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수된 김경문의 '믿음 야구', 자신감만 더 떨어진 김서현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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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 숙인 김서현 2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4차전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6회말 한화 김서현이 동점을 허용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 ⓒ 연합뉴스 |
김경문 감독은 대회 내내 극도의 부진을 보였던 이승엽을 끝까지 4번타자로 밀어붙였고, 이승엽은 8회 극적인 결승 투런포를 터뜨리며 역적에서 우승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올시즌 역시 시즌 중반까지 슬럼프에 허덕이던 노시환의 4번타자 기용이 많은 비판을 받았을 때도 김경문 감독은 노시환을 감싸며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결과론이지만, 성공하지 못한 믿음은 '아집'으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좌우되는 단기전일수록, 막연한 믿음보다 냉철하고 과감한 결단이 승부를 가른다. 오히려 잘못된 믿음은 선수에게도 큰 부담과 상처만 남길 수 있다.
김경문 감독의 6회 의문의 투수 교체
10월 2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한화는 4-7로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한화는 6회초까지 4-0으로 앞서며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거의 눈앞에 두는 듯했지만, 6회말과 7회말 김영웅에게 두 번이나 통한의 연속 스리런포를 허용하며 치명적 패배를 당했다.
이날 경기의 분수령이 된 것은, 김경문 감독의 6회 의문의 투수 교체였다. 4선발로 낙점된 루키 정우주가 3.1이닝 3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으로 호투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범수(0.2이닝), 박상원(1이닝)도 분전하며 5회까지 삼성 타선을 무실점으로 잘 틀어막았다. 타선에서는 문현빈이 삼성 에이스 원태인을 상대로 1회 초 1타점 적시 2루타를 때려낸 데 이어 5회 초 스리런포를 작렬하며 4점 차 리드를 안겨줬다.
하지만 6회말 수비와 동시에 2년 차 좌완 투수 황준서를 기용하면서 한화의 경기 흐름은 급격히 꼬이기 시작했다. 황준서는 가을야구 경험이 올해가 처음이었고, 데이터상 좌타자에게 약한 성향이 뚜렷한 투수였다. 통산 피안타율에서 황준서는 우타자 상대로는 .202에 불과했지만, 좌타자에겐 무려 .330으로 부진했다. 또한 정규시즌에도 삼성전에서 3경기 3패 자책점 11.74 피안타율 .394(2홈런 13안타)로 유독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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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준비하는 김경문 18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KBO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시작 전 한화 김경문 감독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김서현은 팀이 4-1로 앞선 6회 말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고 이어진 1사 1·3루 상황에서 김영웅에게 치명적인 동점 3점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여기에 볼 넷 두개까지 추가로 허용하자, 결국 한승혁과 교체되며 초라하게 마운드를 내려오고 말았다.
김서현은 한화가 LG와 치열한 선두싸움을 벌이던 시즌 막바지, 지난 10월 1일 정규시즌 SSG전에서, 9회 3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개의 홈런을 내주고 블론세이브와 역전패를 내주면서 한화의 자력 1위 탈환 희망을 허무하게 날린 바 있다. 또한 지난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팀이 9-6으로 앞선 상황에서 9회 마운드에 올랐으나 0.1이닝 3피안타(1피홈런) 2실점의 부진으로 경기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김범수와 교체됐다. 다행히 1차전은 김범수가 남은 아웃카운트 2개를 실점 없이 잡아내면서 한화가 1점 차 신승을 지켰다.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이 연거푸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지난 3차전에서는 선발요원 문동주를 불펜으로 돌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문동주는 4이닝 무실점으로 1점 차 살얼음 리드를 지켜내고 구원승을 따냈다. 하지만 4차전에서는 문동주를 쓸 수 없는 상태였기에 불펜 총력전이 불가피했다.
한화는 이날 외국인 선발 원투펀치인 폰세와 와이스까지 6회부터 불펜에 대기시켰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중반까지 리드를 유지하면 종반인 8~9회에 폰세나 와이스까지 투입하는 총력전을 고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으로 LG와의 한국시리즈까지 고려하여 마무리 김서현의 자신감을 살려야 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김서현은 최근 연이은 부진으로 구위보다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김서현을 꼭 활용하고 싶었다면 주자가 없는 상황에 등판시키거나, 최소한 장타력이 좋은 김영웅과는 정면승부를 피하고 타격감이 좋지 않던 삼성의 하위타선과 승부하는 차선책도 있었다.
자신감만 더 하락시키는 결과가 된 오판
결과적으로 김경문 감독의 안이한 오판은 자충수가 됐다. 마무리투수를 6회에 올린 것은 김서현의 자존심 회복에 도움도 되지 못했고, 오히려 부담스러운 승부처에 투입했다가 또다시 결정적인 블론세이브를 저지르며 자신감만 더 하락시키는 결과로 돌아왔다.
또한 폰세와 와이스를 중요한 상황에 투입할 생각이었다면 3차전의 문동주처럼 아예 2~3이닝 이상을 맡긴다고 생각하고, 리드를 잡았을 때 일찍 대기시켜야 했다. 김 감독은 6회 동점을 허용했을때도 다시 폰세와 와이스의 투입을 고려할 기회가 있었지만 또다시 망설였다. 결국 7회에는 한승혁마저 김영웅에게 또다시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경기가 넘어가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심지어 경기 후 김 감독이 "5차전에서 세이브 상황이 오면 또다시 김서현을 마무리로 등판시킬 것"이라고 예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팬들은 감독의 명백한 투수교체 타이밍 실패로 4차전을 내줬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김 감독의 고집스런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물론 낙심한 김서현을 격려하기 위한 단순한 립서비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누구보다 극심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김서현의 멘탈을 고려하면, 김 감독의 발언은 오히려 '압박'이 될 수 있다. 또한 이제는 한 번 지면 시즌이 끝나게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팀의 승리를 위한 구상보다는 '감독 개인의 신념'을 앞세우는 듯한 언행이 선수들의 사기에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미지수다.
한화는 1999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이후 한국시리즈 정상과 인연이 없었다. 김경문 감독도 통산 1000승을 넘긴 사령탑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무관이다. 올시즌의 한화가 이대로 한국시리즈도 올라보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면, 김경문 감독의 커리어에도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황준서와 김서현, 두 영건에게도 이날의 쓰라린 기억이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화의 최종승리와 한국시리즈 진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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