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줄 알았던 우리 집, 고모 통해 알게 된 은폐된 진실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우연히 고향에 계신 아빠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취한 목소리로 고모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감독은 당혹스럽다. 고모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감독은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 고모는 분명히 실재했으나 지워진 채로 있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고모, '양지영'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침묵을 고수하는 부모를 설득하고,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고모의 생전 삶을 추적하려 애쓴다. 하지만 미스터리는 캐면 캘수록 도망치듯 깊어지기만 한다. 굳이 파헤치는 게 고인을 위해 하등 도움이 될 것 없다는 만류, 뭔가 심연을 건드리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안개 속으로 사라진 고모의 마지막이 겹친다.
왜 감독은 소득 없어 뵈는 추적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가족은 물론 자신까지 괴롭히며 말이다. 그러나 놓을 수 없다. 어느새 고모의 비운의 삶은 본인의 과거로, 가족의 단란한 역사 이면에 감춰진 비밀의 방으로 가는 열쇠이자 지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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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양> 스틸 이미지 |
| ⓒ ㈜영화사 진진 |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이한 집념에 휩싸인 감독은 기어코 고모의 삶을 복원하려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힌다. 지금처럼 한 개인의 일상이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타인에게 개방되는 시절에는 상상조차 힘들지만, 주변의 암묵적 공모로 마치 지우개로 쓱쓱 지운 듯 사라진 지난 세기 무명의 누군가를 발굴하는 과정은 만만할 리 없다. 그러나 감독이 직감하듯 고모의 삶은 어릴 적 자신이 희미하게 감지해 온 어떤 모순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런 결론에 닿자 모든 장애물은 뛰어넘기 위한 대상에 불과해졌다.
전반부는 사적 기억에서 비롯한 에세이 영화 외형과 다르게 마치 미스터리 스릴러, 탐정 추리극 구조다. 1단계는 사라진 고모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다.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누나의 존재를 지우는 데 동의했지만, 기억을 소거할 수 없었던 아빠에게서 발생한 일종의 'BUG' 덕분이다. 양지영(1953-1975)의 존재는 그렇게 튀어나왔다. 주머니 깊숙이 감춰둔 못이 삐죽하게 비집듯. 집요하게 캐묻는 딸에게 아빠는 수십 년 묻어둔 누나에 관해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흐릿하다.
성에 차지 않은 감독은 숨은그림찾기에 나선다. 그러나 여정은 간단치 않다. 구글링이나 인공지능 서비스로는 불가능한, 오로지 지난한 시간과 수고를 요구하는 수작업이다. 고모의 친구와 지인을 수소문하고, 공공기관 문을 두드린다. 일말의 단서를 발견할 때마다 의문은 커져만 가고, 속 시원한 해답은 찾을 길 없다. 어찌 대략적인 고모의 짧은 생애가 완성된다.
또다시 제출되는 도발적 질문, 왜 굳이 비운의 삶을 산, 자신과 단 1초도 같은 시공간에 머문 적 없는 고모를 가족에 복원하려 할까? 알고 보니 대단한 위인이거나, 거대한 사건의 증인 같은 위상도 아닌데, 감독의 자기연민이나 사명감이란 이름의 집착에 불과한 건 아닐까? 영화는 분기점을 경유하며 비로소 그 답변을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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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양> 스틸 이미지 |
| ⓒ ㈜영화사 진진 |
"고모처럼 되지 마라." 아빠는 딸에게 당부한다. 자신의 누나는 가족들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단죄와 함께. 그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침묵의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하나둘 밝혀지는 의외의 사실들에 그 역시 조금씩 틈을 드러낸다. 감독의 입에서 불쑥 나온 질문은 봇물 터지듯 자신의 유년기를 소환하기 시작한다. 고모의 비밀을 좇던 이야기는 점점 가족 3대의 역사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한번 개방된 질문은 꼬리를 물고, 감독은 이제 고모의 비극과 자신이 눌러둔 의문을 교차하며 단란하게만 여겼던 소시민 가족의 일대기, 그 사각에 자리한 침묵의 영역으로 파고든다. 고모가 항거했던 '착한 딸-누나-아내-며느리'의 삶을 살게 된 본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상하며 이제 '양지영'의 사라진 존재를 복구하던 이야기는 감독 '양주연'을 전면에 등장시켜 새로운 단계로 전환한다.
구성 의도는 대사로 드러나지 않는 대신, 집중해야 포착할 수 있는 상징적 이미지로 확인된다. 명탐정이 돋보기를 들이대야 발견하는 단서처럼. 영화는 섬세한 시선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이에게만 허락된 보물을 슬며시 공개한다. 예를 들어 매번 국면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터널'은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고향으로 내려가는 차 안, 고모의 삶에서 실마리를 얻은 순간 닥치는 난제를 표현한 애니메이션, 묵묵히 어딘가로 향하는 감독의 행로마다 제각각이지만, 궁극적으론 암흑을 헤치고 빛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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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양> 스틸 이미지 |
| ⓒ ㈜영화사 진진 |
의미심장한 무언의 암시가 특히 인상적이다. 고모의 비극을 초래한 근원, 할아버지의 빛바랜 사진과 자상한 아빠의 얼굴은 의도적으로 겹친다. DNA 연속성 때문인지 참 닮았다. 여기에 감독의 남동생이 희미하게 투영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여전히 은근슬쩍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핏줄, 그중에 남성 계보에 대한 직격탄이다. 가족묘의 '이장' 과정은 의도적으로 확대 조명하는바, 오랜 세월 단단히 굳은 묘가 중장비에 의해 순식간에 갈아엎어지는 묘사에서 관객 일부는 특별한 카타르시스에 도달할 테다.
조부의 처사가 불합리하다 여겨도 결국 은폐에 가담하게 된 아빠의 생애는 감독과 함께 산소에 간 그의 '낫'으로 상징화한다. 은근히 섬뜩한 묘사다. 그런 아빠와 마지막 인터뷰를 준비하며 손수 '안경'을 공들여 닦아주는 딸의 행위 역시 친근하게만 다가올 리 없다. 자신들을 비추는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담는 또 다른 '창'을 제대로 들여다보라는 경고에 가깝다.
그렇게 감독은 조부모, 부모의 세대에서 계속된 '딸'들의 역사를 복기하는 장정을 완수한다. 1932년생 할머니, 1959년생 엄마와 1953년생 고모의 생애를 연결하며 이 영화의 '행위자'로서 감독 본인의 자리를 찾고자 한다. 그 궤적은 저절로 현재의 싸움으로 향한다. 지금껏 세계를 투시하고 이면을 목격해 왔던 다큐멘터리 감독은 이제 가족과 평화로운 일상 속 모순을 추출하고 '가투家鬪'를 감행한다. 페미니즘이 냉소의 대상이 되고 반동의 백래시가 만연하는 시대에 역사적 맥락과 사라진 이들에 대한 공감, 미래의 전망을 연결하고픈 고민이 가득 담긴 작업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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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양> 스틸 이미지 |
| ⓒ ㈜영화사 진진 |
<양양>을 통해 김태일 감독의 <오월애> 이후 주목받은 21세기 독립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경향, 소소한 민중과 역사의 만남은 세대를 거듭하며 심화하는 여성주의 서사와 한 곳에서 만나 어우러진다. 어느 하나를 떼고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감독의 자기 반영 위주란 점에서 답습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듯 뵈는 여성영화의 현주소와 연동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시각도 충분히 등장할 법하다. 하지만 감독의 지난 작업과 더불어 본다면, 그가 꾸준히 자기 주변의 이름을 잃어버린 여성들의 존재를 주목하고 그들을 한국 사회 및 현대사와 연결해 온당한 자리를 마련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의 역사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영웅적 주인공이나 대사건 위주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개별적인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으로 완성할 수 있음을 믿는다면, <양양>이 조곤조곤하지만 단호하게 던지는 저항과 투쟁의 서사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역사의 진보로 나아가는 도도한 강물의 일부로 해석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감독이 상상하던 고모의 꿈을 조카가 잇겠다는 다짐은 철회될 리 없다. 그가 만들어갈 미래의 작품과 생애는 영화의 확장으로 기능할 게다.
<작품정보>
My Missing Aunt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5.10.22. 개봉|78분|12세 관람가
감독 양주연
PD 고두현, 강사라
출연 양지영, 양주연, 양철원
제작 영화사 금요일
공동제작 브리딩 필름즈
배급/투자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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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양> 포스터 이미지 |
| ⓒ ㈜영화사 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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