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 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의 냉정함 [소셜 코리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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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1면 기사로 다룬 영국 신문들. 관세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대거 생산기반을 미국으로 이전할 경우 한국내 일자리와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
| ⓒ 셔터스톡 |
한때는 독보적 능력을 과시하는 무기들도 세월이 지나 업그레이드되지 못하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철처럼 삐걱거릴지도 모른다. 현실의 전장에는 더 이상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무기가 갖는 위력은 그 자체의 파괴력보다, 막강한 파괴력이 불러오는 두려움에 있다. 어쩌면 오늘의 미국이 그런 모습일지 모르겠다.
저물어가는 패권국의 겁박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군부 독재와 민주화 운동 시기를 거쳐, 민주 정부가 집권한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논쟁적 질문이다. 한국 정부는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미국을 외교안보 통상 정책의 핵심 축으로 삼아왔다. 미국과의 동맹은 최고의 안보자산으로 간주되었다.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저자세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지해야 하는 가치이자 목표가 되었다. 미국이 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자발적인 순응과 미국으로부터 배제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다.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막강한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오늘의 미국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도 분명해지고 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정치적 메시지를 상징)야말로 미국 스스로 '위대함'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역설적 자기 표현이다. 저물어가는 패권국의 위기감은 다른 나라들을 향한 관세 협박과 투자라는 이름의 갈취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에게 한국은 미국을 이용해 이익을 본 나라로, 한국이 거덜이 나든 말든 그 대가를 돌려받아야 할 나라일 뿐이다. 때로는 압도되고 겁먹으며 그래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던 한국에 시한폭탄이 떨어진 셈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대규모 투자는 그 규모나 방식이 어떠하든, 한국 산업의 미래나 지속가능성을 희생시키는 것을 전제한다. 미국은 최대 소비시장이란 이점을 활용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기업들의 현지 투자를 유치해왔다. 이미 많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다. 한국은 최대 대미 투자국(2023년)이며, 무역협회의 2024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만해도 미국의 50개 주 중 47개 주에 한국 기업이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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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24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 ⓒ AP=연합뉴스 |
또한 기업의 해외 이전과 일자리 감소는 지역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한국의 대미 투자는 공동화되어 가는 국내 산업 기반을 육성하고 지원할 재원 마련도 매우 어렵게 할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관세가 25%는 높고 15%는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15%도 높다. 관세 협상이 타결된다고 해도 또 다른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초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백악관을 찾아 향후 4년간 30조 원 가까운 금액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관세 부과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대대적인 투자 계획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압박이 통했다며 대단한 성과를 거둔 사례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현대차도 결국 관세를 피하지 못했고 트럼프의 관세 압박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최근 현대차는 추가로 5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증액하기로 했다. 미국 이민세관국(ICE)의 대규모 구금사태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다. 게다가 미 행정부가 미국에서 업무를 보려면 고액의 입국비를 내라며 비자 발급 수수료도 대폭 올린 상태다. 대만의 TSMC도 올해. 초 150조 원 규모의 대미투자를 약속했음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끝내 대만에 20%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최근에는 TSMC에 반도체 50%를 미국에서 생산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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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언론이 미 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지난 6월 23일 경기도 동두천시의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군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미국이 주한미군의 주둔경비 부담을 한국에 물리기 시작한 것은 1991년 특별협정을 맺으면서부터다.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온 미군 주둔 경비 직접 지원금(방위비 분담금)은 2019년 1조 원을 돌파했고, 지금은 연간 1조 5천억 원대에 이른다. 토지 사용이나 각종 면세 혜택 등 간접 비용까지 더하면 한국이 미군 주둔에 지원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인 규모이다. 농사짓던 주민들을 쫓아내고, 수십조 원의 비용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한 결과가 평택미군기지의 확장 건설로, 해외 미군기지로서는 가장 호화롭다. 게다가 한국은 연간 7조~9조 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나라다.
중국 바로 앞에 미군기지를 제공하고, 한반도 방어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펼치는 미군을 지원하는 것이 한국 국민이 책임져야 할 방위비일 수는 없다. 실제로 미국이 지불해야 할 안보비용을 한국이 대신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한미동맹을 대중국 봉쇄에 동원하겠다는 계산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도 과거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에 이어 최근 한화오션 미국 자회사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 한가운데 한국이 휘말릴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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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은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
| ⓒ 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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