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끈 채 사는 현대인…‘호모 브레인오프’를 아시나요 [스페셜리포트]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지유진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jyujin1115@korea.ac.kr), 양유라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diddbfk1@naver.com) 2025. 10. 2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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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지하철. 책가방 멘 학생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숏폼(짧은 영상)이 쉴 새 없이 재생된다. 옆자리 대학생은 챗GPT로 과제를 뚝딱 완성한다. 챗GPT에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던 한 중년은 거래처와 함께 먹을 점심 메뉴까지 추천받는다. 30대 직장인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AI가 고른 ‘오늘의 옷’을 확인한 뒤 결제한다.

이 익숙한 장면은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우리 현대인의 일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기술 발전 덕분에 정보와 선택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작 ‘사유의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중이다. 시시콜콜한 고민부터 머리 아픈 고민까지 AI에게 ‘외주’를 준다. 마치 뇌 스위치를 꺼둔 듯 AI와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답을 그대로 수용하는 인간형, 바야흐로 ‘호모 브레인오프(Homo Brain-off·생각을 끈 인간)’ 시대다.

편리함이 나쁜 건 아니다. 사람은 오래전부터 편리함을 추구해왔다. 가뜩이나 현대인은 바쁘다. 학업, 업무, 가정에서 쏟아지는 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 보니 ‘잠시라도 뇌를 쉬게 하자’는 유혹은 달콤하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스마트폰과 AI 기술이 결합한 초개인화 알고리즘은 단순히 편리한 도구를 넘어 인간 사고 과정을 직접 대체하기 시작했다. 의문을 제기하고, 정보를 찾고, 취합한 정보에 또다시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하며 쌓아온 사유의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각종 플랫폼 기업 역시 브레인오프를 부추긴다.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되는 광고 상품, OTT가 추천하는 ‘오늘의 콘텐츠’, SNS가 띄워주는 맞춤 영상은 모두 기업의 알고리즘이 설계한 선택지다. 사용자(소비자)가 굳이 비교하거나 고민하지 않도록 ‘편리한 답’을 제시한다. 이인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충분히 비교·검토하는 과정이 사라진 것이 브레인오프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레인오프 흐름은 한국 사회 특유의 교육·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오랜 기간 주입식, 정답 중심 교육을 받아온 세대에게 정답을 빠르게 알려주는 AI는 더없이 유익한 도구다. 해석과 과정보다는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생성형 AI 이용 비용까지 저렴해졌다. 사용자가 빠르게 늘면서 ‘나만 쓰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감이 브레인오프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교육은 성적과 대입에만 몰두하면서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메마르게 했다”며 “AI 교육도 기술 사용법만 강조할 뿐 사회적 위험이나 부정적 파급 효과를 따져 묻는 과정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습관이 일상이 되면 우리 뇌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점차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유는 이렇다. 인지과학 관점에서 인간 뇌는 ‘인지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속성을 지녔다.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최소한만 쓰려 한다. 답을 즉시 내주는 도구가 있으면 기꺼이 사고 과정을 생략하려 한다. 스마트폰과 AI는 이런 본능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늘어나면서 깊은 이해와 비판적 성찰은 점점 사라진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추천해주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현대인의 습관이 뇌의 퇴화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알고리즘 기술 발전은 현대인이 고민 없이 인공지능(AI)에 결정을 ‘위탁’하는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취향·사고력·행동력을 잃었다

“AI 쓰면 실제 뇌 기능 저하” 연구도

기술이 인간 ‘생각’을 대체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술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며 발생한 가장 큰 부작용은 역시 인간 고유의 사고력 저하다. 계산기가 보급되며 암산 능력이 퇴화했고 내비게이션 대중화로 공간 인지 능력이 감소한 것처럼, AI는 비판적 사고를 없애는 중이다.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로 영문 이메일을 작성하고, 검색창에 자동 완성 기능이 제시하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은 이제 흔하다. 이용자 언어 감각과 표현력은 점점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이 사고력뿐만 아니라 인간 의지와 행동력마저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메신저 없이는 의사소통 엄두를 못 내고 내비게이션 지도 앱 없이는 가까운 동네도 외출하기 버거워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시도할 생각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인아 교수는 “AI 조언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의존성이 생긴다. 인간은 시행착오 학습 기회를 잃는다”며 “자신감이 줄며 결정 장애가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알고리즘 기술 발전은 사고 대체 현상을 가속화했다. 추천 알고리즘을 탑재한 각종 플랫폼이 일상화되면서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기술에 위탁하게 됐다. 우연한 클릭 몇 번, 터치 몇 번이 나의 취향으로 굳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맞춤형 알고리즘’이 전방위로 확산되며 생긴 부작용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전체 시청 약 80% 추천 알고리즘에서 발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튜브 역시 알고리즘 자동 재생을 통해 이용 시간을 늘린다. 웹툰·웹소설 플랫폼도 비슷하다. 소비자가 직접 고르는 선택이 사라지며 다양한 콘텐츠와 우연한 만남 기회가 차단됐다.

한 영화 제작 관계자는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 콘텐츠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건 OTT와 플랫폼에서 지원하는 추천 알고리즘과 무관하지 않다.”며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했다는 명분 아래 제작사와 투자사마다 ‘콘텐츠 성공 방정식’ 같은 걸 뽑아내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작품만 양산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쇼핑도 비슷하다. 패션·뷰티 플랫폼은 저마다 ‘AI 맞춤형 추천’ 기능을 탑재했다. 커머스와 배달 앱 역시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나 메뉴를 먼저 제안하는 추세로 바뀌는 중이다. 필요에 따라 상품을 검색하는 ‘목적형 쇼핑’에서 알고리즘 추천이나 우연히 노출한 광고 페이지를 통해 구매까지 이어지는 ‘발견형 쇼핑’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각종 SNS 플랫폼이 쇼핑 기능을 도입하며 이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지는 중이다.

챗GPT를 비롯한 AI 챗봇 대중화는 요즘 인간이 뇌를 꺼버리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됐다. 대학생 과제나 직장인 보고서 작성 시 별다른 생각 없이 AI에 이렇게 명령한다. “써줘.” 이 과정에서 글쓰기를 비롯한 비판적 사고 능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MIT 미디어랩 연구팀은 AI 도구를 많이 사용할수록 인간 뇌 기능이 점차 약해진다는 결과를 내놨다. 실험은 대학생 54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진행했다. AI 언어 모델을 사용한 그룹, 검색엔진만 사용한 그룹, 아무런 기술 도구도 사용하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에세이 과제 수행을 주문했다. 연구팀이 각자 뇌 전도를 측정한 결과 ‘아무 도구도 사용하지 않은 그룹’이 가장 활발하고 다양한 뇌 연결성을 보였다. 반대로 AI 사용 그룹은 뇌 연결성이 가장 약했다. 특히 한 학기 동안 AI만 사용한 참가자는 기억력과 창의성은 물론 심지어 과제에 대한 책임감 지표도 유의하게 낮았다.

‘호모 브레인리스’ 저자이자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감마(Gamma)에서 시니어 GTM 전략 매니저인 안광섭 작가는 “AI는 결국 기존 지식을 빠르게 통합해주는 역할을 할 뿐 진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 몫이다. AI에게 ‘알아서 잘해줘’ 같은 모호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인간 희소성이 사라져버린다”며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나타나는 심리적 불편함과 도전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창조 동기이자 인간 역량”이라고 말했다.

[정다운·나건웅 기자 지유진·양유라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0호 (2025.10.15~10.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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