 2조원으로 떨어진다. 여기에 SK㈜가 보유한 지분(70.6%)만큼 가치를 산정하면 인수 금액은 1조50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두산 입장에서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인수합병(M&A) 매물이란 분석이다. ㈜두산은 올 2분기까지 자회사 두산로보틱스 주식(5500억원)과 두산에너빌리티 주식(3600억원)을 담보로 한 대출, 일반 신용대출(900억원)을 통해 1조원가량 현금을 확보했다. ㈜두산의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하면 1조2385억원(2분기 기준)에 달해 인수대금 마련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은 최근 지주사 지위를 포기하면서 SK실트론 인수를 위한 준비 작업도 마친 상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규제를 벗어나면서 연결 기준 부채비율을 200%로 유지해야 하는 규정과 자회사, 손자회사 지분 보유 제한에서 자유로워졌다.

두산에서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장남인 박상수 수석이 반도체 사업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수석은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투자증권 반도체 애널리스트로 활동해왔다. 2023년 두산그룹에 입사한 후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두산 반도체 승부수 던졌지만

두산테스나 실적 부진은 변수

두산그룹의 반도체 사업 승부수는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두산이 대대적인 사업 재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포목상으로 출발해 유통 등 소비재 기업으로 변신한 데 이어 중공업, 기계 중심의 B2B 기업으로 체질을 바꿨다.

두산그룹 시초는 박승직 창업주가 서울 종로4가에 연 포목점 ‘박승직상점’이다. 1952년 동양맥주(현 오비맥주)를 세워 유통 사업에 나섰다.

그러다 2001년 오비맥주를 네덜란드 투자 기업 홉스에 매각한 이후 한국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대우종합기계(현 HD현대인프라코어),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을 인수해 ‘중후장대그룹’으로 체질을 바꿨다. 2007년에는 미국 건설기계 기업 밥캣(현 두산밥캣)을 인수해 사업 영역을 더 넓혔다.

하지만 변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문재인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 여파로 두산에너빌리티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 두산타워, ㈜두산모트롤BG뿐 아니라 핵심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까지 떠나보내며 자구안에 속도를 냈다. 2022년 2월 채권단으로부터 받은 긴급 운영자금 3조원을 조기 상환하면서, 2020년 3월 이후 23개월 만에 비로소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다.

여세를 몰아 두산그룹은 지난해 사업 재편을 통해 3대 축으로 사업 구조를 바꿨다. 로봇·기계 등 스마트머신(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원자력발전·수소 등 클린에너지(두산에너빌리티·두산퓨얼셀), 반도체·첨단소재(두산테스나) 등이 주축이다. 핵심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전, 신재생에너지 수주가 증가세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 변수다. 건설장비 업체인 두산밥캣 역시 글로벌 건설 경기 흐름에 따라 수주 물량이 급변하는 만큼 안정적인 캐시카우 사업이 절실한 상황. 이 때문에 그룹 사업 구조의 한 축인 반도체 부문을 키우기 위해 SK실트론 인수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두산테스나가 영업적자에 시달리는 점은 변수다. 두산테스나는 지난해 4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지난해 4분기 11억원 적자에 이어 올 1분기 191억원, 2분기에도 2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분기 매출도 75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줄었다.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악화 영향이 크다. 남궁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요 고객사의 어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생산량이 감소한 데다 전방 수요 둔화 영향으로 두산테스나의 차량용 반도체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 입장에선 원전, 건설장비 사업 변동성이 큰 만큼 반도체 사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모습”이라며 “다만 두산테스나가 적자에 시달리는 데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SK실트론을 품에 안을 경우 승자의 저주에 시달릴 수 있다”고 전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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