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실용 대통령’과 ‘투쟁 여당’의 엇박자

지난 몇 달 지켜보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이 당정 관계이다. 적어도 외형상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전혀 맞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야당 대표들도 만나지만, 여당 대표는 ‘야당 해산’까지 거론하며 야당을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 간의 이런 엇박자는 과거 우리 정치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지난 총선 때 ‘비명횡사’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의외의 현상이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를 상대하는 정치를 하고, 여당은 ‘강성 지지층’을 달래는 정치를 하겠다는 역할 분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정이 분리된 듯한 지금의 모습은 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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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시절 ‘당정 분리’의 데자뷔
여당 강경노선이 국정 동력 훼손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담 될 수도
결국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와
」

당정 간 협의의 틀은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시작되었다. 당정협의회가 마련된 것은 당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김종필의 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위로는 청와대부터, 아래로는 지방행정 기관까지 당정협의회가 구성되었다. 당정협의회는 여당이 국가 주요 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효율성과 성과만을 중시하는 행정부 관료들이 놓치기 쉬운 현장의 민심을 전달하는 창구 기능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당정 간 협의의 틀이 잠시라도 무너진 건 노무현 대통령 때였다.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제왕적 당 총재에서 벗어나는 정치개혁으로 받아들였고, 고지식할 정도로 그 원칙을 그대로 지켰다. 또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도 정치력보다 이념과 투쟁성으로 무장한 이들로 가득 찼다. 당시 여당에도 ‘탈레반’으로 불렸던 강경파가 있었고, ‘108 번뇌’로 불릴 만큼 당 지도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초선 의원들이 가득 있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용적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결국, 국정 운영은 엉망이 되었다. 예컨대, 이라크 파병 동의안에 대해 열린우리당 내에서 적지 않은 반대표가 나왔고, 대연정 등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여당이 소외되었다. 여당은 여당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상처를 입었다. 이러한 당정 간 불협화음은 국정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2004년 총선에서 152석을 얻으면서 정치적으로 화려하게 부상했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최근에도 박근혜 정부나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의 동력이 약화한 데에는 여당 대표와의 갈등과 마찰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전 원광대에서 한 연설에서 ‘당도 대통령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당정 분리를 격정적으로 비판했다.
지금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노 대통령 때의 당정 분리가 떠오른다.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정치 세력이 양립해 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여당의 역할이 사라졌다. 민주당의 요즘 행태를 보면 여당인지 야당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과거에 여당은 쟁점 사안을 두고 야당과 다투기도 하지만 야당을 구슬리고 설득해서 ‘모양 있게’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정책 추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현 여당 대표는 ‘야당과 싸움은 내가 하겠다’고 말했고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싸우고 윽박지를 일이 아니라, 야당 대표들과 만나고 타협해서 합의의 모습을 만들어 내야 ‘대통령에게 일할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 ‘싸우고 비판하는 것밖에 할 일이 남지 않은’ 야당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집권당 대표가 한 것이다.

강경 일변도인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이미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평가가 확인되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에 비해, 여당의 지지율은 매우 낮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가 대통령 따로, 여당 따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불편하고 분열적인 정치 이슈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겠다는 의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당의 행동에 대한 비판과 책임에서 이 대통령이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정청래 대표나 민주당은 이른바 ‘내란 청산’만을 외치고 있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그 이슈가 영향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여느 때와 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큰 차이를 낳는다. 탄핵과 대선이 있었던 올해는 ‘윤석열’ 이슈가 중요하다고 해도, 내년이 되면 이재명 정부가 국민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민주당의 지금 행보는 그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그것은 민주당의 패배에 머물지 않고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거칠고 일방적인 정국 독주가 제대로 된 여당의 모습은 아니다. 여당의 행동이 과하다고 생각된다면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리해야 한다. 임기 말 노무현 대통령의 뼈아픈 회고처럼, 당정 관계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오롯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누가 뭐래도 여당의 실질적 리더는 대통령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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